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퍼블릭=안은혜 기자]한미 간 관세 협상 교착으로 외환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상호·품목관세와 연동된 3500억 달러 대비투자펀드의 투자 방식이 쟁점인 가운데, 원·달러 환율은 1410원을 뚫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500억달러 전액을 선불 현금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무제한 통화스와프(정해진 환율로 상호 화폐를 교환할 수 있는 권리) 협정 체결을 최소한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하며 맞서고 있다.
이 대통령은 한 외신 인터뷰에서 "(한미 간) 통화 스와프 없이 미국 요구 방식으로 전액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주 한국 경제 설명회(IR)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한 이 대통령은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의 접견 관련 "협상에 진전이 있었던 건 아니"라면서 "우리의 입장을 좀 더 명확하고 비중 있게 전달하는 자리였기에, (앞으로의) 협상에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일본처럼 일시에 투자해야 한다면 통화스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배선트 장관은) 워싱턴으로 돌아가서 내부적으로 협의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27일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3500억달러 규모 대미투자펀드를 두고 ‘선불’이라고 말한 데 대해 "현금으로 낼 수는 없다"며 "대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3500억달러 규모는 사실상 한국의 외환보유액의 85%에 달하는 금액이다. 교착 상태에 빠진 한미 간 협상과 입장차는 외환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6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8.4원 오른 1409원에 출발해 장중 1411원대에서 거래됐다. 환율이 1410원을 넘은 것은 지난 5월 15일(1412.1원) 이후 넉 달 만이다.
전문가들은 환율 급등 배경으로 글로벌 달러 강세와 미국과의 관세 협상 불확실성이 작용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대미 투자 협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당분간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어떤 방식으로 합의되더라도 한국 경제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봤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요구대로 일부라도 선불 투자할 경우 달러 수요가 급증해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다"며 "강달러 압력이 지속되면서 환율 상승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새로운 대안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실성이 부족한 무제한 통화스왑을 요구하기보다 한국이 보유 중인 미국 국채를 담보로 달러 유동성을 단기 조달할 수 있는 FIMA(피마) 제도를 활용해 외환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피마’란 해외 중앙은행이 보유 중인 미국 국채를 연방준비제도(Fed)에 담보로 제공한 뒤 달러를 빌리는 외화 조달 방식이다. 다만 대출 기간이 단기에 그쳐 통화스왑보다는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퍼블릭 / 안은혜 기자 weme35@thepub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