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퍼블릭=안은혜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퇴직연금 제도 전반을 바꾸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 퇴직연금을 국민연금처럼 전문가가 모아서 굴리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퇴직연금은 국민연금과 같은 노후 소득 보장 통장과 같다. 민주당은 퇴직연금 수익률 저조를 명분으로 퇴직연금 제도를 바꾸려고 한다.
퇴직연금의 전체 수익률은 지난 5년 간 2%대 불과하고, 10년의 장기 수익률에 있어서도 유사한 수준에 그쳤다.
현재 우리나라 퇴직연금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계약형' 제도다. 근로자가 직접 금융상품을 선택하고 운용을 지시하는 방식이지만, 전문 지식이 부족한 대다수 가입자에게는 사실상 '방치형 연금'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물가상승률도 못 좇아가는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들은 적립금 규모에 따라 꼬박꼬박 수수료를 떼어 가입자들의 불만을 키워왔다.
고질적인 '저수익·고수수료'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여당이 내놓은 해법은 '기금형 퇴직연금'이다. 가입자들의 적립금을 한데 모아 기금을 만들고, 전문 운용기관이 체계적인 위험관리와 분산투자를 통해 수익률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퇴직연금 기금화는 이재명 대통령 공약 사항이기도 했다.
지난 3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자문단'을 출범한 노동부는 앞서 6월까지 준비를 마칠 예정이었으나 현재까지도 논의 중이라는 입장이다. 노동부는 '수탁자 책임'을 두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계약형은 투자자가 자기 책임하에 연금을 굴리지만, 기금형은 수탁자가 손실을 내더라도 사용자와 노동자가 감수해야 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연내 정부 입법은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밝혔다.
연내 정부 입법은 무산됐지만 대신 여당 정책위의장의 주도로 국회가 총대를 매고 나섰다. 민주당은 한정애·안도걸 두 의원안을 중심으로 '수탁 주체'를 조율 중이다.
한정애 의원은 노사 공동 운영 수탁법인을 세우고 국민연금공단도 퇴직연금 운용 주체로 참여시키자고 해왔고, 안도걸 의원은 허가받은 민간 전문 운용사들을 경쟁시켜 수익률을 높이자는 입장이다.
학계에서도 기금형 도입의 필요성을 한목소리로 강조한다.
최경진 경상국립대 교수는 "개인에게 운용을 맡기는 현행 계약형보다 전문가가 체계적으로 운용하는 기금형이 수익률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며 푸른씨앗을 좋은 본보기로 제시했다.
국내 유일의 기금형 모델인 근로복지공단의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은 2022년 출범해 시장이 불안정했던 시기에도 안정적인 성과를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국민연금 기금이 -8.28%의 손실을 기록했을 때도 2.45%의 플러스 수익률을 냈고, 2023년 6.97%, 2024년 6.52%, 올해 상반기에는 7.46%의 높은 수익률을 달성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정창률 단국대 교수 역시 "지배구조 개편을 통한 수익률 증대를 위해 기금형 도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21일부터 활동을 재개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인 오기형 의원은 "연금특위 내 퇴직연금 분과를 만들어 최대한 속도를 낼 것"이라고 전했다.
안도걸 의원과 같은당 박민규 의원은 각각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근로자가 기금형 퇴직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기업 직장인은 물론 자영업자까지 누구나 자신의 투자 성향에 따라 기존의 계약형과 새로운 기금형 중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21일 조선일보 칼럼에서 "퇴직연금 기금이 코스피 5000 공약의 땔감으로 쓰일까 걱정"이라며 "주식시장에 안정적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것만으로 주가는 어느 정도 오를 수 있지만 거품이라면 결국 사상누각"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근로자의 은퇴 후를 진심으로 챙긴다면 앞으로 40년도 걸리지 않아 기금이 소진될 국민연금 개혁이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잠자던 400조 퇴직연금 시장이 국민의 든든한 노후 버팀목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더퍼블릭 / 안은혜 기자 weme35@thepub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