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퍼블릭=김종연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길바닥에 저질스럽고 수치스러운 내용의 현수막이 달려도 정당이 게시한 것이어서 철거를 못한다”며 법 개정을 지시했다. 본인 정권을 비판하는 문구가 걸리자 곧바로 ‘입법’ 카드를 꺼낸 것이다. 여권 내부에선 “정권 비판은 범죄, 비판 현수막은 불법이라는 인식”이라며 ‘표현 통제’ 우려가 예상된다.
13일 대통령실과 정치권 등을 종합하면, 이 대통령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당이라고 해서 지정된 곳이 아닌 아무 곳에나 현수막을 달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며 “악용이 심하면 법을 개정하든 없애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이어 “현수막을 달기 위한 정당인 ‘현수막 정당’도 있다더라. 일부에선 종교 단체와 연관됐다는 얘기도 있다”고 주장했다. 국무회의에 참석한 안규백 국방장관,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등 민주당 출신 장관들은 이 대통령 발언에 일제히 동조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등 각종 가짜뉴스 현수막을 걸었던 장본인의 발언이어서 국민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전국 곳곳에 내걸린 ‘반중’ 또는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의혹 관련 현수막을 정조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 군소 정당이 “이재명 정권, 중국에 굴복 말라” “김현지 실장 의혹 진상 공개하라” 등의 문구를 내건 직후였다.
과거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를 향해 ‘대통령은 오므라이스, 국민은 방사능 밥상’ 현수막을 내걸며 비판의 자유를 외쳤다”며 “이제 자신들을 향한 비판은 불법으로 규정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당 현수막은 원래 옥외광고물법의 규제를 받았다. 그러나 2022년 서영교·김남국·김민철 의원 등이 주도한 법 개정으로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후 2023년 재개정 때 ‘읍·면·동별 2개 제한’만 추가됐을 뿐, 내용 규제는 빠졌다. 민주당이 야당 시절 거리 정치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던 조항이었다.
하지만 대선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속출하자 민주당은 지난 9월 “국회의원이 속한 정당이나 직전 대선 득표율 1% 이상 정당만 게시 허용” 방안을 추진했다. 사실상 ‘군소 정당 입막음법’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인종 혐오나 차별, 왜곡된 정보의 유통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범죄”라며 반중 정서를 겨냥한 듯한 발언도 이어갔다. 그러면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길거리 현수막까지 입맛대로 가리겠다는 건 ‘드럼통에 비판을 넣고 태우겠다는’ 발상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공연·스포츠 암표 거래 관련 과징금 강화도 지시하며 “형사처벌 강화는 반대지만 과징금은 판매 총액의 10~30배로 세게 부과하라”고 했다.
더퍼블릭 / 김종연 기자 jynews1@thepub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