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퍼블릭=안은혜 기자] 정부 재정 악화 우려 등으로 프랑스·영국·미국·일본 등 주요국 국채 장기물 금리가 급등했다.
국채 금리 상승은 정부에 국채 이자 부담을 가중시켜 또다시 재정 우려를 키우는 악순환을 가져왔다. 한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
美 30년물 국채금리 5% '터치'·英은 27년만에 최고
지난 3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글로벌 채권의 벤치마크인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이날 4.26%로 전장 대비 3.2bp(1bp=0.01%포인트) 올랐다.
장기채 금리(30년물) 금리는 4.96%로 전장 대비 3.4bp 올랐다. 30년물 금리는 한때 4.999%까지 오르며 심리적 저항선인 5%에 근접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과한 상호관세가 법적 근거가 없다는 항소심 판결이 관세 수입 감소와 함께 재정적자 확대 우려를 불러일으키면서 국채 금리 상승을 촉발했다는 분석이다.
대규모 감세 법안으로 재정 적자는 10년 간 3조4000억 달러(4740조 원) 더 불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앞서 5월, 7월 30년물 금리는 종가 기준으로 3거래일씩 5%를 돌파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리사 쿡 이사를 주택담보대출 사기 의혹을 이유로 해임하면서 연준의 독립성 훼손 우려가 커지면서 최근 30년물 금리는 이미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설립자인 레이 달리오는 지난 1일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정치적 압력으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면 "연준이 통화 가치를 지킨다는 신뢰를 훼손하고, 달러 표시 부채 자산을 보유하는 매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제 투자자들이 미 국채에서 금으로 투자를 돌리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12월 인도분 금 선물 종가는 온스당 3592.2달러로, 전장 대비 2.2% 오르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어 열린 시장에서 금 선물은 3610.40달러까지 치솟으며 처음 3600달러 선을 돌파했다.
이날 런던 금융시장에서 영국 국채 30년물 금리는 전장보다 5.25bp 오른 5.69%에 마감했다. 이는 1998년 5월 이후 27년여 만에 최고치다.
최근 1년 간 약 1.2%포인트 상승해 미국 국채 30년물(0.85%포인트)과 독일 국채 30년물(0.90%포인트) 상승폭을 웃돌았다.
성장률 둔화,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높은 물가상승률(4%), 공공재정 압박 등 영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매도세를 부추긴 것으로 풀이된다.
성장률은 낮은데 고물가가 지속되면 금리 인하가 어려워 국채 추가 발행 말고는 방법이 없는데, 이미 영국 국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섰다.
잉글랜드은행(BOE)의 연내 추가 기준금리 인하 관측도 점점 줄고 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전날 총리실에 중량급 경제 전문가를 영입하는 개편을 단행다. 이로 인해 레이철 리브스 재무장관의 권한 약화를 뜻한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유로존·日도 사상 최고치, 한국은?
이날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채권의 벤치마크인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는 3.8bp 오른 2.78%로 마감했다. 30년물 금리는 3.41%로 4.7bp 올랐다. 10년물과 30년물 금리 모두 2011년 이후 최고치다.
연초 2.5% 수준이었던 30년물 금리는 독일 정부가 천문학적 규모의 '돈 풀기' 정책을 시작한 3월에 3.2%까지 치솟은 뒤 상승 흐름을 타고 있다.
이날 발표된 8월 유로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작년 동기 대비 2.1%로, 시장 전망치(2.0%)를 웃돌면서 오는 11일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쪽으로 무게가 실린 점도 독일과 프랑스 국채 금리 상승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프랑스 국채 10년물과 30년물 금리도 각각 3.58%, 4.507%로 마감해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프랑스는 긴축 재정 예산안을 놓고 내각과 야당이 교착 상태에 빠져있다. 내각 해산 가능성이 최근 국채 금리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국가 부채 비율 세계 1위인 일본 국채 30년물 금리도 3일 오전 한때 전장 대비 6.2bp 상승한 3.28%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 20년물 금리도 한때 2.69%까지 상승해 199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7월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반(反) 이시바' 세력을 중심으로 이시바 총리 퇴진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FT 보도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의 퇴진은 재정 지출 확대와 중앙은행에 대한 금리 인상 중단 압박 등 보다 포퓰리즘 정책을 지향하는 새 총리의 등장 가능성을 높인다"고 투자자들은 말했다.
결국 야당 공약대로 소비세 감세 등이 관철되면 국채 금리는 더욱 밀려 올라갈 것이라는 우려다. 일본 재무성은 내년 국채 이자로만 13조435억엔(약 122조 원)을 편성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주요국의 장기채 급등 상황에 대해 '재정 적자-포퓰리즘의 파멸적 악순환'이라고 진단했다. 재정 적자 확대가 채권 금리 급등을 야기하고, 정부의 긴축 재정이 실행되면 국민과 정치권 반발이 일어나 포퓰리스트 세력의 득세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7월 세계경제전망에서 “관세율 상승, 이에 따른 성장 둔화, 재정 적자 확대 등으로 장기 금리가 상승하고 있다”며 글로벌 금융 여건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일본의 고착된 인플레이션, 프랑스의 정치적 혼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박에 따른 미국 물가 상승 압력 등이 장기 국채를 더욱 취약한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재명 정부가 적자 국채를 100조 원 이상 발행하는 예산안 편성,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정부 주도의 3500억 달러 투자 약속 등 중장기적으로 국채 금리 급등 가능성이 커 우리나라도 '재정 적자-포퓰리즘의 파멸적 악순환'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더퍼블릭 / 안은혜 기자 weme35@thepub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