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퍼블릭=최얼 기자]최근 체코 원자력 발전소 수주 ‘굴욕 계약’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실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체코원전 수주 계약과정을 다시 들여다 보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지난 1월 한수원·한전과 웨스팅하우스가 체결한 '글로벌 합의문'내용 중 일부가 언론을 통해 공개됐고, 이를 두고 여권 일각에서 한국이 계약을 서두르다가 이권을 미국 웨스팅하우스(WEC) 내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직접 계약을 체결한 이재명 정부에서 진상규명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19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강훈식 비서실장이 오늘 오전 일일점검회의에서 한수원·한전 및 웨스팅하우스 간 협정에 대해 국민적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진상 내용을 보고하라고 산업통상자원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강 대변인은 "한수원·한전은 공공기관"이라며 "웨스팅하우스와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법이나 근거가 다 있었는지, 원칙과 절차가 다 준수됐는지 두 가지 부분을 조사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뿐 아니라, 여야에서도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왔다. 여권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매국적 불평등 조약”이라며 ‘상임위원회 차원 진상조사’에 들어가겠단 입장이 나온 반면, 국민의힘은 해당 논란에 대해 “(이번 합의는) 체코 원전 수주뿐 아니라 K-원전의 미국시장 진출 교두보를 마련하는 ‘윈윈’ (win-win)협상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며 긍정적인 입장이 나왔다.

그럼 이 대목에서 한수원-WEC 간 지재권(지식재산권) 합의내용을 짚어보자. 합의문에는 먼저 한수원과 한전이 원전을 수출할 때 ▲원전 1기당 6억5000만달러(약 9000억원)의 물품 및 용역 구매 계약을 웨스팅하우스에 제공 ▲원전 1기당 1억7500만 달러(약 2400억원)의 기술 사용료 납부 ▲북미·EU·영국·우크라이나·일본 단독 수주 제한 ▲소형모듈원전(SMR) 수출 시 WEC 승인 필요 등의 조항이 담겼다.
이에 당초 체코원전 2기에 23조원을 약속받았던 수주계약은 해당금액(23조원)에서 체코 정부가 요구한 현지화율 60%(13조원)와 WEC에게 1대당 1조 1400억원(기술 사용료 2400억원 + 용역비 9000억원 용역 구매 등)을 뺀 7조 7600억원 규모가 된다. 결국 23조원 규모의 원전사업이 WEC와의 지재권 협상으로, 8조원 미만의 사업으로 결론난 것이 “매국적 불평등 조약”이라는 여권 비판의 주요골자다.

그러나 원전업계에서는 이번 협상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건 아니라는 입장이 제기된다. 업계관계자는 <본지>에 “소송전으로 시간을 끄는 것 보단 오히려 이게 나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라며 “전체 수주금액을 생각하면 웨스팅하우스에 지급하는 돈은 큰 액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당초 WEC측에서 제동을 건 이유가 한국이 체코에 공급하려한 APR1400을 본인들의 기술이라고 언급한 만큼, 지재권 분쟁을 종결하지 않았다면 이번 협상 뿐 아니라 앞으로의 수주전에서도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관계자는 북미와 유럽의 단독 수주가 제한됐다고 하더라도 큰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입장도 전하며 “오히려 이번 협상으로 한국이 미국 내 건설파트너로서 길이 개척될 수 도 있단 평가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원천 설계 기술을 가진 웨스팅하우스의 경우 지식재산권을 가졌지만 시공 역량이 없어, 대규모로 원전 건설을 위해 시공‧기자재 조달‧운영 과정을 주도할 수 있는 한수원이 휼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챗GPT 역시 이번 지재권 협상을 비판하는 것 보단 옹호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는 취지의 입장을 전했다. 챗GPT는 ‘너는 그럼 협상에 대한 비판주장과 옹호주장 중 뭐가 더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해?’라는 질의에 “둘 다 일리가 있지만, 맥락에 따라 옹호 쪽이 현실적으로 조금 더 타당해보인다”라며 “종속될 수 있다는 주장도 일리 있지만, 지금 글로벌 원전 시장의 정치·금융 구도를 보면 WEC와 협력하지 않으면 한국이 들어가기 어려운 시장이 많다”고 설명했다.
챗 GPT는 또 ‘WEC가 설계랑 기술을 제공하고 한수원에서 EPC를 제공하면 윈윈이 될 수 있느냐’는 질의에 “WEC가 설계‧기술을 제공하고 한수원이 EPC(설계·조달·시공) 수행이 가능하면 구조적으로는 충분히 윈윈이 가능하다”며 “다만 한수원이 단순 하청처럼 보이지 않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현재 한수원과 WEC는 지분 배분과 사업 주도권 문제에서 아직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져 이 부분도 함께 신중히 고려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원전협력이 오는 25일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서도 의제로 오를 수 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며, 외교가에서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원전 확충을 위해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와함께 황주호 한수원 사장이 정상회담 직전 미국 출국 일정을 잡았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그는 국회에서 “유럽보다 미국 시장을 겨냥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며 방향성을 제시한 바 있는 인물이다.
즉 ‘한수원-WEC’의 지재권 합의는 결국 이재명 정부의 협상역량에 따라 ‘원전산업의 새로운 활로’가 될 가능성도 존재하지만, 반대로 여권의 비판대로 ‘호구딜’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것.

더퍼블릭 / 최얼 기자 chldjf1212@thepub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