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퍼블릭=양원모 기자] 중국산 가성비 AI 딥시크의 등장으로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고성능 GPU·고대역폭 메모리(HBM) 시대가 막을 내릴 것이란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반면 AI 시장 저변이 확대되면서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딥시크는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성능을 낮춰 출시한 H800 칩 2048개를 활용해 AI 모델 'V3'를 개발했다. H00은 최신 모델인 H100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55% 낮은 초당 400GB 수준이다. 딥시크는 AI 모델의 데이터 정확도와 정보 처리 속도 개선으로 이를 극복했다. 딥시크가 V3 개발에 투자한 비용은 557만 6000달러로, 빅테크 AI 모델 개발 비용의 10%도 미치지 않는 수준이다.
딥시크의 등장은 그간 고성능·고비용 전략으로 AI 칩 시장을 장악해 온 엔비디아에 큰 타격을 입혔다. 딥시크 등장 이후 엔비디아 주가는 뉴욕 증시에서 하루 만에 17% 폭락했다. 국내 증시에서도 엔비디아에 HBM를 납품하는 SK하이닉스 주가가 9.86% 급락했으며, 삼성전자도 2.42% 하락 마감했다.
그러나 딥시크의 성공이 고성능 GPU, HBM 시대의 종말을 뜻하는 건 아니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오히려 AI 시장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더 많은 기업이 시장에 참여하게 되고, 이는 AI 생태계 확장으로 이어져 HBM 등 고사양 메모리 수요 증가를 이끌 것이란 기대감도 크다.
실제 딥시크는 V3 기술 리포트를 통해 "34비트 누적 정밀도를 만족하는 GPU와 연산이 가능한 HBM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34비트 누적 정밀도는 현존 최고 GPU인 블랙웰도 구현하지 못하는 스펙으로 알려진다. 고성능 GPU, HBM에 대한 수요가 지속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변수는 미국의 대중 제재 강화다. 미국 정부는 엔비디아가 제조하는 AI 개발용 최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규제하고 있으며, 딥시크가 수출이 금지된 미국산 반도체를 사용하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저사양 AI용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까지 금지될 수 있다.
이는 국내 기업에도 타격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대중국 매출 비중은 30%대에 달한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AI 시장 규모 확대에 따른 수혜가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올해 HBM 매출이 전년 대비 100%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특히 인퍼런스 과정에서도 대용량 컴퓨팅 파워가 요구되면서 HBM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AI 업계는 딥시크가 저사양 GPU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모델을 구현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 고성능 칩 개발과 투자가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변화를 활용,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더퍼블릭 / 양원모 기자 ilchimw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