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단속 넘어 기술 요구까지…국내 기업, 美 투자 딜레마 속 '中 트라우마' 재현 우려

비자 단속 넘어 기술 요구까지…국내 기업, 美 투자 딜레마 속 '中 트라우마' 재현 우려

  • 기자명 홍찬영 기자
  • 입력 2025.09.1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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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포크스턴 이민세관단속국 구금시설.
미국 포크스턴 이민세관단속국 구금시설.

 

[더퍼블릭=홍찬영 기자]미국 정부의 불법 취업 단속 여파가 국내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를 흔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기업에 ‘미국인 고용과 기술 교육’을 요구하면서, 현지 인력난과 비자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부담이 한층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외국 기업의 투자를 환영하지만 이민법은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조지아주 현대 배터리 공장에 대한 이민 단속 작전 이후, 미국에 투자하고 있는 모든 외국 기업들에 우리나라 이민법을 존중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투자는 환영하지만, 그 대가로 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훈련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미국 경제를 더욱 생산적으로 만들고 양국 관계도 한층 긴밀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현장에서 한국인 근로자들을 대거 구금한 사건 이후 나온 발언이다.

단순히 비자 발급 문제를 넘어 기술 이전과 현지 인력 양성을 외국 기업에 의무화하겠다는 의미로, 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국내 산업계는 현장 현실이 이를 뒷받침하기 어렵다며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배터리·반도체 공장 건설과 초기 생산 과정은 고도의 기술과 경험이 요구돼, 국내 협력사 인력이 투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현지 인력만으로는 장비 설치와 셋업을 수행하기 어렵고, 설사 채용한다 해도 높은 인건비와 잦은 이직으로 안정적인 생산 체계를 갖추는 데 수년이 소요된다. 여기에 H-1B, L-1 등 전문직 비자 발급도 까다로워 한국 인력 투입이 쉽지 않은 점도 난관으로 꼽힌다.

이번 사건 이후 국내 주요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조지아 배터리 공장의 양산 시점을 미뤘고, 현대차는 임직원의 미국 출장을 전면 금지했다. 삼성전자 역시 ESTA 출장을 최대 2주로 제한하는 등 관리에 들어갔다

업계의 불안은 과거 중국에서의 경험과 겹친다. 국내 기업들은 2010년대 초·중반 LCD·자동차·석유화학 등 핵심 산업에서 중국 현지에 대규모 설비투자와 합작투자를 단행했지만, 인허가·보조금의 조건으로 사실상 기술이전 성격의 요구가 뒤따랐다.

이에 디스플레이의 경우 2017년 전후로 중국의 BOE·CSOT가 급성장하며 한국이 지배하던 LCD 주도권을 빼앗겼고, 2018년 LG디스플레이의 광저우 OLED 합작투자 과정에서도 절차 지연과 기술 협력 압박 논란이 불거졌다.

자동차의 경우, 2016년 사드(THAAD) 갈등 이후 판매가 급격히 줄면서 중국에 세운 공장들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다. 결국 2020년대 들어 현대차·기아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3% 수준까지 떨어졌다.

석유화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내 기업들이 2010년대 현지 합작투자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기술과 운영 노하우가 중국에 축적되면서, 중국 기업들의 생산능력이 급격히 늘었다. 그 결과 범용 석유화학 제품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격차가 빠르게 좁혀졌고, 한국 기업들의 우위는 약화됐다는 평가다.

한편 이 같은 우려 속에 우리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외교부는 9일 미국 측과 협상을 통해 구금된 근로자들의 귀환과 재입국 불이익 방지에 합의했고, 전세기 투입을 준비 중이다.

대통령실 역시 이달 중 재발 방지를 위한 관계 부처 워킹그룹을 꾸리겠다고 밝히며, 정부 차원에서 구조적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더퍼블릭 / 홍찬영 기자 chanyeong8411@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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