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퍼블릭=양원모 기자]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절대 강자 엔비디아가 전 세계 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시가 총액 4조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1일(현지 시각)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전일 대비 0.15% 오른 157.99달러로 마감하며 시총 3조 8550억 달러를 기록했다. 6거래일 연속 상승이자 4일 연속 사상 최고치 경신으로, 4조 달러까지는 불과 1450억 달러가량만 남겨둔 상황이다.
엔비디아의 질주는 숨 가쁘다. 2023년 6월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한 뒤 불과 1년 만에 4조 달러 진입을 앞두고 있다. 2024년 2월 2조 달러, 같은 해 6월 3조 달러를 차례로 넘어서며 과거 애플이 보여준 성장 속도를 훨씬 뛰어넘었다. 지난달 26일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치고 세계 시총 1위 기업에 올라섰으며, 앞선 두 달간 주가는 70% 가까이 폭등했다.
이 같은 고공행진 배경에는 AI 칩 시장에서의 압도적 지배력이 자리한다. 2024년 기준 엔비디아는 그래픽 처리 장치(GPU) 시장의 82%, 데이터 센터 시장의 98%를 장악했다. 특히 AI 개발 도구 '쿠다(CUDA)'를 중심으로 구축한 강력한 생태계는 구글, MS, 메타,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을 엔비디아에 종속시켰다. 최신 GPU '블랙웰'은 MS, 구글, 오픈AI 등에 채택되며 수급 불균형까지 발생하고 있다.
댄 아이브스 웨드부시 증권 글로벌 기술 리서치 총괄은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먼저 시총 4조 달러 고지에 도달할 것"이라며 "엔비디아에 1달러가 투자될 때, 그 파급 효과는 다른 기술 생태계에 8~10달러 규모로 확산한다"고 분석했다. 아이브스 총괄은 올 여름 중 시총 4조 달러 돌파를 전망하며 "앞으로 18개월 내 5조 달러 달성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엔비디아의 성공은 협력사들에게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수혜 기업이 바로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GPU에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독점 공급하며 'AI 혁명'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2013년 세계 최초로 HBM을 개발한 이래 기술 우위를 유지해온 SK하이닉스는 현재 5세대 HBM(HBM3E) 12단 등 최신 제품을 엔비디아에 납품하고 있으며 6세대 HBM4 샘플도 업계 최초로 출시했다.
덕분에 SK하이닉스 주가는 최근 두 달간 70% 이상 급등, 시총 200조원을 돌파했다. 2023년 4조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던 SK하이닉스는 2024년 21조원의 영업 이익으로 극적인 턴어라운드에 성공했고, 올해 1분기에는 역대 최고인 7조 4405억원의 영업 이익을 달성했다. 2분기 예상 영업 이익도 8조 8394억원으로 시장 컨센서스를 상회할 전망이다.
신한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38만 8000원으로 상향하며 "경쟁사 대비 유리한 영업환경은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상희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빅테크의 설비투자 예상치 상향 시 반도체 기업 컨센서스도 추가 상향될 것"이라며 "조정 시엔 AI 반도체 및 HBM 공급망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변수는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다. 엔비디아는 트럼프 행정부의 AI 칩 판매 제한으로 올 1분기 25억 달러 규모 GPU 선적이 불가능했으며, 2분기 80억 달러의 추가 손실이 예상된다. 지난주 미중 무역 협상 타결로 중국발 수요 기대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은 남아있다.
경쟁사들의 도전도 본격화되고 있다. 아마존 웹 서비스(AWS)는 자체 AI 칩 '그래비톤4'와 '트레이니엄3'로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고, 구글은 오픈AI에 자체 개발 칩 'TPU'를 공급하며 시장 다변화를 시도 중이다. AMD, 인텔 등 전통 반도체 기업들도 AI 칩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달 말 예정된 메타, MS,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 발표가 앞으로 반도체 수요를 가늠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라며 "AI 인프라 투자 계획이 상향 조정될 경우 엔비디아, SK하이닉스 등 AI 반도체 기업들의 성장 모멘텀은 더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퍼블릭 / 양원모 기자 ilchimw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