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퍼블릭=안은혜 기자] 이틀 동안 치러진 21대 대통령선거 사전 투표율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34.74%로 집계됐다. 선거인 총 4439만1871명 중 1542만3607명이 사전투표를 했다.
이번 대선 사전 투표는 역대 최고 투표율을 기록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지만, 역대 최고 사전 투표율을 기록했던 2022년 20대 대선보다는 투표율이 2.19%p 낮았다.
첫째 날은 19.58%였지만 둘째 날인 30일은 15.16%로 집계됐다. 전국 곳곳에서 선관위의 선거 관리 부실이 드러나면서 투표 열기가 식은거라는 분석이다.
처음 논란이 시작된 건 사전투표 첫 날인 29일 오후다. 서울 신촌의 한 사전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투표소 밖으로 반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중앙선관위는 "사전투표 과정에서 관리 부실이 있었다"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다만 "기표 대기 줄이 길어진 상황에서 투표용지 발급 속도를 조절하지 못했다"며 "투표소 밖에서 대기하던 모든 선거인이 빠짐없이 투표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30일에는 오전부터 네 건의 투표 부실 논란이 불거졌다. 투표함에서 작년 총선 투표지가 발견되고, 투표 사무원이 중복 투표를 하는가 하면, 기표된 투표지를 이용한 자작극 의혹까지 나왔다.
이날 오전 경기도 김포시와 부천시에서 잇따라 지난해 22대 총선 투표용지가 1장씩 발견됐다. 사전 투표가 시작되기 직전 선거 사무원들과 참관인들이 관내·관외 투표함 내·외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선관위는 처음엔 "작년 투표에 참가한 선거인이 회송용 봉투에 투표지를 넣지 않고 집으로 가져가 보관했다가 올해 다시 몰래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후 늦게 "투표지가 뚜껑 틈 사이에 끼어 있어 작년 개표 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해 누락된 것 같다"며 "개표와 선거 물품 관리에 있어서 미흡했던 부분에 대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확인도 하지 않고 선거인 탓을 했다가 자기들 잘못으로 드러나자 뒤늦게 사과한 것이다.
이날 오후 강남구 대치2동 사전투표소에서는 선거사무원 A씨가 중복 투표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A씨는 전날 정오께 남편의 신분증으로 투표용지를 발급해 대리투표를 마친 뒤 5시간여 뒤 자신의 신분증으로 투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일 오후 5시11분께 "투표를 두 번 한 유권자가 있다"는 무소속 황교안 대선 후보 측 참관인의 신고를 받고 서울 수서경찰서 경찰이 출동해 A씨를 긴급체포했다. 강남구 보건소 소속 계약직 공무원인 A씨는 대선 투표사무원으로 위촉돼 유권자에게 투표용지를 발급하는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행 투표 절차에 따르면 선거인의 신분 확인 절차는 투표 사무원이 선거인의 신분증과 실제 투표인의 얼굴을 대조해 확인하는 게 전부다. 신분증을 스캔하고 지문과 서명을 받는다.
하지만 이는 나중에 중복 투표 가능성을 고려해 남겨놓는 일종의 ‘증거’ 차원일 뿐이다. 이 때문에 선관위가 선거인 신분 확인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 용인시 한 사전 투표소에서는 "회송용 봉투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기표된 투표용지가 반으로 접힌 채 나왔다"는 112 신고가 접수됐다. 이 신고는 한 20대 여성 투표인이 관외투표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회송용 봉투 안에 기표용지가 있다고 선거 참관인에게 신고하면서 알려졌다.
해당 기표 용지는 무효 처리됐다. 선관위는 "선거인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기표한 투표지를 전달받은 뒤 회송용 봉투에 넣은 자작극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하지만 본지 취재결과 선관위는 아무런 증거도 찾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를 의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자작극이라는 자작극'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잇따라 터진 선관위의 사전 투표 관리 부실이 투표율 하락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한 선관위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인력 관리와 장비 점검 체계를 확립하는 한편 선거관리 업무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관위 관리 부실 문제가 계속 되풀이되는 것은 내부적으로 상황을 해결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외부 기관 감사 등 상호 견제를 통해 부실 관리에 따른 합당한 처분과 조치가 이뤄지도록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투표용지가 외부로 반출된 상황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상식 밖의 모습"이라며 "부실 관리의 잘못이 드러나면 관련자들이 책임을 질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보수 성향 유권자가 많은 지역에서 사전 투표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져 투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더퍼블릭 / 안은혜 기자 weme35@thepub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