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퍼블릭=안은혜 기자]"세계 곳곳에서 정치는 더는 '타협의 기술'이 아닌 '부족 전쟁' 양상으로 변모하고 있다"
심규진 스페인IE대 교수는 25일 신동아 칼럼에 이같이 말하며 "강한 리더십과 민생의 결합, 그것이 양극화 시대 민주주의 회복의 유일한 출구"라고 강조했다.
심 교수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보수 청년 단체인 터닝포인트USA의 설립자인 찰리 커크(31)가 대학 행사 도중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을 언급하며 "그의 죽음은 단순히 한 개인의 비극에 머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민주주의사회가 얼마나 쉽게 분열과 낙인, 폭력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는지 드러냈다"며 "합의와 토론 대신 조롱과 혐오가, 정치적 경쟁 대신 제거와 배제가 민주주의 언어를 대체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세계 곳곳에서 정치는 극단의 좌우, 전투로 변모했다"며 "피로감을 느낀 시민들이 '이제 그만'을 외치며 과거의 단순하고 확고한 질서를 그리워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칼럼에 따르면, 스페인은 좌파 정부가 여성부(현 평등부)를 앞세워 성평등정책과 성인지 교육을 밀어붙였다. 그러자 사회 곳곳에서 반발이 거셌다. 가톨릭 문화의 뿌리가 깊은 스페인 사회에서 과도한 젠더 행정은 오히려 가족과 전통 가치를 지키려는 보수적 심리를 자극했다.
한국에서 여성가족부 존폐 논란이 정치적 분열의 축으로 떠오른 것과 궤를 같이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젠더·인종·이민 문제를 둘러싼 좌파의 교조적 담론을 정면으로 공격하며 “정상적 상식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쳤다.
일론 머스크는 미성년 아들이 성전환 수술을 받고 가족을 떠난 경험을 계기로 좌파의 문화정책을 강하게 비판한 뒤 우파적 스탠스를 분명히 했다. 세계적 테크기업 CEO가 좌파적 ‘다양성 교리’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자, 대중 불만을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여겨졌다.
법조·언론·학계·NGO 같은 전통적 엘리트가 ‘진보적 가치’를 독점적으로 정의하고 대중에게 강요하는 구조 자체에 대해 분노했다.
복지국가의 상징으로 불렸던 스웨덴은 최근 높은 세금과 치솟는 집값, 이민자 복지 쏠림에 대한 불만으로 청년층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2023년 기준 7만3000명이 스웨덴을 떠난 주요 이유는 "내가 낸 세금이 나의 미래가 아니라 난민 복지로 흘러간다"는 불신이었다.
2018년 이후 유럽 최고 수준으로 기록된 갱단 범죄와 치안 불안이 겹치면서 청년층은 오히려 질서 강화와 공정 경쟁을 요구하게 됐다.
극우 소수 정당이었던 스웨덴민주당(SD)은 20~30대 남성을 중심으로 급부상해 2022년 총선에서 제2당으로 올라섰다. SD는 과거의 반이민·반EU 일변도에서 벗어나 청년층의 주거·일자리·안전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온건당과 함께 우파 연정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심 교수는 "정체성 갈등, 포퓰리즘, 정치 불신이 누적되는 사이 북·중·러의 중앙집권적 권위주의는 군사·외교 전선에서 오히려 ‘질서의 역설’을 과시했다"며 "혼돈의 민주주의와 정비된 권위주의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자, 시민들은 '국익·국가우선'에 반응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트럼프가 내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바로 그 욕구를 압축한 구호"라며 "자국민의 민생을 최우선에 두는 강한 국가,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일 단호한 리더십-결국 ‘스트롱맨’에 대한 갈망"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제도에 대한 회의가 깊어질수록 시민은 더 강력한 리더십과 신속한 결정을 요구하게 된다"며 "세계화가 불러온 불평등, 정체성 갈등, 치안 불안은 모두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더 많은 합의’가 아니라, ‘더 강한 질서’를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심 교수는 오늘날 양극화의 정치 토양은 이념보다 민생과 질서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다며 "세계화가 남긴 불평등과 정체성 갈등, 정보 과잉이 만든 제도 불신은 각국에서 새로운 스트롱맨과 신우파를 불러냈다"며 "민주주의가 이 요구를 타협과 협의의 언어로 번역하지 못한다면, 시민은 계속해서 '더 강한 리더십'을 주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치가 다시 신뢰를 얻는 길은 분명하다. 첫째, 민생 중심의 실력주의-공정한 기회, 규제 혁파, 일자리와 안전을 실제로 체감하게 하는 정책과 둘째, 책임 있는 강한 리더십-질서를 세우되 법치와 절차를 존중하는 리더십의 길"이라며 "극단의 정치가 만든 전투의 언어를 넘어 생활의 언어로 합의를 복원할 때, 민주주의는 다시 작동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답은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강한 리더십과 민생의 결합, 그것이 양극화 시대 민주주의 회복의 유일한 출구"라고 강조했다.
더퍼블릭 / 안은혜 기자 weme35@thepub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