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퍼블릭=안은혜 기자]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이 논의 중인 가운데 이를 회피할 목적으로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EB) 발행을 단행하는 상장사들이 늘고 있다.
경영권 위협을 우려한 기업들의 선제적 대응이라지만 이런 기업들 중 주가가 폭락하는 곳들이 생겨나면서 피해는 주주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고 있다.
25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23일까지 교환사채 발행액은 3조548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같은 기간 발행액이 1조2583억 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2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발행 건수도 올해 76건으로, 전년 42건과 비교하면 많이 늘어났다. 새 정부 들어 정치권을 중심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가 본격화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교환사채는 발행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 또는 타사주로 교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로, 자사주 기반 EB 발행이 3자 배정 유상증자와 동일한 효과를 내는 만큼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란 게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자사주를 기반으로 발행할 경우 자금 조달은 물론, 자사주 보유 비중을 낮추는 것이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기업의 이 같은 자사주 활용 전략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자사주를 활용해 발행된 교환사채의 소지인이 이를 주식으로 교환 청구를 할 경우 기존 주주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서다.
이에 자사주를 소각하는 대신 이를 담보로 교환사채를 발행할 경우 해당 기업의 주가는 내려가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4일 KCC는 보유한 자사주 17.24% 중 약 3.9%(약 35만주)를 소각한다고 공시했다. 나머지 9.9%(4300억 원 규모)는 EB발행, 4.3%(약 30만주)는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할 예정이다.
이날 KCC 주가는 11.75% 급락한 36만8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 때 17% 이상 빠지기도 했는데, 이는 '어닝 쇼크'로 시총이 하루만에 7000억 원 가량 증발했던 지난 2022년 2월15일(-21.04%) 이후 최대 낙폭이다.
자사주 9.9%(88만2300주)를 대상으로 교환사채 발행을 결정하자 자사주 소각을 기대했던 투자자들의 실망 매물이 출회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경희 LS증권 연구원은 "약 3조3000억 원(삼성물산 주식)의 저수익 자산을 활용하지 않고 굳이 4300억원 규모의 자사주 EB를 발행한 점은 주식 투자자 측면에서 이례적인 의사결정"이라며 "3차 상법 개정안에서 자사주 의무 소각이 포함될 것으로 관측되면서 소각을 피하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를 벗어나기 위한 정부와 자본시장 움직임과 반대되는 행보"라며 "이에 전날 주가가 11% 하락하는 등 시장이 반응했다"고 했다.
KCC는 "상기 계획은 이익 환원과 장기적 기업 경쟁력 강화를 병행해 모든 이해 관계자의 이익을 균형 있게 도모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세부적인 실행은 관련 법령 및 이사회 결의 등의 절차를 거쳐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EB 발행 공시로 곤욕을 치른 곳은 또 있다.
지난 3일 카카오페이 2대 주주인 중국 핀테크업체 알리페이가 보유 지분 8.47%를 기초로 6300억 원 규모의 EB를 발행한다는 소식에 카카오페이 주가가 10% 가량 빠졌다.
앞서 6월30일엔 태광산업이 보유 중인 자사주 전량(24.4%)을 담보로 3200억 원 규모의 EB를 발행키로 하자 주가가 11.24% 급락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상장사의 EB 발행은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흐름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지적한다.
기업 입장에서 자사주 소각이 수반되는 EB 발행이 경영권 위협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사실상 3자 배정 유상증자와 동일한 효과를 내는 만큼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퍼블릭 / 안은혜 기자 weme35@thepub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