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퍼블릭=김영일 기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2일 배임죄 적용 범위가 광범위하고 처벌 수준도 가혹하기 때문에 배임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총은 “우리 배임죄는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처벌 수준이 가혹하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며 “최근 대내외 경영환경 악화로 기업 투자 결정이 어려워진 가운데, 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상법 개정으로 정상적인 경영 판단까지 배임죄가 적용될 수 있다는 기업 현장의 우려가 더욱 커진 만큼, 배임죄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경총은 이날 ‘기업 혁신 및 투자 촉진을 위한 배임죄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경총은 보고서를 통해 과도한 배임죄 적용 범위를 축소‧개선하고, 가혹한 처벌 수준을 합리화하며, 합리적인 경영 판단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 배임죄는 구성요건이 광범위하고 모호해 일반 직원까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고, 심지어 손해 발생 위험만으로도 배임죄가 성립될 수 있는 탓에 배임죄 적용 범위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경제계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경제계는 처벌 대상 범위도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배임죄 주체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폭넓게 규정, 임원은 물론 지시에 따라 실무를 수행한 일반 직원도 배임죄 주체로 처벌이 가능하다.
독일의 경우 ‘타인의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한하고 있어, 일반 직원이 배임죄로 처벌될 가능성 낮다는 게 경총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경총은 “‘타인의 재산 보호‧관리에 법률상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배임죄 주체를 명확화는 방안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배임 기준도 광범위하다는 지적이다. 배임 행위 요건이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모호하고, 법원이 광범위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 정당한 경영활동까지 배임 행위로 간주, 심지어 손해 발생 위험만으로 배임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보고서는 “법원은 실제 손해가 아닌 손해 발생 ‘위험’만으로도 배임 성립을 인정하며, ‘미필적 고의’만 있어도 배임죄 처벌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본인(회사)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배임죄를 규정, ‘목적’이 있어야만 배임죄가 성립함에 따라 우리나라 보다 적용 범위가 좁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본은 최근 10년간 배임죄로 기소된 인원이 연평균 31명에 불과한 반면, 한국은 965명으로 약 31배에 달한다.
경총은 “배임 행위 범위를 ▶권한 없이 또는 권한을 부당하게 남용하여 임무를 위배한 경우 ▶자기나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회사에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임무를 위배한 경우 등으로 한정하고, ▶회사에 현실적인 손해를 발생하게 한 때 등 손해의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경총은 또 상법상 특별배임죄가 사문화됐기 때문에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법상 특별배임죄는 특별법 우선 적용 원칙에 따라 형법보다 우선 적용돼야 하나, 실무에서는 처벌 가중을 위해 형법을 주로 적용함으로써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것.
상법상 특별배임죄와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는 구성요건 및 처벌 수준이 사실상 유사하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의 가중처벌 대상은 형법에만 명시돼 있기 때문에 실무에서는 처벌 가중을 목적으로 형법을 주로 적용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문화된 상법상 특별배임죄는 폐지해야 한다는 게 경총의 입장이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특경법상 배임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는데, 이는 살인죄(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준하는 수준으로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경총은 “해외 주요국의 배임죄 형량은 우리보다 현저히 낮아, 우리나라에서 과도한 형량이 경영진의 합리적 의사결정과 적극적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원인으로 작용된다”며 “특경법은 중대 경제범죄를 가중 처벌한다는 취지로 제정됐으나, 현행 배임죄 가중처벌 적용 기준은 1990년 이후 30년 넘게 조정되지 않아 변화된 경제 현실(GDP 11.4배 증가)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입법 취지와 부합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특별법을 통해 배임죄를 가중 처벌하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므로,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과도한 형사처벌의 근거가 되는 특경법상 배임죄 규정 폐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배임죄 적용 범위가 넓고 처벌이 가혹한 상황에서 ‘경영판단의 원칙(이사가 의무를 다해 경영상 결정을 내렸다면 회사에 손해를 끼쳤어도 책임을 묻지 않는 면책 제도)’이 제한적으로만 인정돼, 경영진의 적극적인 투자와 혁신을 위축시킨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독일은 주식법에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했고, 미국은 판례를 통해 절차적 적법성만 충족되면 경영진의 판단에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경총은 “경영진이 관련 법령이 정한 적법한 절차에 따라 회사의 이익을 목적으로 경영판단을 한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도록 규정하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배임죄는 기업가 정신을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오랫동안 지적받아 왔음에도 개선이 되지 못했던 문제”라며, “이번에는 반드시 배임죄를 개선하여 어려운 글로벌 환경 속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퍼블릭 / 김영일 기자 kill0127@thepub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