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퍼블릭=최얼 기자]재정 위기에 봉착한 프랑스의 개혁목소리가 또다시 좌초됐다.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가 이끄는 중도 보수 내각이 재정 개혁안을 들고 나오자, 좌파와 우파 정당들이 나란히 손잡고 내각을 붕괴시켰다.
프랑스 하원은 8일(현지시간) 정부임 여부를 묻는 표결에서 찬성 194표, 반대 364표로 바이루 내각을 불신임했다. 재적 의원 574명(3명 공석) 가운데 과반(288표 이상)이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프랑스 헌법상 과반수가 불신임 하면 즉각 사퇴해야한다.
바이루 총리는 지난 7월 “국민들이 현실을 직시해야한다”며 440억 유료(약 66조 원) 규모의 예산 삭감안을 내놨다. 프랑스의 지난해 재정적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8%에 달하자, 감세안을 내놓은 것이다. 참고로 이는 유럽연합(EU)이 규정한 적자 한도(GDP 대비 3%)를 훌쩍 넘긴 수치다.
프랑스 정국을 바라보는 국제시장의 평가도 박하다. 당장 12일에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의 신용등급에 대한 재평가 발표가 예고돼있다. 피치는 2023년 4월 프랑스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한데 이어, 올해 3월에는 재정 불건정성을 이유로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췄다.
프랑스는 공공부채 역시 GDP의 113%로, 유로존에서 그리스·이탈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이에 바이루 총리는 국방을 제외한 동결, 공휴일 이틀 폐지, 세수 확대를 통해 재정위기를 타개하려고 했고, 에리크 롱바르 프랑스 재무장관 역시 지금처럼 지출을 했다가는 “국제통화기금(IMF)이 개입할 위험이 있다”며 힘을 보탰다.
하지만 야당은 “복지와 민생에 대한 타격”이란 명분으로 바이루 총리를 불신임했다. 사실 저소득 서민층을 기반으로 하는 좌파 정당들과 노년층을 지지 세력으로 둔 우파 정당들 모두 사회보장과 연금·복지 체계를 통한 재정지출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게 이번 거야흔들기의 근본이다.
급기야 좌우정당들은 정권탈환 까지 시도하고 있다. 바이루 내각을 끌어내린 좌우 정당들은 내친 김에 정권 탈환에 시동을 걸고있다. 극좌 성향의 ‘굴복하지않은프랑스(LFI)’는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섰고, 극우 국민연합(RN)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르자고 요구하고 있다. 현지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오는 10일과 18일 대규모 시위와 파업을 예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카드는 많지 않다. 하원에서 가장 큰 세력을 보유한 좌파 정당 출신에서 총리를 지명하면 재정 개혁이 후퇴하고, 총선을 다시 치렀다가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극우 세력이 의회 다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퍼블릭 / 최얼 기자 chldjf1212@thepub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