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금융투자업계의 비판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특히 두산그룹의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에 투자를 단행한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순자산 4000억원에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두산로보틱스와 순자산 6조원에 꾸준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두산밥캣이 시가총액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유사한 기업가치로 주식을 교환하는 것이 맞냐는 지적이다.
두산에너빌리티 분할에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두산은 에너빌리티를 사업회사와 밥캣 지분을 보유한 투자회사로 분할한 뒤, 투자회사를 로보틱스와 합병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존속회사는 상장사, 투자회사는 비상장사다.
문제는 밥캣지분의 절반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회사가 비상장사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돼 로보틱스와 합병하게 됐다는 점이다. 그간 상장사와 비상장사의 합병에서 수 차례 논란이 계속됐던 만큼, 금융위원회가 규제 도입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두산이 선수를 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두산그룹 사업구조 재편 방향 [사진제공=연합뉴스]](https://cdn.thepublic.kr/news/photo/202407/230232_228654_1534.jpg)
‘캐시카우’ 두산밥캣 분할 상폐 후 로보틱스와 합병
[더퍼블릭=최태우 기자]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지난 11일 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97%를 벌어들이는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현재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회사(존속법인)와 두산밥캣 지분 46%를 보유한 투자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신설투자회사를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방식이다.
두산로보틱스는 두산밥캣 소액주주들이 보유한 나머지 54%의 지분에 대해 포괄적 주식 교환으로 100% 지분을 확보한 뒤, 두산밥캣을 상장폐지하고 100% 자회사로 편입시킬 계획이다.
이를 위해 두산로보틱스는 신주 3406만1202주를 교부하고, 두산밥캣 주식 1주당 0.6317462주 비율로 교환한다. 교환을 원하지 않는다면 두산밥캣 주식을 팔 권리가 주어진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두산그룹 측은 “경영 효율화와 스마트 머신 사업 강화를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관련 업계에서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두산로보틱스의 재무 구조를 개선하고, 두산밥캣에 대한 지주사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냐니는 해석이 나온다. 지배구조 개편이 완료되면 두산의 두산밥캣 간접 지분율이 기존 13.8%에서 42%로 크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두산로보틱스를 성장시키기 위해선 외부 자금조달이 필요한데, 이 경우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희석되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하지만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편입시키면 배당금뿐만 아니라, 보유 현금을 투자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오너 일가가 지분 희석 리스크를 줄이고 지배구조 개편이 가능한 이번 합병 방안을 추진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두산의 두산로보틱스 지분율은 두산밥캣의 합병 과정에서 종전보다 크게 낮아지지만 두산의 두산로보틱스 지분율은 기존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두고 있었던 두산에너빌리티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두산로보틱스의 투자금을 확보할 수 있으며, 그룹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에 대한 간접 보유지분도 확대할 수 있다. 두산그룹 입장에선 일석 이조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두산밥캣 주식 교환 비율 논란…로보틱스 기업가치 ‘고평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존 두산밥캣 소액 주주들의 반발이 일고 있다. 이들은 합병 가치 산정 과정에서 본질적인 기업가치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시가총액은 지난 11일 기준 5조2000억원대로, 주당 가격은 5만2000원, 8만5300원이었다. 시총과 주가 비율이 비슷하다 보니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교환 비율이 1대 0.63으로 정해진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평가하고 있는 두 기업의 가치는 시총과 다소 거리감이 있다. 두산로보틱스의 경우 만년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반면, 두산밥캣은 그룹 내에서도 가장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계열사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실적을 놓고 봐도 두산밥캣은 두산그룹이 거둔 전체 영업이익의 97%에 해당하는 1조647억원을 벌어들였지만, 두산로보틱스는 오히려 19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실적 평가 기간을 확대해 봐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두산밥캣은 최근 3년(2021~2023년)간 연평균 5139억원의 순이익을 거둔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평균 12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룹의 캐시카우인 두산밥캣과 지난해 상장한 뒤 영업 손실을 이어가면서 ‘고평가’ 논란이 일고 있는 두산로보틱스의 실제 가치는 다르다는 것이다.
경제 관련 유관단체에서도 두산그룹의 이번 합병에 대해 지적하고 나서는 분위기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논평을 통해 “좋은 회사인데 주가가 낮다고 생각해서 결국 본질가치를 찾아갈 것이라고 믿고 오래 보유하려던 수많은 주식투자자들이 로봇 테마주로 바꾸든지 현금 청산을 당하든지 양자 선택을 강요받는 날벼락을 맞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 행동을 해서 모두가 기대하는 밸류업 기조에 얼음물을 끼얹은 것은 두산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이런 일을 누구도 저지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고 있는 것은 우리의 법과 제도, 자본시장법과 그 시행령”이라고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도 지난 17일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이사회가 선택한 지배권 이전 방식은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일반 주주 이익보다 그룹의 이익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두산에너빌리티가 두산로보틱스에 직접 두산밥캣 지분을 매각한 후, 두산밥캣은 공개매수 방식을 통해 주식을 매입해야 한다”며 “이번 사례가 일반주주 보호가 부족한 현행 법제도의 문제점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현행법 상 문제 없지만…금융위 제도 개선 앞두고 ‘꼼수’ 지적도
이번 두산그룹의 합병에서 가장 큰 논란을 야기한 ‘상장사(두산로보틱스)-비상장사(두산밥캣 신설법인)’ 합병은 그간 기업들의 꼼수가 많다는 지적이 계속되면서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가 올해 3분기 제도 개선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금융투자 업계 일각에서는 금융위의 규제가 시작되기 직전 두산그룹이 지배구조를 재편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1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기업 합병 과정에서 일반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증권을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을 준비 중이다.
현재 법제처 등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인데, 국무회의 의결 등을 거쳐 오는 3분기 내로 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금융위는 이번 규정 개정과 관련해 상장사와 비상장사간의 합병 시 합병가액 산정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해 5월 기업 인수합병(M&A)을 선진화하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합병가액이 특정 기업에 불리하게 책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상장사와 비상장사가 합병 시 합병가액이 적절하게 평가됐는지 회계법인과 신용평가사 등 제3의 외부기관으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외부평가기관에 대한 행위 규율을 마련한 게 개정안의 골자다.
이번 두산의 합병처럼 계열사 간 합병에는 외부평가기관을 선정할 때 감사위원회의 의결이나 감사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 의무가 추가된다. 하지만 이 같은 개선 조치는 빠르면 9월께 시행될 전망이다.
지배구조 재편을 앞당긴 덕에 두산은 개정된 규정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두산의 구조 개편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도입 필요성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강조한다. 현재 상법상 이사가 충실해야 할 대상은 회사뿐이다. 이사의 결정으로 지배 주주는 이익을 보고, 다수의 일반 주주가 손해를 봐도 이를 법원에서 인정받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금융감독원을 중심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돼야 한다는 논의가 일고 있는 것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현재 상법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본 거래와 관련한 주주 가치 보호 실패로 이어지는 현상을 초래했다”며 “해외 투자자는 물론 국내 개인 투자자도 이 현상을 해소해 달라고 요구하는 지경”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더퍼블릭 / 최태우 기자 therapy4869@thepub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