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역대 사장 전원 조기 퇴진 불명예...코레일의 불안정 리더십과 반복되는 안전사고

[이슈분석] 역대 사장 전원 조기 퇴진 불명예...코레일의 불안정 리더십과 반복되는 안전사고

  • 기자명 홍찬영 기자
  • 입력 2025.09.09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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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 경부선에서 발생한 무궁화호 열차 인명 사고가 단순한 현장 과실을 넘어 철도 안전관리 체계 전반의 부실로 확산되고 있다. 경찰과 노동당국은 코레일 본사와 대구본부를 압수수색하며 원청과 하청 경영진을 잇따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는 등 강도 높은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특히 이번 사고는 총체적 안전 부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작업계획서와 실제 투입 인력이 달랐고, 교육·검증 없이 현장에 나선 노동자가 있었던 데다 곡선 구간, 대피로 부재, 제초 미비 등 위험 요인이 방치돼 있었던 정황이 확인됐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작업 현장 관리 소홀을 넘어 구조적 안전관리 부실 여부까지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포스코이앤씨의 연이은 산재 사망사고에 건설면허 취소 검토를 지시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대형 사고가 발생하자, 코레일 경영진에 대한 책임 추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결국 이같은 한문희 사장은 사고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이로써 코레일은 출범 이후 역대 사장 11명 전원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불명예 기록을 이어가게 됐다.

일각에선 코레일이 정치적 낙하산 인사 구조와 만성적 안전 부실이 맞물린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면, 비극은 되풀이될 것이라는 시선을 제기하고 있다.

코레일·하청 경영진 피의자 전환…중대재해법 본격 적용되나

 

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부선 열차 사고’를 수사 중인 경찰과 노동 당국은 지난 1일 코레일 본사와 대구본부에 대해 강세 수사에 착수했다.

이날 오전 10시쯤 경찰 수사관 10여명과 노동청 근로감독관 2~3명은 파란박스와 휴대용 짐수레 등을 들고 코레일 대구본부에서 본격적인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수사당국은 이번에 확보한 압수물을 통해 사고 경위, 철도 진입 허가 여부, 작업 사전 계획, 운행 중인 열차에 의한 충돌 방지를 위한 안전조치 여부 등을 집중 수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이미 지난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던 인사들 중 일부를 피의자로 전환했다. 이번 압수수색 영장에는 코레일 법인과 사고 직후 사퇴한 한문희 전 사장, 하청업체 대표 등이 피의자 신분으로 명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도 그동안 코레일과 하청업체로부터 작업계획서와 안전교육 일지를 임의 제출받아 분석했으며, 압수수색에 앞서 관계자 일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ㅂ루구속 입건했다.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경찰은 코레일 등을 상대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노동청은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22년 1월27일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대재해는 ▲사망자 1명 이상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계획과 현장 따로…대피로·안전장치 부재 속 7명 참변

지난달 20일 오후 경북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노동 당국 등 합동감식에 참여한 기관 관계자들이 경북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 사고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지난달 20일 오후 경북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노동 당국 등 합동감식에 참여한 기관 관계자들이 경북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 사고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이번 사고는 지난달 19일 오전 10시 50분쯤 발생했다. 경북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 청도소싸움 경기장 인근 경부선 철로에서, 동대구역을 출발해 경남 진주로 향하던 무궁화호 열차가 선로 근처에서 작업자 7명을 덮친 사고다.

이 사고로 근로자 2명이 사망하고, 나머지 5명은 중경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사고 근로자 중 6명은 구조물 안전점검 전문업체 소속이고, 1명은 코레일 소속이다. 사망자 2명은 모두 구조물 안전점검 업체 소속이다. 사고가 난 열차에는 승객 89명이 타고 있었으며, 탑승객 가운데 부상자는 없었다.

문제는 사상자들 중 일부가 작업계획서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인원이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부실한 안전관리 체계가 도마 위에 올랐다는 점이다.

실제 하청업체가 작성해 코레일에 제출한 작업계획서에는 열차 감시 담당자 A씨와 기술자 B씨가 당일 투입되는 것으로 명시돼 있었다.

계획서에는 두 사람이 음주·질병 여부, 수면시간, 피로도 등 적합성 검사를 거쳐 보호구 착용을 확인한 뒤 작업에 참여한다는 절차까지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그러나 사고 직후 경찰과 소방이 확인한 사상자 명단에는 A·B씨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다른 작업자 2명이 현장에 있었고, 이 가운데 1명은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확인됐다.

