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퍼블릭=안은혜 기자] 지난해 민주주의 지수에서 세계 12위를 기록한 대만의 변화가 흥미롭다. 아시아 국가 중 최고순위다.
대만은 1980년대 중반까지 중국과 같이 일당독재국가였지만,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걸쳐 민주화가 이뤄졌다. 1986년 중국국민당의 권위주의 통치에 맞서 대만 최초의 야당인 민진당이 창당했다.
민진당은 야당 시절인 1990년대부터 미국과 외교 접촉을 이어갔다.
이후 2014년 당시 친중 성향 국민당 정권이 중국과 체결한 서비스무역협정(CSSTA)을 국회 심의 없이 통과시키려 하자, 대학생과 시민들이 국회를 점거하며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른바 '해바라기 운동'이라 불리는 이 반정부 시위는 대만의 정치 노선을 친중에서 친미로 전환시키는 분수령이 된 사건이 됐다.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 통과에 반대한 이들은 입법원(국회)까지 점거하는 격한 시위를 벌였다.
민진당은 경찰의 강제 진압을 규탄했고, 일부 의원은 시위 학생들의 정치적 보호막을 자처했다. 2년 뒤 민진당은 차이잉원 총통의 당선으로 정권을 되찾고, 3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지난해 취임한 라이칭더 대만 총통(대통령 격)은 '해바라기 세대'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전임 차이잉원에 이어 반중·친미 노선을 계승하고 있다.
대만의 민진당 정권은 미국과의 '이데올로기 동맹'을 발판으로 경제 협력을 확장하고 있다. 정부가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첨단 기술 산업을 중심으로 미국과 전략적으로 공급망을 연계하는 방식이다.
과거 중국을 거쳐 연결되던 대만·미국 간 공급망이 대만 직거래 방식으로 전환되며, 대만은 지정학적 가치를 경제적 카드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1분기 대만의 대미(對美) 수출은 관련 통계 집계 후 30년 만에 대중(對中, 홍콩 포함) 수출을 앞질렀다.

지난달 취임 1주년을 맞은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담화문을 통해 "민주주의는 우리의 시장이고 가치이며 국력의 상징"이라며 "민주주의는 대만의 최대 자산이자 대만 기업들이 활력과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보호막"이라고 강조했다.
라이칭더 총통은 대만의 경제 노선과 관련,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할 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는 "미국 등 많은 민주주의와 자유 중시 국가들과 시장을 연결해 전 세계로 제품을 수출할 것"이라며 "대만 경제 발전을 강화하기 위한 기금도 설립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떠한 대만인도 민주주의와 자유의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떠한 총통도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해바라기 운동'의 정신을 잇는 대만의 시민단체 민주경제연합을 이끄는 라이중창 변호사는 "중국 자본의 대만 침투를 감시하고 친중 성향 정치인을 고발하는 시민운동을 통해 대만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다"며 "반중·친미 구도를 확립하기 위해선 아직 나아갈 길이 멀다. 대만은 단지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미국과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퍼블릭 / 안은혜 기자 weme35@thepub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