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퍼블릭=김미희 기자]택배노조가 노동자 건강권 보호를 위해 ‘새벽배송 금지’를 주장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노동계와 이커머스(전자상거래)·택배업계에서 새벽 배송 금지 추진에 대한 갑론을박이 뜨거운 모양새다.
민주노총 택배노조가 지난달 22일 ‘택배 사회적대화 기구’ 회의에서 “0시∼오전 5시 초(超)심야 배송을 제한해 노동자의 수면시간과 건강권을 최소한으로 보장하자”고 제안하자 쿠팡 노조·소비자단체들이 일할 권리와 소비자 편익을 이유로 반대하고 나서 불거졌다.
쿠팡이 다른 새벽배송 업체들과 달리 막대한 물량을 앞세워 배송 단가를 끌어내리는 바람에 근로 강도와 수익구조를 왜곡한다는 것이다.
쓱닷컴은 계획된 배송물량에 따라 주문이 마감되면 고객이 다음 시간대 배송을 고르도록 설계돼 있다. 컬리는 인공지능(AI) 기술로 당일에 팔릴 것으로 예상되는 수량만 선발주해 새벽배송 기사의 업무 강도가 일률적으로 유지된다.
반면 로켓배송으로 성장한 쿠팡은 새벽 배송 대상 품목과 물량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배송 단가는 개당 1천원에 못 미친다.
그러나 9일 업계와 노동계에선 택배노조의 ‘초심야배송 제한’ 추진이 쿠팡의 로켓배송 시스템과 싼 단가 때문에 초래됐음에도 사안이 ‘새벽배송 찬반으로 논쟁’으로 흘러가 본질을 가리고 있다며 쿠팡이 품목 조정과 단가 현실화 방안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택배노동조합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쿠팡 배송기사 노동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파트 배송 건당 수수료 중윗값은 주간이 655원, 야간은 850원이고, 일반 번지는 주간이 730원, 야간이 940원으로 각각 나타났다.
쿠팡 노동자의 배송 물량은 작년 대비 8% 늘었지만, 배송 기사의 실질소득은 오히려 2%가량 줄었다. 캠프와 배송지를 오가는 다회전 횟수도 매해 늘고 있다. 쿠팡 새벽 배송 기사들은 오후 8시30분(1차), 오전 0시30분(2차), 오전 3시30분(3차)에 캠프에 들어가 물품을 직접 분류한 뒤 싣고 나오는 작업을 반복한다.
여기서 본질은 ‘단가’라는 설명이 나온다. 새벽 배송 전면 금지 피해는 소비자들과 자영업자들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지만 동일노동, 동일노동임금의 경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12년 전 노사 합의로 밤샘 근무를 없앴던 현대자동차 사례가 회자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밤샘 근무를 폐지했다는 점에서 택배노조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지만, 노조 조직률 등에서 차이가 있어 직접적인 선례가 되긴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새벽배송 금지를 포함한 밤샘 근무의 적절성에 대해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충분한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현대·기아차는 2013년 3월 공장의 밤샘 근무를 없앴다. 대신 모든 공장에 주간 연속 2교대(1조 8시간, 2조 9시간) 근무를 도입했다. 현대차는 1967년 울산공장 준공 이후 46년, 기아차는 1973년 소하리공장을 지은 지 40년 만에 밤샘 근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밤샘 근무가 노동자들의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높인다는 게 폐지의 주된 이유였다. 노사는 2003년부터 근무 형태 변화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 10년 만에 최종 합의했다.
당시 합의 과정에 전문가로 참여했던 이병훈 중앙대 명예교수는 “당시에도 노동자 건강권이 강조됐다”면서 “노사 간에 하나의 작은 사회적 대화를 이뤄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기억했다.
더퍼블릭 / 김미희 기자 thepublic3151@thepub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