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주도의 원유 시대는 종식됐다”

“美 주도의 원유 시대는 종식됐다”

  • 기자명 김수영
  • 입력 2020.04.2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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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더퍼블릭=김수영 기자] “미국 셰일업체들에 대한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유래 없는 저유가 시대가 도래로 더 이상 미국이 원유경쟁의 중심이 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02~2015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고문을 지낸 나와프 오바드(Nawaf Obaid)는 23일(현지시간) CNN에 기고한 글에서 이같이 밝혔다.

생산단가가 높은 미국 셰일업체들이 저유가를 버티지 못하고 도산하며 가격 우위에 있는 사우디와 러시아가 원유시장에서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나와프는 “사우디의 원유는 평균 생산단가가 배럴당 8.98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며 “세계 경기가 침체되는 와중에 미 셰일업체들은 생산비를 충당하는 것만으로도 자금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미국 셰일업계에서는 이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WTI 기준 원유 가격이 배럴당 40달러 미만으로 유지될 경우 내년까지 100여개의 업체들이 파산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즉 그동안 미국이 누려온 원유 붐은 종식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달 초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러시아와 사우디가 감산 합의에 실패한 뒤 사우디는 러시아와 그 동맹들에 대항해 가격 전쟁을 시작했다.

기존 감산 합의가 종료된 이달 1일부터 사우디는 감산이 아닌 증산에 들어갔고, 코로나19(COVID-19)에서 비롯된 원유 수요 감소와 맞물려 유가가 주저앉으며 급기야 지난 20일에는 배럴당 –37.6달러까지 떨어졌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가 1983년 원유가격을 측정한 이래 처음이다.

현재 세계 최대 산유국은 미국이다. 셰일(shale) 지층(地層)에서 통상적인 ‘수직시추’가 아닌 ㄴ자 형의 ‘수평시추’ 방식으로 채굴해야 하고 수압파쇄법을 통해 시추하는 관계로 생산 단가가 높은 축에 속한다.

이처럼 채굴 단가가 높은 미국 셰일 업체들이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배럴당 40~45달러 수준으로 원유가격이 안정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유가가 마이너스 대까지 큰 폭으로 하락하자 미 셰일업체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미 화이팅 페트롤리엄(Whiting Petroleum)은 이달 1일 파산을 신청했다.

그러나 사우디 원유 생산단가는 미국 셰일 업체 생산단가의 25% 수준으로, 가격경쟁에서 미국이 밀려날 것이란 분석이다. 국제적인 초저유가 파동에도 사우디가 증산이란 ‘강짜’를 놓은 건 이같은 이유다. 러시아의 생산단가 또한 배럴당 평균 19.21달러로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美 자업자득?…“외교·경제정책 변할 수밖에”

그동안 국제유가는 OPEC+(OPEC과 주요 산유국 연대)가 감산합의를 지속적으로 연장해오며 국제유가를 배럴당 50~60달러 선으로 조절해온 덕분에 OPEC+에 속하지 않은 미국은 감산대열에 동참하지 않으면서도 셰일오일을 증산하며 가격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지난달 OPEC+ 회의에서 러시아가 감산 연장에 반대한 이유도 이같은 미국의 태도에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산유국들이 감산할 때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혼자 증산하며 가격이득을 보는데 왜 감산해주느냐는 것이다.

특히 이번 감산회의는 여느 때와 달리 코로나19로 인해 원유 수요 자체가 ‘증발’해버린 만큼 미국의 감산 동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감산대열 동참을 거부했고 사우디와 러시아 또한 서로 대립하며 감산합의는 불발됐다.

감산 합의가 이뤄진 것은 이달 초 OPEC+회의에서다. 회의에 참가한 산유국들은 할당량을 정해 5~6월 두 달 간 일일 970만 배럴의 감산에 합의했지만 유가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난 20일 WTI는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했다.

당장 저유가가 지속되자 생산단가가 높은 미국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단기간의 저유가라면 저장고에 보관해둘 수 있지만 이젠 비축공간마저 부족한 상황이다. 셰일업체들의 줄도산 가능성이 점차 가시화되며 정작 화살은 다시 미국에게 돌아가는 모양새다.

잔 남다르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22일 “OPEC+가 감산하려 노력하는데도 미국과 캐나다 셰일업체들이 동참하지 않은 결과 유가 폭락이라는 응당한 벌을 받고 있다”며 “원유시장 균형을 유지하려면 모든 산유국이 협력해야 하고, 특히 채굴단가가 비싼 생산자가 더 나서야 한다”고 비판했다.

나와프는 미국 정부가 사태를 완화하기 위해 사우디의 협조를 구하고 경제정책 변화를 추구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는 “에너지 독립목표(셰일)가 사라지며 미국은 과거의 거대한 원유의존(oil-hungry) 경제를 먹여 살릴 국가들을 달래고 협력을 구해야 할 것”이라며 “대표적인 나라가 사우디다. 사우디는 미국 원유산업이 에너지 정책에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줌으로써 석유시장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에너지 상호의존이라는 새로운 현실 속에서 외교·경제 정책을 재구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덧붙였다.

더퍼블릭 / 김수영 기자 newspublic@thepublic.kr 

더퍼블릭 / 김수영 newspublic@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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