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퍼블릭=최얼 기자]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 무력충돌(이하 이-팔사태)이 발생한 가운데, 전세계가 이-팔사태 장기화 여부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이는 중동지역의 분쟁이 역사적으로 국제사회와 국제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인데, 각국 정부들 입장에서는 이-팔사태 장기화에 따른 내부문제가 국내문제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정부도 이-팔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11일 예정에도 없던 긴급 경제‧안보 점검회의를 소집했고,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특히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관계 부처는 국내외 경제 금융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경제 불안정에 대한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란다"고 주문한 상황.
사실 이-팔사태 장기화는 현재 고유가‧고환율에 따른 경제둔화 문제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 입장에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인이다. 쉽게말해 이-팔사태가 고유가‧고환율 국면이 더욱 장기화 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거다.
다만, 이-팔사태 장기화가 야권입장에서는 ‘꽃놀이패’가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팔사태 장기화→경제침제 장기화가 이뤄진다면, 야권입장에선 윤석열 정부에 ‘무능프레임’을 씌울 수 있는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에 <본지>는 ‘이-팔사태’가 전 세계와 국내에 미칠 영향력을 전반적으로 알아봤다.
尹대통령, 이·팔 사태심각성에...예정없던 긴급 경제·안보 점검회의 개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력 충돌사태(이하 이-팔사태)에 따른 긴급 경제·안보를 소집했다.
회의에는 박진 외교부 장관, 신원식 국방부 장관,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규현 국정원장, 김병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 김대기 비서실장,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참석한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밝혔다.
윤 대통령의 회의 소집은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번 사태가 우리 경제·안보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전날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정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민생경제와 국가안보 측면에서 상황을 예의주시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중동 사태까지 겹치면서 대외경제 불안 요인이 커질 수 있다"며 "정부는 대외 불안정 요인에 긴밀히 대응하고 민생 어려움이 가중되지 않도록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10일) 국무회의에서도 ‘이-팔사태’대처방편으로 경제 관계부처에 생활 물가와 서민 금융 안전, 교민 안전 대책 등을 신경 써 달라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중동지역의 무력 분쟁과 전쟁은 국제 유가 상승을 불러오고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으로 우리 국민들의 물가 부담을 가중시켜 왔다"며 "이미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중될 경우 국내 금리에 영향을 미치면서 국민의 이자 부담도 증대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윤 대통령은 "정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대외 불안정 요인에 긴밀히 대응하고 민생 어려움이 가중되지 않도록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관계 부처는 국내외 경제 금융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경제 불안정에 대한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이-팔사태 예의주시하는 정부...“국내 에너지수급 아직까지 문제없어”

윤석열 정부가 이-팔사태 대비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간 전쟁이 세계 경제에 새로운 리스크로 급부상 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이로인해 여러 외신들은 하마스-이스라엘간 분쟁이 인플레이션과 경제전망에 매우 위협적인 요소로 꼽고 있는 상황.
실제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충돌한 직후 국제유가는 4%이상 급등했다. 북해산 브렌트유는 4.53%상승한 배럴당 88.41달러.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는 4.69%오른 88.67달러에 거래됐다.
사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석유생산국은 아니지만, 주변에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이 밀집해 있고 주요 수송통로가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석유값 100달러’시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제기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팔사태가 7~80년대 ‘석유파동’같이 급격한 유가상승을 야기시키진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는 유가급등을 저해할수 있는 미국 전략 비축유도 있는데다, 이란‧사우디 같은 중동 산유국의 참전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부 역시 충분한 물량이 확보됐다며 국내 가스 수급에는 문제가 없는 상황임을 확인했다고 강조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2일 강경성 산업부 2차관 주재로 국내 가스산업 주요 업계 대표들과 간담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사태에도 국내 가스 수급에는 문제가 없는 상황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한국가스공사와 민간 액화천연가스(LNG)사의 LNG 운반선 운항에 문제가 없고, 동절기 도입 예정 물량도 충분히 확보한 상황이라는게 이들의 설명이다.
강경성 차관은 간담회에서 "중동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에너지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와 업계가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며 "가스업계와 가스공사가 적극적으로 협력해 동절기 안정적인 천연가스 수급과 취약계층에 대한 두터운 에너지 복지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긴장하는 반도체 업계

