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조 퇴직연금 '쥐꼬리 수익률' 해결책은?…'기금형' 도입 추진 어디까지 왔나

430조 퇴직연금 '쥐꼬리 수익률' 해결책은?…'기금형' 도입 추진 어디까지 왔나

  • 기자명 안은혜 기자
  • 입력 2025.09.1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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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균수익률 2.07% 불과…국민연금 대비 3분의 1 수준
미국의 퇴직연금 수익률 높인 비결은?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규모가 431조 원을 돌파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규모가 431조 원을 돌파했다. @연합뉴스

[더퍼블릭=안은혜 기자]한국이 초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안정적인 노후'에 대한 필요성이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만으로는 초고령 사회의 노인 빈곤 문제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정부는 퇴직연금 단계적 도입 의무화와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를 국정과제로 삼았다. 400조 원 규모의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이 재추진되고 있다. 

17일 정부 및 국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규모는 431조 원을 돌파했다. 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05년 제도 도입 이해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2.07%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국민연금이 기록한 연평균 수익률 6.82%와 비교하면 '쥐꼬리 수익률' 꼬리표가 붙을만하다. 

내년 3월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소득대체율이 43%로 상향되지만, 안정적 노후 보장을 위해서는 퇴직연금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국민연금연구원 연금포럼(2025년 여름호)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퇴직연금 제도를 무시하고 노후 소득정책을 설계할 수는 없다"며 "퇴직연금이 국민연금 보험료 수입을 넘어서는 규모임에도 실제 노후 소득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제도적 허점 보완도 주문했다. 중간 정산과 일시금 지급을 제한하고, 1년 미만 단기 근로자도 퇴직급여 제도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퇴직연금이 본래 취지대로 작동할 경우 국민연금과 결합해 추가 소득대체율 18~20%를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퇴직연금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금융기관 중심의 '계약형' 제도는 구조적 한계로 퇴직연금은 사실상 '방치형 연금'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수익률은 지지부진한데도 금융기관은 꼬박꼬박 수수료를 떼어 가니 가입자들의 불만만 커져 왔다.

이에 전문가가 운용을 전담하는 '기금형' 체제 전환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가입자들의 돈을 한데 모아 거대한 기금을 만들고, 전문가 집단이 체계적으로 굴려주는 방식으로, 근로복지공단의 '푸른씨앗'이 효과를 증명했다. 

2022년 9월 출범한 푸른씨앗은 2023년 6.97%, 2024년 6.52%, 올해 상반기에는 연 환산 7.46%라는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심지어 국민연금이 -8%대 손실을 봤던 불안정한 시기에도 2%가 넘는 플러스 수익률을 내며 안정성을 입증했다.

문제는 이렇게 좋은 제도를 현재 30인 이하 사업장 근로자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행히 국회에서 퇴직연금을 기금화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민규·안도걸 의원 등은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근로자가 기금형 퇴직연금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나란히 발의했다.

하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지난 3월 출범한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 추진 자문단'은 당초 운영 기한이었던 지난 6월까지 논의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현재 연장 운영되고 있다. 

제3자가 기금을 운용하는 만큼 수탁자의 책임 원칙을 강화하는 방안이나 손실이 발생할 시 책임 소재 등에 대해 논의를 지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금형은 운용 주체에 따라 공공과 민간으로 나눌 수 있으며, 방식에 따라서는 단독 기관이 운용하는 것과 복수의 기관이 경쟁하는 방식 등으로 살펴볼 수 있다.

공공이 운용하는 방식으로는 국민연금공단이 기금형 퇴직연금 운용을 맡거나 별도의 퇴직연금공단을 설립해 운용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공공이 운용을 맡게 되면 연금 투자의 주요 원칙인 분산투자가 약해질거란 우려가 있고,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크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별도의 공단이 운용을 맡게 되더라도 경쟁 방식이 아닌 공단 단독 운용방식이라면 수익률 제고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비용 발생 부담이 단점이다. 호주나 미국 등 연금 선진국에서는 민간 사업자의 참여로 경쟁을 통해 수익률을 높이고 있다.

알아서 선택해주는 美 401k 퇴직연금 '눈길'

미국자산운용협회(ICI)에 따르면 미국의 대표적인 퇴직연금 계좌인 401(k) 자산의 70%는 주식에 투자하고있다. 가입자의 70%가 TDF(타겟데이트펀드)를 활용하고 있으며, 401k 운용수익률은 지난 20년(2001~2020년)간 연평균 8.6%에 달했다.

TDF는 은퇴 시점까지 남은 기간에 따라 주식과 채권의 비중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대표적인 은퇴 준비형 펀드다. 2006년 연금보호법과 QDIA(적격디폴트상품) 도입 이후 TDF는 표적인 퇴직연금 투자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QDIA에는 예적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은 아예 없다. 반면 한국의 확정기여형(DC형) 디폴트옵션에는 TDF뿐 아니라 은행 예·적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도 대거 포함돼 있다.

미국 금융투자전문가들은 미국과 한국의 퇴직연금 수익률 격차는 개인의 투자 실력이나 지식 차이가 아니라 투자 결정 주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제프리 산젠바허(Geoffrey Sanzenbacher) 보스턴칼리지 퇴직연구센터 연구원 겸 경제학 실무교수는 "아무런 투자 지식이 없는 일반인의 경우 선택지가 많을수록 대체로 가장 보수적인 결정을 내린다"며 "여기에 한국은 선택지에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포함돼 있어 가입자 대부분이 해당 상품을 고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고용주들이 TDF를 기본 옵션으로 적극적으로 지정할 수 있는 배경에는 연금보호법의 면책 조항이 있다. 이 조항은 디폴트옵션이 설정된 상품에서 운용 손실이 발생해도 기업이 투자자의 지시가 없었다는 이유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했다.

한동훈 앰플리파이ETFs 아시아시장 총괄 상무는 "국내에는 미국처럼 면책 조항이 없어 기업이 책임을 피하려 선택권을 근로자에게 떠넘길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국내에서도 고용주가 TDF를 기본 디폴트옵션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미국과 유사한 법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더퍼블릭 / 안은혜 기자 weme35@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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