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이화영 재판 파행’ 김형태의 자충수와 이재명의 ‘빌드 업’

[집중분석]‘이화영 재판 파행’ 김형태의 자충수와 이재명의 ‘빌드 업’

  • 기자명 김영일
  • 입력 2023.08.11 19:24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지난 6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혁신기구 1차 회의에서 이재명 대표와 김은경 위원장이 인사하고 있다.

 

[더퍼블릭 = 김영일 기자] 바둑에서 자기가 놓은 돌로 인해 스스로 활로를 줄여 상대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을 ‘자충수(自充手)’라고 한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800만 달러 대북송금 혐의 공범으로 추가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최근 재판에 변호인으로 출석한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의 김형태 법무법인 덕수 대표변호사가 자충수를 둔 모양새가 연출됐다.

김형태 변호사는 이화영 전 부지사가 지난달 초 검찰에 진술한 내용을 뒤집기 위해 재판부에 증거의견서(증거인부서) 등을 제출했으나, 정작 이 전 부지사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제출했던 것으로 드러나 재판지연 등의 ‘미션’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구심과 함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방탄 의혹만 더 짙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증거의견서에는 검찰과 김성태 전 회장의 회유‧협박으로 이 전 부지사가 허위진술을 했다는 근거가 담겼는데, 이 근거가 되레 이재명 대표의 상왕(上王)으로 지목되는 이해찬 전 대표에게로 불똥이 튀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이 이재명 대표를 넘어 이해찬 전 대표에게까지 칼끝을 겨눌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런 상황에 문재인 청와대 출신 민주당 의원들이 민주당에 대한 수도권 민심이 좋지 않은 원인을 공부하기 위해 경남 양산에 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굳이 양산까지 가서 수도권 민심이 안 좋은 원인을 공부해야하는지 쉽사리 납득이 가진 않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재인 청와대 출신들이 양산에 간다면 ‘포스트 이재명’ 체제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오가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개딸’이라는 열렬한 지지층을 뒷배로 두고 있는 이재명 대표는 당 혁신위원회를 통해 대의원제를 무력화하는 등 당권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특히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으로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옥중공천 등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빌드 업(build-up)’을 끝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더퍼블릭>이 이재명 대표 측으로부터 재판지연이라는 ‘미션’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김형태 변호사의 자충수와 김은경 혁신위를 통한 이재명 대표의 ‘빌드 업(build-up)’에 대해 짚어봤다.

‘미션’ 받고 재판에 출석한 김형태? ‘파행’된 재판

지난 8일 수원지방법원 형사11부(부장판사 신진우) 심리로 열린 이화영 전 부지사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등 42차 공판에, 변호인단에 이름만 올리고 한동안 법정에 나오지 않았던 법무법인 덕수의 김형태 대표변호사가 이 전 부지사의 변호인으로 출석했다.


‘대북송금은 쌍방울의 독자적 대북사업을 위해 지불한 대가로, 경기도나 본인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던 이화영 전 부지사는 7월 초 검찰에 ‘2019년 쌍방울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방북 비용(300만 달러)을 대납하기로 한 것을 당시 이 지사에게 보고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이 전 부지사의 배우자 백모 씨는 지난 41차 공판(7월 25일)을 앞두고 줄곧 이 전 부지사를 변호해왔던 법무법인 해광에 대한 해임신고서를 재판부에 제출했으나, 이 전 부지사는 41차 공판에서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해임 여부를 두고 부부 간 이견이 조율되지 않은 탓에 해광 측은 42차 공판 전날(지난 7일) 재판부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함에 따라 8일 공판에는 김형태 변호사가 이 전 부지사의 변호인으로 출석한 것인데, 김 변호사는 검사 측과 고성을 주고받는 등 재판을 파행시켰다.

지난 공판에 이어 이날 공판에도 해광 측이 불출석하자, 검사 측은 “피고인(이 전 부지사)이 국선변호인을 통해서라도 다음 재판을 진행할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고, 김형태 변호사는 “멀쩡하게 나온 변호사를 두고 국선 변호인을 운운하는 것은 변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유령 취급하는 것이냐”며 발끈했다.

검사 측과 김 변호사의 감정다툼은 이 전 부지사가 그동안 고수해왔던 입장을 번복한 검찰 진술조서에 대한 김 변호사의 증거의견서(증거인부서) 제출을 두고 격화됐다.

