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이재명 대통령이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그의 가상자산 관련 공약에 금융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가상자산 제도화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이 제시된 만큼, 이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국내 디지털 금융 환경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을 핵심 경제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다. 공약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현물 기반 가상자산 ETF 허용 ▲토큰증권(STO) 법제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러한 정책은 기존 자본시장과 통화정책 체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금융당국과 한국은행도 긴밀한 협의 체계를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법적 정비, 금융 리스크 관리, 이해관계 조정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만만치 않다는 우려도 잇따르고 있다.
가상자산 현물 ETF, 국내 상장 문턱 넘나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https://cdn.thepublic.kr/news/photo/202506/265720_265886_530.jpg)
[더퍼블릭=손세희 기자] 이번 대선을 치르며 이 대통령은 ‘청년 자산 형성 지원’ 공약의 일환으로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자산을 기초로 하는 현물 ETF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청년층의 자산 형성을 돕기 위해 보다 합법적이고 규제된 환경 내에서 가상자산 투자 수단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이 대통령은 “가상자산 투자는 더 이상 투기 수단이 아니라 새로운 금융 생태계의 일부가 되고 있다”며 “통합감시시스템 구축, 거래 수수료 인하 등을 통해 보다 투명하고 안전한 시장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가상자산 업계 또한 현물 ETF 도입과 같은 제도권 투자수단이 생긴다면 기관투자자와 일반 투자자 모두의 접근성이 높아져 시장 확대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실제 제도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먼저 가상자산 현물 ETF가 실제 발행되기 위해선 현행 자본시장법 개정이 필수다. 현재 자본시장법은 ETF의 기초자산으로써 가상자산을 허용하고 있지 않다. 자산운용사가 해당 ETF를 발행하려면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을 직접 매입해 보유해야 하는데, 국내에선 비영리법인이나 가상자산 거래소 등 일부 주체만 직접 보유가 가능하다. 금융사나 자산운용사의 보유는 법적 근거가 명확치 않아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가상자산 현물 ETF 도입에 있어서 제도 개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거래 인프라다. ETF가 상장되기 위해서는 자산 수탁, 유동성 공급, 가격 산정 및 헷지 수단 마련 등 여러 가지 기술적 요건이 갖춰져야 한다. 주식·채권 등 전통 자산을 기초로 한 ETF를 거래할 땐 은행·증권사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가상자산의 경우 전문 수탁기관은 국내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간 금융위도 가상자산의 높은 변동성과 투기성 및 국제적 규제 미비 등을 고려할 때, 현물 ETF는 신중히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 일부 허용이 이뤄지고, 해당 ETF를 허용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던 이재명 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가상자산 ETF 제도화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토큰증권 법제화...법안 통과 가능성↑

토큰증권의 법제화도 이 대통령의 공약집에 포함되면서, 관련 정책에도 추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토큰증권은 디지털 금융의 중핵으로, 우리 경제의 글로벌 확장 전략에 있어 필수적 전환점”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토큰증권이란 실물자산이나 기업 지분 등을 블록체인 기술로 디지털화해 발행하는 증권형 토큰이다. 부동산, 미술품, 스타트업 지분 등 그간 소수만 접근할 수 있던 자산을 쪼개어 거래할 수 있게 하면서 소액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 2023년 토큰증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단 한 건의 발행 사례도 나오지 않았다.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한 전자증권 발행을 허용하는 전자증권법과, 투자계약증권을 기존 자본시장법 체계에 포함시키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2년 가까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가 이번 대선에서 나란히 토큰증권 법제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데다 정치권 전반에서 큰 이견이 없는 분위기여서, 오는 7~8월경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야가 토큰증권 법제화에 한목소리를 내는 배경에는 블록체인 기술을 제도적 틀 안에서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 있다. 가상자산은 그간 극심한 가격 변동성과 불투명한 규제로 인해 정책 설계에 부담을 줘왔지만, 토큰증권은 실물자산을 기반으로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블록체인의 유동성, 자산의 세분화, 거래 효율성이라는 장점을 모두 담아낼 수 있다.
다만, 실물 가치와 토큰 시세 간 괴리, 자산 검증 및 공시 체계 부족 등 제도적 허점이 시장 투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토큰증권이 가장 활발히 활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조각투자 유통 플랫폼에 대해 금융위는 오는 9월부터 인가 제도를 신설, 증권사에 적용되는 투자중개업 인가 요건과 비슷한 수준의 기준을 적용할 계획을 밝혔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추진
![▲가상화폐 테더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cdn.thepublic.kr/news/photo/202506/265720_265888_1026.jpg)
이재명 정부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추진해 ‘원화 디지털화’에도 본격 시동을 걸 계획이다.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은 이름 그대로 가격이 안정적인 암호화폐다. 일반적인 코인들이 롤러코스터처럼 가격이 급변하는 데 반해,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원화 같은 법정화폐에 가치를 연동해 안정성을 확보한다. 테더(USDT), 유에스디코인(USDC) 등이 대표적인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 1코인은 1달러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이 대통령은 대선 당시부터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국제 결제 시장에서 원화의 존재감을 높일 전략 자산”이라며 추진 의지를 내비쳤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 패권을 강화하기 위해 달러를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코인 지원 정책을 적극 추진했듯이, 원화에 가치를 고정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국가 경제 전략의 한 축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해외의 경우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해 손을 잡고 공동 컨소시엄을 꾸리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는 중이다. 아울러 미국 의회는 현재 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을 공식 금융 시스템에 포함시키기 위한 법률 제정 논의도 병행해 진행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민간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적극적으로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 가상자산 시장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달리, 민간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5월 통화정책 간담회에서 “비은행 기관이 자유롭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며, 은행 중심의 발행 체계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둘러싼 정부와 한은 간의 조율이 향후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더퍼블릭 / 손세희 기자 sonsh821@thepub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