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모비스가 모듈과 핵심부품 제조 부문을 전담할 2개의 생산 전문 자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하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현대모비스는 모듈과 핵심부품 제조 통합계열사 설립을 통해 각 사업 부문의 전문성 제고와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하는 동시에 ‘불법 파견’ 논란을 해소하기 위함이라는 게 현대모비스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못다한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초석을 다지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8년 현대모비스의 인적분할을 통해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했지만, 주주들의 반대로 끝내 무산된 바 있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는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기아,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로 이어지며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는 현대모비스가 존재하고 있다.
<본지>는 현대모비스의 이번 현물출자 방식의 제조 전문 자회사 설립과 일각에서 제기하는 지배구조 개편, 과거 지배구조 개편 시도 사례 등에 대해 짚어봤다.

제조 전담 자회사 신설 공식화…현물출자로 지분 100% 소유
[더퍼블릭 = 최태우 기자] 26일 증권가와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지난 18일 보도자료를 내고 자사의 모듈과 핵심부품 제조를 전담할 생산 전문 자회사 두 곳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대모비스(AS 부문), 모듈 제조 자회사, 부품 제조 자회사 3개로 분할되는 구조다. 다만 설립되는 자회사는 ‘제조’ 부문에만 한정된다. 예를 들어 모듈과 부품관련 연구개발 부서는 현대모비스에 소속되는 식이다.
이에 따라 울산·화성·광주 등지의 모듈공장 생산조직은 모듈제조 자회사로, 에어백·램프·제동·조향·전동화 등 핵심부품공장 생산조직은 부품 제조 자회사로 재배치된다.
이들 자회사는 현물출자 방식을 통해 현대모비스가 신설 법인의 지분 100%를 소유하는 구조로, 모듈과 핵심부품 제조 통합계열사 두 곳을 설립해 각 사업 부문의 전문성 제고와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내달 임시 이사회를 열어 설립 안건을 승인하고, 오는 11월 새 자회사를 공식 출범시키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현대모비스의 생산 전문 자회사는 총 5곳이 될 전망이다.
신설 자회사는 해당되는 협력사의 인력 모두와 현대모비스의 생산관리 인력을 흡수한다는 계획이다. 생산설비 등은 앞서 현대모비스가 소유하고 협력사가 임차하는 방식으로 운영돼왔기 때문에 소유권의 이동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모비스는 특히 이번 생산 전문 자회사 신설로, 사내하청이 모두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현대모비스는 100%에 달하는 사내하청 방식으로 생산라인을 운영해왔는데, 이번에 약 10개 협력사(6000여명)에 근무하는 인력을 모두 자회사 정규직으로 고용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사측의 결정은 최근 논란이 됐던 포스코의 사내하청관련 대법원의 판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법적 리스크에 대한 우려다.
지난달 대법원은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 59명을 포스코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이 제철업계에 이슈로 자리잡았던 불법 파견 논란에서 노동자들의 편을 들어준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모비스는 계열사를 설립해 이들 생산 전문사 인력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불법 파견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제철이 지난해 현대ITC·IMC·ISC 등 자회사를 설립해 협력사 직원 상당수를 고용하며 불법 파견 문제를 해결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이번 자회사 설립으로 현대모비스의 별도재무제표 기준 자산규모는 다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듈과 핵심부품의 제조 영역에 해당하는 자산 일부가 자회사로 넘어갈 것으로 전망되면서다.
현재까지 현물출자 규모를 알 수 없지만, 모듈과 핵심부품에서 발생하는 매출 규모를 통해 대략적인 수치를 짐작할 수 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기준 매출 41조7022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모듈과 핵심 부품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33조2654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79.8%가 모듈과 핵심 부품에서 나왔다.
현대모비스의 일부 직원도 신설 자회사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모비스 직원 1만1259명 중 9136명이 모듈 및 부품 제조사업 소속 직원이기 때문이다.

지배구조 개편해 오너 ‘지배력 강화’?
이처럼 현대모비스가 현물출자를 통해 자회사 신설을 결정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지난 16일 현대모비스가 주요 사업부문인 모듈과 부품 부문을 분할해 자회사로 설립한다는 내용이 알려지자, 주가는 3거래일간 8% 이상 하락세를 보였다. 개인 투자자들의 매도 행렬이 이어진 탓이다.
15일 기준 22만6000원이던 주가는 이날 장중 21만2500원까지 하락하며 6.18% 급락했다. 이후 사측이 공식발표하면서 19일에는 주가가 일부 반등했다. 한주간 현대모비스의 주가는 등락을 거듭한 끝에 1만2000원(-5.3%) 하락한 21만45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26일 오후 2시 기준으로는 21만2000원까지 하락했다.
당시 사측은 그간 생산 전문사 위탁 방식 운영에서 제기됐던 ‘불법 파견 리스크’ 해소를 이유로 자회사 신설 이유를 설명했지만, 업계와 투자자들 사이에선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순환출자 고리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의 기업 가치를 자회사 설립으로 떨어뜨려 상속세 납부 부담을 줄이는 등 향후 있을 승계 작업과 지배력 강화를 노리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기아,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가 서로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현대차의 최대 주주인 현대모비스는 현대차의 최대 주주로 지분 21.4%를 갖고 있으며, 현대차는 기아 지분 33.9%, 현대제철과 현대글로비스 지분 6.9%와 4.9%를 보유하고 있다. 기아 역시 현대모비스 지분 17.4%, 현대제철 17.3%를 소유하고 있다. 현대제철과 현대글로비스는 각각 현대모비스 지분 5.8%, 0.7%를 갖고 있다.
