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투자 시대, 글로벌과 따로 노는 韓… '금산 분리'에 갇힌 첨단 산업

AI 투자 시대, 글로벌과 따로 노는 韓… '금산 분리'에 갇힌 첨단 산업

  • 기자명 양원모 기자
  • 입력 2025.11.1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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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 조 단위 합작… 韓만 자금조달 막혀
반도체·AI 투자 늘지만 GP 보유 금지 등 규제 여전
"특별법보다 사후 규제로 유연하게 대응해야"

현대건설이 시공한 케이스퀘어데이터센터 가산 전경
현대건설이 시공한 케이스퀘어데이터센터 가산 전경

[더퍼블릭=양원모 기자] 한국의 첨단 산업이 '자금 조달'의 벽에 가로막혔다. AI와 반도체 산업이 세계적으로 급성장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이 '금산 분리' 규제에 묶여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첨단 반도체 팹 건설비는 20조~30조원에 달한다. 네덜란드 ASML의 '하이-뉴메리컬 어퍼처(NA)' 극자외선(EUV) 장비는 5000억원, 일반 EUV 장비도 대당 2000억원 수준이다.

대형 AI 데이터 센터 프로젝트에는 50조~70조원이 투입된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산업 구조지만, 국내 기업은 자산 운용사와 직접 합작하거나 자체 펀드를 운용할 수 없다. 일반 지주 회사의 기업형 벤처 캐피털(CVC) 보유가 허용됐음에도, 해외 투자 비율 등 세부 제한이 여전해서다.

반면 주요국들은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다. 미국은 금산 분리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산업 자본의 펀드 운용을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최근 규제를 완화했고, 유럽은 금산 결합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 인공지능연구소(HAI)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AI 민간 투자액은 1090억달러, 한국은 13억 3000만달러로 80배 격차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격차의 원인을 '낡은 제도'에서 찾는다. "산업 간 경계가 흐려진 시대에 금융과 산업의 결합을 원천 차단하는 정책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은 이미 내부 통제 체계와 금융 감독 관리 아래 놓여 있으며, 과거식 규제는 오히려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합작 투자'로 방향을 바꿨다. 메타는 블루아울 캐피털과 270억달러 규모의 데이터 센터를 공동 개발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블랙록과 300억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펀드를 설립했다. 인텔은 자산 운용사 아폴로와 손잡고 51:49 비율의 합작으로 파운드리 공장 건설 자금을 확보했다.

정부는 AI·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한해 금산 분리 완화를 위한 특별법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산업계는 새 법을 만들기보다 기존 틀 안에서 사후규제를 강화하는 쪽이 현실적이라고 보고 있다. 투자자와의 관계를 투명하게 관리하면 과감한 자금 운용도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투자를 막는 규제가 아니라, 통제 가능한 투자로 바꿔야 한다"며 "AI 시대의 경쟁은 자금에서 시작되지만, 한국은 여전히 규제의 문턱에 서 있다"고 꼬집었다. 

더퍼블릭 / 양원모 기자 ilchimw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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