김 변호사는 “피고인으로부터 검찰의 회유와 협박이 있었다는 진술을 받았고, 해광 측도 (이 전 부지사가 입장을 바꾼 진술조서에 대한)내용을 부인하겠다고 해서 증거관련 의견을 제시한다”고 말하자, 검사 측은 재판부에 “피고인의 입장인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김 변호사는 “당신이 변호사인가?”라고 소리쳤고, 검사 측은 “검사한테 당신이라고 하는 게 맞느냐”고 맞받으면서 소란이 일었다. 이에 재판부는 10분간 휴정했다. 재개된 재판에서 김 변호사는 검찰 진술조서에 대한 증거의견서와 재판장 기피신청서 및 변호인 사임계를 잇달아 제출했다.

이에 검사 측이 “지난 7월 25일 공판에 무단 불출석했는데 피고인과 상의 후에 재판부 기피신청이나 증거부동의 의견을 내는 것인가? 진술조서를 오로지 부인하는 어떤 ‘미션’을 받고 온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의구심을 내비치자, 김 변호사는 “훈계하지 말라. 무슨 미션을 받았다는 것이냐. 재판장님, (검사가)미션을 얘기하는데 놔두시는 거냐”고 따졌다.

이에 재판장이 “변호사님”이라며 언성을 높여 김 변호사를 제지하자, 김 변호사는 “왜 소리를 지르나. 40년 동안 이런 재판은 처음 해본다”며 법정을 뛰쳐나가, 이 전 부지사에 대한 42차 공판은 파행됐다.

 

▲ 법무법인 덕수 김형태 변호사.

 

이화영 “법무법인 해광 변호 하에 재판 진행했으면”…‘재판지연’ 미션 성공?

재판을 파행시킨 김형태 변호사의 이날 출석은 피고인 의사와는 무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화영 전 부지사는 재판부에 “아내와 오해가 있었다. 해광의 변호를 계속 받고 싶다”면서 “다음 (공판)기일엔 해광의 변호 하에 재판을 진행했으면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김 변호사가 퇴정하기 전 제출한 증거의견서에 대해선 “처음 들었고, 읽어보지 못했다. (변호인 의견에)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힘에 따라, 증거의견서는 반려되고 재판부 기피신청서도 철회됐다.

당초 이날 재판에선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에 대한 검사 측 증인신문과 김 전 회장과 대북송금을 공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은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특히 검사 측은 이 전 부지사가 검찰에 진술했던 내용을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법정증언’으로 확인하려 했으나, 김 변호사의 재판 파행으로 다음 공판 기일인 오는 22일로 미뤄졌다. 이 전 부지사 재판은 매주 화요일마다 열리는데, 15일은 광복절이기 때문에 22일에 43차 공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검찰은 당초 42차 공판에서 김성태 전 회장 및 안부수 회장에 대한 증인신문 그리고 이 전 부지사의 법정증언을 토대로 이재명 대표를 8월 중 피의자 신분으로 한 차례 소환한 뒤, 제3자 뇌물죄 또는 직접 뇌물죄 혐의로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김 변호사의 재판 파행으로 증인신문 및 법정증언이 연기됨에 따라,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도 9월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증거의견서에 등장한 이해찬…이화영은 왜 입장을 바꿨을까?

미션을 받고 이화영 전 부지사의 42차 공판에 출석한 것으로 의심되는 김형태 변호사가 제출한 증거의견서에는 “피고인(이 전 부지사)은 김성태와의 대질신문 등 검찰 조사에서 ‘2019년 7월 필리핀 국제대회 당시 쌍방울에 이재명 경기지사의 방북을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국제대회 후 이재명에게 보고’, ‘2019년 12월 총선 출마를 위해 평화부지사 퇴임 시 쌍방울이 북한에 돈을 준 것을 이재명에게 보고했다’는 내용으로 허위 진술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이 전 부지사가 검찰에 ‘2019년 쌍방울에 이재명 지사의 방북을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이 전 부지사의 부탁을 받은 쌍방울은 이 지사 방북 추진비용을 북한에 대납했으며, 이 전 부지사는 이를 이 지사에게 보고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는데, 해당 진술이 허위라는 주장이다.

