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마피아’ 몸통으로 지목된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

‘산업부 마피아’ 몸통으로 지목된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

  • 기자명 김영일
  • 입력 2020.11.1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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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지난 10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더퍼블릭 = 김영일 기자]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에서 오랜 시간 에너지 관련 업무를 담당한 뒤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을 거쳐 지난해 7월 한국가스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채희봉 사장이 최근 곤혹스런 처지에 내몰렸다.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한국가스공사와 박석환 전 외교부 차관이 2015년 맺은 특혜성 자문계약 몸통으로 채희봉 사장이 지목됐으며, 월성 원자력발전소(월성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해 채 사장이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으로 재직할 당시 직권을 남용한 혐의 등으로 야당으로부터 고발당했기 때문이다.

전직 외교부 차관의 급여를 챙겨준 한국가스공사

우선 가스공사가 박석환 전 차관과 특혜 자문계약을 맺었다는 의혹은 <뉴스타파>의 보도로 제기됐다.

<뉴스타파>는 지난 8월부터 ‘가스공사 자문계약의 비밀’ 연속 보도를 통해 가스공사가 지난 2015년 박석환 전 차관과 체결한 특혜성 자문계약의 이면을 다뤘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8월 산업부는 외교부에서 퇴직한 박석환 전 차관을 한국가스연맹(가스연맹) 사무총장으로 내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재취업 심사에서 박 전 차관의 가스연맹 사무총장 취임에 대해 취업제한 결정을 내렸다. 박 전 차관이 외교부 차관 재직 시절 가스연맹 회원사 한 곳과 외교부 부속 건물 건설 계약을 맺었던 게 취업제한 이유였다.

이에 따라 박 전 차관의 사무총장 취임이 무산됐으나 1년 뒤인 2015년 8월 산업부는 다시 박 전 차관을 가스연맹 사무총장 자리에 앉히려 했다.

하지만 당시 임기가 6개월 남아있던 김재섭 가스연맹 사무총장은 ‘자리에서 나가지 않겠다’며 남은 임기를 채우겠다고 버텼다.

따라서 김재섭 사무총장 임기가 마무리될 때까지 박 전 차관의 가스연맹 사무총장 취임은 연기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가스공사는 박 전 차관과 6개월간의 자문계약을 체결한다.

자문계약 내용은 ▶북미 LNG 프로젝트 진행 현황 ▶국제유가 변경 등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에너지 산업 전망 ▶캐나다 정치 환경 변화를 고려한 에너지 정책 검토 ▶중남미 산유국의 에너지 정책 방향 연구 등 에너지 분야 전문성이 요구되는 심층 분석 보고서를 작성·제출하는 것이었다.

가스공사는 에너지 분야 전문성이 없는 박 전 차관과 이 같은 내용의 자문계약을 맺었고, 2015년 9월부터 2016년 2월까지 6개월간 월 10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에너지 분야 전문성이 결여된 전직 외교부 고위공무원과 자문계약을 맺은 것도 문제지만, 박 전 차관은 자문 보고서를 한 건도 작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스공사 직원들이 보고서를 대신 작성한 것이다.

그럼에도 가스공사는 보고서를 단 한 건도 작성하지 않은 박 전 차관에게 6개월 간 총 5500만원(마지막 달 500만원)을 지급했다.

이는 결국 가스공사가 가스연맹 사무총장 취임 전까지 자문계약을 맺어 박 전 차관의 급여를 챙겨준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 한국가스공사 국정감사 자료(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

특혜성 자문계약의 막후 ‘산업부’…채희봉 ‘나가달라’ 압력 행사?

가스공사와 박석환 전 차관의 이 같은 특혜성 자문계약 막후에는 산업부의 입김이 있었다는 게 <뉴스타파>의 지적이다.

당시 가스공사 주무 부서인 이호현 산업부 가스산업과장(현 산업부 무역정책관)의 지시가 있었다는 것인데, 이호현 정책관은 <뉴스타파>에 “박 전 차관이 가스연맹 사무총장이 이미 내정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스공사와 자문계약을 하도록 추천했던 것”이라 밝혔다.

