
[더퍼블릭=김미희 기자]미국이 ‘전문직 비자’로 불리는 H-1B 비자 수수료를 1인당 10만 달러(약 1억4000만원)로 대폭 올리면서 글로벌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던 미국 기업들이 당장 ‘비상’이 걸렸다. 비자를 통해 글로벌 인재들을 유치하던 기업들의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더 큰 비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국민을 고용한다고 하더라도 기존 인력을 대체할지는 미지수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H-1B 비자 개편 포고문에도 기존 비자 프로그램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인식이 분명히 드러났다.
그는 포고문에서 “미국에 일시적으로 노동자를 데려와 고숙련 업무를 수행하라고 마련됐으나, 미국 노동자를 보완하기보다 저임금·저숙련 노동력으로 대체하기 위해 악용돼 왔다”며 “체계적 남용을 통해 미국 노동자를 대규모로 대체한 것은 경제 및 국가 안보를 훼손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에 미국 기업들 또한 인재유출을 두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인재들을 유치해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현재 시스템이 사실상 대기업에서만 가능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NYT는 “실리콘밸리의 생태계는 스타트업의 꾸준한 혁신 위에 구축돼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장차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다”며 “그러나 이번 변화는 수십억 달러 자금을 가진 기존 대기업들에 유리한 쪽으로 저울추를 기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미국의 이러한 행보를 ‘기회’로 여기고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이 인재 유치에 전면 나설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가 파이낸셜타임스(FT)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H-1B 비자와 비슷한 자국의 비자에 대한 수수료를 아예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독일 디지털 산업계의 연합체인 비트콤 대표 베른하르트 로흐레더도 “미국의 새 정책은 독일과 유럽이 최고의 인재를 끌어들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로이터는 중국의 경우 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새로운 비자를 다음 달 1일부터 도입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비자 소지자는 취업 제안 및 연구직을 사전 확보하지 않고도 중국에 입국해 공부하고 일할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도 재빠르게 유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글로벌 IT 기업의 인재들은 무엇보다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에 걸맞은 환경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이들이 가장 먼저 꼽는 특징은 세상에 없던 최고 기술을 만든다는 자부심이다. A씨는 “한국은 ‘패스트 팔로어’ 역할을 잘해서 기존 기술을 빨리 따라가거나, 실패 확률이 낮은 연구에 주로 투자하지만, 미국은 최첨단 기술에 도전하고 선도한다”고 했다.
B씨 또한 “한국에선 의사나 변호사 자격증이 있어야 전문직으로 인정해주지만 여기선 AI 엔지니어도 전문가로서 자부심을 갖게 한다”고 했다.
아울러 ‘연구 안정성’이 높다는 점도 이들이 미국으로 떠난 이유로 꼽힌다고 전했다. 한국 기업 특유의 조직 문화 탓에 연구자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없다. 기술 개발을 시도했다가 안 되면 빠르게 포기하고, 팀을 해체하는 경우도 잦다. 이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인재들은 “한국 기업엔 ‘고용 안정성’은 있지만 ‘연구 안정성’은 없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설명이다.
더퍼블릭 / 김미희 기자 thepublic3151@thepub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