다만 석유값 상승과는 별개로, 이-팔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스라엘에는 미국 인텔을 비롯해 엔비디아 등 글로벌 반도체 주요 기업들이 일제히 진출해 있것과 더불어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를 포함한 테크 스타트업들도 다수 포진해 있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상황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12일 업계와 일부 언론보도들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오는 15~16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인공지능(AI) 콘퍼런스를 취소했다고 한다. 이 행사에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었다.
엔비디아 측은 "현재 이스라엘 상황이 매우 역동적인 만큼 현지에 있는 직원들에게 가족의 안전에 집중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취소 소식을 알리게 돼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인텔역시 이-팔사태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인텔은 이스라엘 내 1곳의 공장과 4곳의 개발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지에서만 직원 1만2800명을 고용해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은 직원 수를 가진 민간 기업이며, 지난해 이스라엘에서 올린 매출은 약 87억 달러(11조6000억원)에 달한다.
게다가 인텔은 전쟁 분쟁지역에서 불과 20km 떨어진 지역에 컴퓨터 CPU(중앙처리장치)를 생산하는 대규모 공장 '팹28'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인텔이 250억 달러(32조원)를 들여 짓기로 한 새 반도체 공장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인텔 측은 이스라엘 상황과 관련해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직원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팔사태로 이스라엘시장에서 인텔 운영에 차질이 생긴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악영향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텔 CPU 제품들이 최신 D램 DDR4와 DDR5를 지원하는 만큼 생산에 문제가 생길 경우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D램 수요에도 여파가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대(對)이스라엘 수입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품목은 반도체 제조용 장비로, 지난 8월 기준 전체 수입금액 11억8600만 달러 중 반도체 제조용 장비는 무려 3억1127억 달러(40%)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스라엘에 판매법인을 비롯해 연구개발(R&D)센터, 삼성리서치 이스라엘 등을 운영 중이다. 이스라엘 R&D센터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시작되기 불과 9일 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방문했던 곳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주재원 10여명을 포함, 현지 직원들이 재택 근무를 하며 비상 대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회사 측은 정부 지침을 포함해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조속히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중동지역 분쟁이 국제사회에 미친 영향...이-팔사태 장기화=민주당 꽃놀이패

정부와 기업들이 이-팔사태에 귀추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간 중동에서의 분쟁이 세계 경제와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은 전 세계 원유 매장량 중 55%, 생산량 중 30%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의 분쟁은 곧바로 원유 수급 차질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에 이-팔사태가 장기화된다면, 그리고 두 국가에 의해 수 많은 중동국가의 직접적인 개입이 이뤄진다면, 원유값이 어느수준 까지 상승할지 예측하기도 쉽지않은 상황이다. 다시말해 3차 오일쇼크까지 발발할 가능성이 존재 한다는 것.
과거 1973년 촉발된 1차 오일쇼크도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 중동 전쟁이 시발점이었다. 당시 중동의 주요석유수출국들은 매월 원유 생산을 5%씩 감산하겠다고 전했고, 이로인해 배럴달 2.6달러 수준의 국제유가는 1년 만인 1974년 11.5달러로 4배 급증했다.
1980년 이란ㆍ이라크 전쟁 때도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를 돌파하며 1년 만에 2배 이상 올랐다. 1991년 걸프전 당시에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기 전보다 유가가 2.5배 이상 오르며 ‘중동 정세 불안 = 국제유가 상승’ 패턴이 다시금 확인 가능했다.
중동지역의 분쟁은 경제적인 측면 뿐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국제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과거 이란의 권위주의 정권이자 친미왕조였던 ‘팔레비 왕조’가 무너진뒤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자, 미국 민주당 소속의 지미카터 정권이 4년만에 레이건 정부로 정권교체가 바뀌었다. 이후 미국에서는 국가가 시장개입을 최소화시키는 ‘신자유주의’로 경제체제가 바뀌게 됐다.
이는 중동문제에서 촉진된 국내 정치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준다. 대한민국 역시 중동정세에 경제적인 영향을 많이받기 때문인데, 중동문제가 발발하게 되면 유가상승과 환율상승이 동시에 발생하게 된다. 환율상승과 유가상승은 수출의존적인 대한민국 경제구조에 위협적 요소다. 석유 수입비용을 늘어나는데 반해, 제조업으로부터 파생되는 이익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유가상승에서 빚어진 수출부진과 고환율의 여파로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이 상황에서 이-팔사태가 장기화 된다면 저성장 국면이 더 장기화 될 수 있으며, 야권은 이를 빌미로 윤석열 정부에 ‘무능프레임’을 씌울 수 있다.
실제 민주당 지도부는 대한민국의 부진한 경제지표가 윤석열 정부의 무능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심지어 야권 성향의 유튜버들 사이에선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됐다면 지금과 같이 대한민국 경제가 힘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궤변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상 국제정세에 의해 경제지표가 좋지않은 비보(悲報)를 도구삼아, 윤석열 정부공세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팔사태 장기화→경제침체 장기화’가 야권입장에선 윤석열 정부를 공격할 수 있는 정쟁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퍼블릭 / 최얼 기자 chldjf1212@thepub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