가스공사도 <뉴스타파>에 “산업부와 가스공사가 박 전 차관을 가스연맹 사무총장으로 영입했고, 박 전 차관을 취임하기 전까지 활용할 수 있는 방안으로 자문계약을 체결했다”고 했다.

이처럼 산업부가 가스공사와 박 전 차관이 특혜 자문계약을 맺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김재섭 가스연맹 사무총장에게 ‘나가달라’는 취지의 압력을 행사한 정황도 포착됐다.

현 가스공사 사장이자 2015년 당시 산업부 에너지산업정책관이었던 채희봉 사장이 김재섭 사무총장에게 나가달라고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채희봉 당시 정책관은 김 사무총장에게 ‘왜 안 나가려고 하느냐’고 물으면서 식사를 하자는 제안을 했고, 식사 자리에서 임기를 마쳐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는 게 김 사무총장의 주장이다.

가스공사와 박 전 차관의 특혜 자문계약 및 산업부의 부당 압력 의혹은 2018년 가스공사 내부 감사 및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문제가 됐고, 가스공사는 국정감사 이후 특별조사단(특조단)을 꾸려 조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특조단은 “자문계약 배경에는 산업부의 취업 청탁이 있었다. 당시 취업 청탁을 한 산업부 관계자들을 고발해 달라”고 한 가스공사 내부 감사 당시 총책임자였던 상임감사위원의 요구를 무시했다.

특조단이 막후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이 역력한 산업부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하지 않은 것이다.

이철규 “산업부 마피아 몸통”…채희봉 “국제적 네트워크 갖춘 고위공무원 영입”

가스공사와 박석환 전 외교부 차관의 특혜성 자문계약 의혹은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불거졌다.

지난 10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은 채희봉 가스공사 사장에게 자문계약 관여 여부를 물었다.

채희봉 사장은 “자문계약에 관여한 사실이 있다”고 시인했다.

이철규 의원은 “당시 이관섭 산업부 차관과 채희봉 정책관, 그리고 밑에 있던 이호현 과장이 (자문계약에)주도적으로 관여한 당사자들”이라며 “현 채희봉 사장이 당시 국장급 정책관으로서 이호현 과장에게 지시를 했고, 지시를 받은 이호현 과장은 가스공사 기획본부장을 불러 (박 전 차관을 가스연맹 사무총장으로)채용하라는 지시를 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채 사장은 왜 산업부 관계자들을 고발하지 않았나”고 따져 물었고, 채 사장은 “산업부 관계자들은 책임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자문계약 당시 자신을 포함한 산업부 관계자들은 책임이 없기 때문에 특조단이 검찰에 고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이 의원은 “특조단을 꾸린 채 사장이 당시 산업부 관계자로서 중심적 역할을 했기 때문에 (산업부 관계자들이)책임이 없다(고 하는 게 아니냐), 채 사장과 (특조단)조사는 이해가 충돌되는 이해충돌 관계에 있다”면서 “자신의 측근 인사들을 특조단에 편성시켜서 그들이 채 사장에게 유리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게 하고, 그 사람들은 진급을 하는 혜택을 봤다”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또 채 사장이 특혜성 자문계약의 몸통이라고도 했다.

이 의원은 “채 사장은 (자문계약 당시 산업부 국장으로서)김재섭 사무총장에게 나가라고 압박을 가했다. 당시 국장이 이 정도로 압박을 가했다면 그 밑에 이호현 과장은 하수인에 불과하다”며 “(채 사장은)직위를 이용해서 인사를 청탁하고 압력을 넣는 등 직권을 남용하는 전형적인 몸통”이라고 쏘아붙였다.

채 사장은 자문계약이 당시 필요에 따른 계약이었음을 강조했다.