김 변호사는 “피고인에 대한 (검찰과 김성태 전 회장의)회유·압박 및 신체 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등에 따라 ‘임의성(任意性-제약받지 아니함)’이 의심되는 피고인의 자백”이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의 이러한 주장은 검찰과 김 전 회장의 회유·압박, 장기간 구속 등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의 진술은 증거로서 효력이 없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김 변호사는 특히 김 전 회장의 회유·압박과 관련 “김성태 전 회장은 피고인이 허위진술을 거부하면 본인(김 전 회장)이 과거 ▶이재명 재판 당시 2심 재판부에 로비한 사실 ▶이재명 측근 김용을 통해 이재명에게 후원금을 기부한 사실 ▶이해찬‧조정식 등이 관여한 이재명을 돕는 ‘광장’이라는 조직에 비용을 댄 사실 등을 모두 폭로하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즉, 김 전 회장이 이재명 대표 측에 대한 폭로를 빌미로 이 전 부지사에게 허위진술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다만, 증거의견서 내용대로라면 김 전 회장이 거론했다는 폭로 내용이 사실이기 때문에 이 전 부지사가 검찰에 허위진술을 했다는 얘기가 된다. 김 전 회장의 폭로가 사실이 아니라면 이 전 부지사가 굳이 허위진술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김 전 회장이 거론했다는 폭로 내용은 사실이고, 김 전 회장이 이를 검찰에 진술할 경우 이 전 부지사가 ‘주군(主君)’으로 모시던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에게까지 피해가 갈 것을 우려, 이 전 부지사가 검찰에 ‘쌍방울의 방북 추진비용 대납을 이재명 지사에게 보고했다’고 사실대로 진술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6월 6일자 JTBC 단독 보도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검찰에 이 전 부지사가 이해찬 전 대표에게 줄 용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2020년 4월~2022년 3월까지 매달 3000만원 씩 2년간 총 7억 2000만원 상당의 돈을 이 전 부지사에게 건넸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한다.

아울러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 외에도 경기도 용인의 한 부동산 시행업자로부터 매달 2000만원을 지원받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6월 8일자 TV조선 단독 보도에 따르면, 이 업자는 검찰에 “이 전 부지사에게 매달 2000만원을 지원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종합하면,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로부터 2020년 4월~2022년 3월까지 2년간 매달 3000만원 씩을 건네받아 이해찬 전 대표에게 전달했고, 부동산 업자에게서도 매달 2000만원씩 지원 받았다는 것이다.

 

▲ 지난 6월 6일자 JTBC 보도 캡처.

 

‘쌍방울·부동산업자→이화영→이해찬’으로 전달된 돈…불법 대선자금 의혹

일각에서는 ‘쌍방울·부동산업자→이화영→이해찬’으로 돈이 전달됐고, 이는 이재명 대표의 대선자금으로 사용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앞서 거론한 바 있듯, 김형태 변호사가 법정에 제출한 증거의견서에는 김성태 전 회장이 “이해찬‧조정식 등이 관여한 이재명을 돕는 ‘광장’이라는 조직에 비용을 댄 사실 등을 폭로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광장’은 이해찬 전 대표의 조직이었다.

2021년 5월 12일,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전국 조직격인 ‘민주평화광장’이 공식 출범했는데, 민주평화광장은 이해찬 전 대표의 지지 모임이자 싱크탱크였던 ‘광장’을 확대재편 한 조직으로, 당시 이해찬계로 분류되는 조정식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김성태 전 회장이 광장에 비용을 댄 게 사실이라면, ‘쌍방울·부동산업자→이화영→이해찬’으로 전달된 돈은 이재명 대표의 대선자금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이는 공식후원금 외에 정치자금을 조달한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까지 번질 수 있는 사안이다.

이 전 부지사가 그동안 일관되게 고수해온 입장을 뒤집고 검찰에 이재명 대표에 불리한 진술을 한 것은 결국 주군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것.

 

▲ 2018년 9월 11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왼쪽)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에 입장하고 있다.

 

윤건영 “수도권 민심이 안 좋다. 원인이 무엇인지 공부해보자 가는 것”…왜 평산마을서 수도권 민심 공부할까?

이화영 전 부지사가 42차 공판에서 법무법인 해광에 변호를 맡기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한 것은 본인의 검찰 진술을 법정에서 증언하겠다는 의중으로 읽혀진다. 이렇게 되면, 9월께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당연한 수순이라는 게 서초동 법조계와 여의도 정치권의 대체적 시각이다.


이재명 대표가 영장실질심사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내년 총선은 비명계 공천학살과 함께 이 대표 진두지휘 아래 치르게 될 것이고, 검찰도 ‘제1야당 대표 탄압’ 역풍으로 영장 재청구 카드를 꺼내기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으며, 설사 재청구를 하더라도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될 공산이 높아 보인다.

반대로 구속된다면 민주당은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으나 문재인 청와대 출신 민주당 의원들이 문재인 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경남 양산에 소집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8일자 <조선일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내년 총선 승부처로 지목되는 청년 및 수도권 민심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오는 25일 청와대 출신 의원들을 경남 양산 평산마을로 소집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문재인 청와대에서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소설도 이 정도면 SF 소설”이라며 “도대체 평산마을에서 왜 이런 토론회를 하는가? 어처구니가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윤건영 의원은 “팩트는 ‘평소 찾아뵙지 못했던 청와대 출신 의원 몇몇이 양산을 방문하자’고 했던 것인데, 기사는 ‘대통령이 소집한 것’으로 둔갑됐다”고 반박했다.