즉 계획서와 실제 투입 인력이 다르다는 점에서, 일부 인원이 사전 안전교육이나 적합성 검증을 받지 않은 상태로 현장에 나섰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특히 해당 하청업체는 원청인 코레일의 요청에 따라 당초 계약에 포함되지 않았던 철도 주변 사면 점검 작업을 급히 추가로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다른 지역에서 터널·교량 점검을 하던 직원을 불러와 임시로 작업팀을 꾸린 사실도 확인됐다.

경찰은 하청업체로부터 작업계획서와 각종 서류를 확보해 실제 근무자와 계획서상 명단이 왜 달라졌는지 경위를 집중 조사 중이다.

더불어 사고 당일 현장에서 안전조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고 지점은 곡선 구간에 위치해 기관사의 시야 확보가 어려웠고, 선로 주변은 제초가 이뤄지지 않아 수풀이 무성한 상태였다. 작업자들이 이동하거나 대피할 별도의 통행로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위험 요소들은 이미 사전에 지적된 바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별다른 보완책이 취해지지 않았다. 결국 작업자들은 선로 밖을 이용하기 어려워 선로 위로 올라섰고, 작업을 시작한 지 불과 7분 만에 뒤따라오던 열차에 치여 참변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즉 총체적 안전부실 정황이 속속 드러나, 정부도 코레일의 이번 사고에 강경 대응 방침을 내놓고 있다.

당국은 단순한 현장 차원의 문제를 넘어 구조적 안전관리 부실 여부까지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향후 조사 결과에 따라 코레일 경영진에 대한 책임 추궁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 관계자는 “철도 시설 유지·보수 과정에서 위법사항이 확인될 경우 예외 없이 엄중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일 포스코이앤씨의 연이은 산재 사망사고와 관련해 건설면허 취소 등 고강도 제재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인 것을 감안하면, 이번 청도 사고 역시 정부의 강력한 책임 추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11대 사장 모두 임기 못 채워…정치적 인사·안전 부실 악순환

한문희 전 코레일 사장
한문희 전 코레일 사장

 

결국 이같은 압박에 코레일 한문희 사장은 사고 책임을 통감한다는 취지로 국토교부에 사의를표명했다. 다만 사표는 아직 수리되지 않았다. 한 사장은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7월 코레일 사장으로 취임했으며, 당초 임기는 내년 7월까지 였다.

이로써 코레일은 역대 사장 11명 전원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불명예 퇴진’의 기록을 이어가게 됐다.

코레일 역대 사장은 정치권, 학계, 경찰, 철도 전문가 등 출신 배경이 제각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사장 전원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조기 퇴진했다는 사실은 코레일이 안고 있는 ‘제도적 한계’와 ‘구조적 리스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평가다.

대표적으로 9대 손병석 사장은 고객만족도 조작 파문과 경영평가 최하등급을 받으면서 임기를 9개월 앞두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어 문재인 정부 말기에 선임된 10대 나희승 사장도 연이은 사고와 18억 원 규모의 과징금 부과가 겹치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해임 건의가 받아들여지면서 중도 퇴진했다.

코레일은 전국 철도망을 책임지는 거대 공기업이지만, 사장 인선은 정권의 성향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좌우돼 왔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 같은 정치적 인사 구조가 안전관리 부실과 맞물리면서 악순환을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최근 5년간 코레일 현장에서는 인명 사고가 꾸준히 발생해 왔다. 열차 충돌, 탈선, 선로 보수 중 사망사고 등 굵직한 사건이 잇따르면서도, 그때마다 원청·하청 간 책임 공방에 그쳤고 근본적인 제도 개선은 지연돼 왔다.

이번 청도 사고 역시 ‘계획과 실제 인력 불일치’, ‘대피로 부재’, ‘감시체계 미작동’ 같은 문제들이 겹쳐 발생했다는 점에서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전문가들은 코레일 사장의 조기 퇴진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관리 시스템 전면 개편이라고 강조한다.

철도업계 한 관계자는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작업계획과 실제 현장 운영을 일치시키는 관리체계를 확립하고, 곡선 구간 등 시야 확보가 어려운 위험 지점에는 안전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며 “또 하청 노동자에 대한 교육·검증 절차를 의무화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더퍼블릭 / 홍찬영 기자 chanyeong8411@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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