채 사장은 “2015년 당시 가스연맹 사무총장이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없고, 세계가스총회(WGC) 개최에 대한 국제적 문제 제기에 제대로 대응을 하고 있지 못한다는 얘길 들었다”면서 “그래서 산업부가 아닌 외교부에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차관급 고위공무원인 박 전 차관을 영입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 전 차관은 2016년 3월 취임하기로 돼 있었다. 보통 가스연맹 사무총장은 과장급 전임자들이 가는 자리였고, (그 자리에)외교부 차관급 인사를 영입하기로 했는데 과연 박 전 차관이 기다려 줄 수 있겠느냐고 해서 가스공사가 유능한 고위급 인사를 영입하는 차원에서 자문계약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을 검토해 달라고 했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이철규 의원은 산업부 마피아가 저지른 범죄 행각으로 규정했다.

이 의원은 “이 사건은 총체적으로 산업부 마피아가 자신들이 저지른 비리를 은폐하고 때에 따라서 정권 입맛에 맞춰가면서 자신들의 직위는 계속 유지해가는 파렴치한 범죄 행각”이라며 “채 사장은 산업부 정책관으로 있을 때 자행한 이러한 직권남용에 대해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국회 산자위 차원에서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당에서도 지적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은 박 전 차관이 자문계약을 맺어 놓고도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은 부분을 추궁했다.

김성환 의원은 “가스공사 직원이 자문계약 관련 보고서를 대신 써줬다고 한다”고 지적하자, 채 사장은 “그 내용은 몰랐는데 나중에야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고 답했다.

김 의원이 “황제 자문계약 누가 시켰나”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채 사장은 “제가 그쪽에.....”라며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 한국가스공사 국정감사 자료(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

월성1호기 조기 폐쇄 및 즉시 가동 중단 지시…‘직권남용’

이처럼 국정감사에서 가스공사와 전직 외교부 차관의 특혜성 자문계약과 관련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몸통으로 지목된 채희봉 사장은 월성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해서도 직권을 남용한 혐의 등으로 야당으로부터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지난달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청와대)담당 비서관이 행정관을 통해 2018년 4월 2일 월성1호기 즉시 가동 중단의 내용이 포함된 보고를 (산업부)장관 결재를 받고 올리라는 전화를 한 내용을 (감사 과정에서)파악했다”고 말했다.

최재형 원장이 지목한 청와대 담당 비서관은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이었던 채희봉 사장이다.

최 원장은 “담당 비서관에 대해 직권남용죄로 형사고발하는 방안을 포함해 논의를 했다”고 말했다. 이는 감사원이 채 사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지 여부를 논의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이 지난달 20일 발표한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감사 결과보고서에는 “대통령비서실은 2018년 4월 2일 및 3일 산업부에 월성 1호기 조기폐쇄 추진방안 및 향후계획을 장관에게 보고한 후 이를 대통령비서실에 보고해달라고 요구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각주형태로 “L비서관(채희봉)이 N행정관에게 산업부로부터 월성 1호기를 즉시 가동 중단하는 것으로 산업부 장관까지 보고해 확정한 보고서를 받아보라고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은 청와대의 이 같은 방침을 확인한 뒤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월성 1호기 조기폐쇄를 결정하는 동시에 가동을 즉시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

감사원은 채희봉 사장이 월성1호기 조기폐쇄 및 즉시 가동 중단을 산업부에 지시한 것에 대해 고발을 하진 않았다.

최재형 원장은 “논의 결과 부당 개입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감사위원회에서 결론을 내렸다”면서 “그 결론에 따라 청와대 비서관에 대한 징계나 형사고발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달 22일 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과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그리고 채희봉 사장 등을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국민의힘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및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은 탈원전 추진을 위한 청와대와 산업부, 한수원의 합작”이라며 “당시 백운규 산업부 장관, 특허청장이 된 산업부 실장,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된 채희봉 대통령비서실 비서관, 정재훈 한수원 사장과 직원 등 12명을 제대로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고발장을 접수한 대전지검은 지난 5일 산업부와 한수원, 가스공사 본사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관련 경제성 조작 및 산업부의 감사 방해 의혹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퍼블릭 / 김영일 기자 kill0127@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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