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퍼블릭=김영일 기자] 태광산업이 교환사채(EB)를 발행한다는 소식에 주가가 급락했다.
30일 태광산업은 전 거래일 대비 11.24%(12만 4000원) 급락한 97만 9000원에 장을 마쳤다. 태광산업의 주가가 급락한 원인은 자사주를 기초로 교환사채를 발행한다는 공시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태광산업은 지난 27일 장 마감 후 자사주 27만 1769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를 발행해 약 3186억원을 조달하겠다고 공시했다. 태광산업의 자사주 비율은 발행 주식의 24.41%다. 교환사채 표면 및 만기 이자율 0%, 만기 3년, 인수자는 공개하지 않았다.
교환사채는 채권을 발행한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자사주 또는 타사주)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를 말한다. 즉, 투자자는 만기 시점에 채권의 원리금 대신 발행 회사의 특정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다.
태광산업은 교환사채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 3200억원 상당을 신사업 투자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자사주 소각으로 주가가 오르길 기대했다가 실망한 투자자들의 실망 매물이 쏟아지면서 주가가 급락한 것이란 게 증권가의 분석된다.
특히 태광산업의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교환사채 발행은 주주가치 훼손은 물론, 소액 주주를 보호하겠다는 새 정부 정책 기조에 배치되는 만큼 가처분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트러스톤은 “이번 결정은 경영상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과 주주 보호 정책을 회피하려는 꼼수이자 위법”이라며 “특히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 발행은 교환권 행사 시 사실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동일한 효과가 있는 만큼 기존 주주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트러스톤은 이어 태광산업이 올 1분기 기준 1조 4000억원 상당의 현금성 자산과 SK브로드밴드 지분 매각 대금 9000억원을 확보한 반면, 부채는 880억원에 불과한 점을 거론하며 “1조원 상당의 서울 성수동 부동산 외 다수 땅을 보유한 자산 부자 기업인만큼, 추가적인 교환사채 발행 필요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태광산업은 지난 10년간 평균 배당성향이 2%에 불과할 정도로 주주환원을 철저히 외면해 왔고, 주가는 주가순자산비율(PBR) 0.3배로 주주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법적·제도적 수단을 동원해 태광산업의 교환사채 발행을 저지하고, 주주권 보호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국회에서도 태광산업의 교환사채 발행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은 30일자 페이스북에서 “태광산업이 보유한 자사주 전량을 교환사채로 발행하기로 한 결정은 명백한 주주가치 훼손이며,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꼼수”라고 꼬집었다.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의결권이 없다. 즉,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교환사채를 통해 투자자에게 이전되면, 더 이상 자기주식이 아닌 탓에 의결권이 부활하게 된다.
태광산업 입장에서는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 발행을 통해 3200억원 상당의 현금을 조달하는 동시에, 우호 세력에게 교환사채를 넘기면 의결권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교환사채를 우호 세력에게 넘길 경우 대주주의 지배력은 강화되는데 반해, 일반 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 가치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교환사채 방식을 통한 자사주 매각으로 인해 유통 주식 수가 늘어나게 되면 주가 하락 및 주당순이익(EPS)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최은석 의원은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대규모 유상증자 강행 논란과 함께, 일부 대기업에서 여전히 ‘주주 무시 경영’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라며 “자사주를 대주주의 지배력 유지 수단으로 악용하거나, 소액 주주의 지분 희석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증자 결정은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이어 “물론 다수의 대기업은 지배구조 투명성과 주주권 보호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소수 기업의 이런 잘못된 관행이 시장 전체의 신뢰를 흔들고, 결국 상법 개정 논의로까지 이어졌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고 했다.
최 의원은 “상법 개정은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과 기업의 의사결정 체계를 결정짓는 중대한 사안이다. 소수 기업의 일탈에 따른 부정적 여론이나, 포퓰리즘식 논리에 밀려 졸속으로 검토될 사안이 아니다”라면서도 “그러나 그 논의가 시작된 배경에 기업 내부의 자정 실패가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일부 대기업의 대주주들 역시 이제는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 지배력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과 주주의 신뢰’”라며 “이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업 스스로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이 절실한 때”라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
더퍼블릭 / 김영일 기자 kill0127@thepub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