‘평산마을서 청년 및 수도권 민심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는 내용과 관련해서는 “(청와대 출신)의원들 단톡방에서 ‘수도권 민심이 안 좋다. 원인이 무엇인지 공부해 보자가는 것’이, 친문 세력의 총선 전략 대책 논의로 둔갑되는 건 조선일보만의 기술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윤 의원의 반박대로라면, 문 전 대통령이 청와대 출신 의원들을 소집하지는 않았더라도, 민주당에 대한 수도권 민심이 좋지 않은 원인을 공부하기 위해 친문 의원들이 평산마을에 가겠다는 건데, 수도권 민심이 좋지 않은 원인을 왜 평산마을에서 공부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친문 의원들이 하필이면 평산마을에 모여 수도권 민심이 좋지 않은 원인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검찰의 영장 청구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거취에 대한 언급이 일절 오고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

 

▲ 지난 8일자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 페이스북.

 

김은경 혁신위를 통한 ‘차도살인(借刀殺人)’…전당대회 ‘빌드 업(build-up)’ 마친 이재명

윤건영 의원은 <조선일보> 보도를 두고 “이런 기사의 목적이야 뻔하다. 문재인 대통령을 여의도 정치에 끌어들이고, 민주당을 이간질해서 서로 싸우게 만들고픈 것이지요”라고 적었는데, 실상은 언론이 아니라 김은경 혁신위원회가 친명계와 비명계가 당권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는 퇴장했다.


김은경 혁신위는 지난 10일 당 대표와 최고위원 선거 시 권리당원 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30%로 선출할 것을 제안했다. 현행 민주당 전당대회 투표 반영 비율은 권리당원 40%, 대의원 30%,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인데, 김은경 혁신위는 대의원제 자체는 폐지하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대의원의 영향력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권고한 것이다.

대의원제를 무력화한 김은경 혁신위의 권고안은 이후 열린 의원총회와 오는 28~29일 개최되는 워크숍 등에서 채택 여부가 집중적으로 논의될 예정인데, 친명계와 비명계 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당대회 시 개딸 등 강성 지지층의 투표 비율을 높인 혁신위의 권고안은 이재명 대표가 혹여 구속된다하더라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끔 대비책을 세웠단 평가다.

검찰이 백현동 개발 비리와 쌍방울 대북송금 연루 혐의를 묶어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9월께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관측되는데, 정기국회는 임시국회와 달리 회기를 쪼갤 수 없어 영장이 청구되면 국회에서 체포동의안 표결을 거쳐야 한다.

표결에서 비명계 의원들이 일제히 찬성표를 던질 경우 이 대표는 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 대표가 지난 6월 19일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만큼, 표결에 앞서 체포동의안 가결을 당론으로 확정할 경우에도 영장심사를 받게 된다. 영장심사에서 영장이 발부되면 민주당은 당대표 궐위 상태로, 전당대회 국면이 조성된다.

반면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면, 영장심사는 면하게 되지만 본인의 사법리스크와 당 내분을 수습하기 위해 이 대표가 10월께 자진사퇴하는 등 전당대회 개최는 예정된 수순이란 게 정치권 일각의 관측이다.

정리하자면, 이 대표가 영장심사에서 영장을 기각시키는 경우의 수를 제외하면 어떠한 식으로든 전당대회 국면이 조성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김은경 혁신위가 ‘빌드업(build-up)’ 해놓은 대로 김두관‧정청래 의원 등 친명계 인사들이 강성 지지층을 등에 업고 당권을 거머쥘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는 이 대표가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더라도 막후에서 공천 등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기국회 시즌에 전당대회를 개최하는 건 국민적 비판에 직면할 수 있는 탓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된다 해도,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 비대위일 뿐, 올 연말이나 내년 초까지는 전당대회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이 대표는 김은경 혁신위이라는 ‘차도살인(借刀殺人-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적을 제거)’을 통해 ‘포스트 이재명’ 체제에서도 영향력을 유지할 빌드 업을 마친 것으로 보여진다.

 

<사진=연합뉴스>

 

더퍼블릭 / 김영일 기자 kill0127@thepublic.kr 

 

더퍼블릭 / 김영일 kill0127@thepublic.kr

저작권자 © 더퍼블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