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TSMC 질주 뒤에는 '민관 원팀' 있었다… "정부는 성장 조력해야

엔비디아·TSMC 질주 뒤에는 '민관 원팀' 있었다… "정부는 성장 조력해야

  • 기자명 양원모 기자
  • 입력 2025.06.09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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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PCAST·대만 불간섭 원칙
민간 창의성 극대화가 성공 비결
한국은 '형식적 의견 수렴' 그쳐
"정부 주도 시대 끝났다" 지적
싱가포르·일본·독일도 민관 협업 가속

반도체 웨이퍼 [사진=연합뉴스]
반도체 웨이퍼 [사진=연합뉴스]

[더퍼블릭=양원모 기자] 글로벌 반도체 패권을 쥔 엔비디아와 TSMC의 성공 비결로 '민간 주도 정책'이 주목받고 있다. 정부가 규제와 간섭을 최소화하고 민간의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분석이다.

9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09년 취임 직후 과학기술자문위원회(PCAST)를 민간 중심으로 재편했다. 에릭 슈밋 전 구글 회장과 폴 오텔리니 전 인텔 사장 등 빅테크 수장들이 대거 참여했다. 단순 자문이 아닌 정책 설계 주체로 민간을 끌어들인 것이다.

PCAST는 '미국 첨단 제조업 리더십 확보 방안', 'STEM 인재 양성 방안' 등 굵직한 보고서를 연이어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미국은 첨단 제조파트너십(AMP)을 구축했고, 엔비디아 같은 글로벌 1위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

대만 TSMC의 성장사도 비슷하다. 대만 정부는 TSMC 설립 당시 자본금의 절반을 투자한 대주주였지만 경영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모리스 창 창업주의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했다. 덕분에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철저히 지켜졌다.

반도체 장비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대만에는 TSMC뿐 아니라 미디어텍 같은 설계 회사들도 함께 성장했다"며 "정부와 민간이 함께 만든 생태계가 대만을 글로벌 일류로 끌어올렸다"고 <서울경제>에 말했다.

싱가포르는 2017년 미래경제위원회(CFE)를 출범시켰다. 장관과 기업 CEO, 학계·노동계 인사들이 모여 23개 산업별 디지털 전환 청사진을 공동 작성했다. 산업별로 민관이 공동 의장을 맡아 실행까지 책임졌다.

일본도 2022년 반도체 부활을 위해 '라피더스'를 설립했다. 도요타·소니·NTT 등 8개 대기업이 자본을 출자하고 정부가 9조원을 지원하는 구조다. 독일은 2023년 지멘스에너지에 75억 유로의 지급 보증을 제공하며 그린수소 기술 개발에 공동 투자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 CEO는 "우리나라도 비슷한 조직을 만든 적이 있었지만, 중요 일정이 있는데도 대면 회의를 강요하는 등 조직과 사고가 관료화돼 있어 유연한 아이디어를 내기 힘들었다"고 <서울경제>에 말했다. 김정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정부가 업계 의견을 듣겠다고 불러 모으는 자리는 많지만 대부분 형식적으로 듣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국 경제가 메모리반도체 이후 글로벌 1위 기업을 배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짜고 예산을 배분하다 보니 민간의 창의성이 억제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책 패러다임 전환은 불가피하다. 네덜란드 ASML의 EUV 노광장비나 오픈AI의 챗GPT 수준의 기술을 모방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중국의 추격도 위협적이다. 딥시크가 보여준 AI 기술력, 로봇·드론·배터리 분야의 약진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고기술 첨단 제조업 비중은 이미 16%에 달한다. 구윤철 전 국무조정실장은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민간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조력자가 돼야 한다"고 <서울경제>에 말했다.

구 전 실장은 "기업이 제대로 경영해서 돈을 잘 벌면 세수가 늘고 정부는 그 재정으로 복지든 교육이든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많아진다"며 "세수 부족을 걱정할 게 아니라 기업이 돈을 잘 벌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더퍼블릭 / 양원모 기자 ilchimw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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