오너일가의 개인 지분 보유 현황은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차 지분 5.3%, 현대모비스 지분 7.2% ▲정의선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20%, 현대차 지분 2.6% 기아 지분 1.7% 현대모비스 지분 0.32%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그룹 순환출자 고리의 핵심에 위치해 있지만,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은 소수점에 그치는 만큼, 지배력 강화를 위해선 현대모비스의 기업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현대모비스 측은 사업분할 공시를 통해 “자회사 설립으로 모비스의 기본적 사업구조 변화는 없다”며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의 연관성에 대해 선을 그었다.
과거 사례, ‘지배구조 개편’설에 신빙성 ↑
그러나 지난 2018년에 있었던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실패 사례가 이번 현대모비스 자회사 신설 논란에 신빙성을 더했다. 이번 현대모비스의 생산 전문 자회사 설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8년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현대모비스의 핵심부품 사업부문(존속 법인·79%)과 모듈·AS부품 사업부문(신설 법인·21%)을 인적분할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후 분할된 모듈·AS부품 사업부문을 현대글로비스와 협병하기로 결정했으며, 합병 이후엔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주식과 기아가 보유한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맞교환할 예정이었다.
분할합병을 통해 자산 규모가 상승한 정 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주식과 인적분할로 자산 규모가 축소된 기아의 현대모비스 주식을 맞바꾼다는 것이다.
당시 이 같은 지배구조 개편안이 추진됐더라면, 기아와 현대모비스의 순환 출자 고리를 끊어내는 동시에 정 회장이 기아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주식을 취득하면서 그룹 내 지배력도 강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지배구조 개편안은 주주들과 기관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끝내 무산됐다.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 모듈·AS부품 사업 부문의 합병비율에 불만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대모비스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가격보다 낮아지는 현상도 발생하면서 현대차그룹은 결국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지배구조 개편 추진을 자진해서 철회하기도 했다.
‘물적분할’ 두고 ‘현물출자’ 선택한 속내는?...증권가 보고서 예의주시해야
이번 ‘현물출자’ 방식의 자회사 설립은 현대모비스가 자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한다는 점에서 지난 2018년 ‘인적분할’ 방식이 아닌, ‘물적분할’ 방식과 유사하다.
다만, 현물출자 방식은 이사회 결의를 거친 뒤, 주주총회에서 참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총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물적분할과 진행 과정이 다소 다르다.
현물출자 방식은 주주총회를 거치지 않아도 자회사 설립이 가능하다. 이사회 결의 과정을 거친 뒤 법원이 선임한 검사인의 조사를 받으면 된다. 검사인 조사는 현물 자산이 지나치게 고평가 또는 저평가됐는지 점검하는 절차다.
이에 따라 현대모비스는 주주 반발 여론을 고려해 물적분할이 아닌, 현물출자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신설 법인은 모회사가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인 만큼 사업 부문을 이전해도 모회사의 가치는 하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향후 자회사가 유가증권시장 등에 상장할 경우에는 말이 달라진다. 이 경우 자회사 사업에 가치를 부여하는 주주들은 모회사 지분을 팔고 자회사에 투자하게 된다.
특히 자회사가 상장에 나선다는 확증이 없더라도 자회사와 모회사 중복 상장에 대한 우려로 인해 모회사의 주가가 하락하기 마련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분할·상장하는 과정에서 LG화학의 주가가 급락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관련해 이상훈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은 “설립 후 현물출자 방식은 주총을 거치지 않지만, 부동산·채권·근로 관계·지식재산권 등 회사를 구성하는 요소마다 이전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IMF 이후 기업 구조조정이 용이하도록 주총 한 번으로 분할과 출자까지 가능하도록 마련한 제도가 물적분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굳이 절차가 복잡한 설립 후 현물출자 방식을 택한 건 해당 사안이 입에 오르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속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에서는 현대모비스의 현물출자 방식의 자회사 설립을 두고 업계와 증권가 등의 시각이 나뉘는 만큼 부정적인 평가가 담긴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를 예의주시 해야 된다는 말도 나온다.
증권사는 유가증권시장 등에 상장된 기업들을 평가하는 동시에 기업들로부터 회사채 발행 등 일감을 받는 입장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기업들의 경영 행보 등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담은 보고서 등을 내기 곤란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점을 감안할 때 기업 오너와 직접 관련된 지배구조 개편에 애널리스트들의 부정적인 전망이 나온다면 다소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향후 재개될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장기 포석 측면에서 이번 현대모비스의 자회사 신설을 해석할 수 있다. 지배구조 개편은 명분과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업구조 개편을 수반하기 때문”이라며 “목적지는 동일하지만 경로가 다양해진 셈”이라고 전망했다.
더퍼블릭 / 최태우 기자 therapy4869@thepublic.kr
더퍼블릭 / 최태우 therapy4869@thepub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