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선 후보들이 내건 '슬로건'의 숨은 의미

[기고] 대선 후보들이 내건 '슬로건'의 숨은 의미

  • 기자명 서유경 교수
  • 입력 2021.08.1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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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다운, 뭔가 강한 추진력이 느껴지는 파워풀한 언명"
-"국가 전체를 통할하는 민주적 정치리더십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 의아"
-정세균, " ’미래경제캠프‘인 것도 결코 우연의 일치는 아닐 터"

▲사진=서유경 교수 경희사이버대학교
 지난 11일 제3차 토론까지 세 차례에 걸친 더불어민주당 20대 대선 후보 TV토론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세 번 모두에서 어김없이 여는 말로 제시된 것이 바로 후보들의 슬로건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각 후보의 생김새만큼이나 다채로운 슬로건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들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듯하다. 혹시 그 슬로건들 속에서 각 후보의 인생역정, 개인적 경험과 경륜의 폭, 세계관, 어쩌면 국정철학에 대한 단서가 발견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서 후보들이 내건 슬로건의 숨은 의미를 밝혀보기로 한다.

 

우선 기호 1번 이재명 후보는 ‘이재명은 합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언뜻 듣기엔 이재명다운, 뭔가 강한 추진력이 느껴지는 파워풀한 언명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어떤 불편한 생각 때문에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진다. 이건 뭐지, 우리 국민들에게 앞으로 5년간 이재명이라는 사람의 원맨쇼를 잘 지켜봐 달라는 것 아닌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모든 국민이 손 놓고 대통령 한 사람에게 무조건 다 맡기라는 것인지, 나 원 참. 모르긴 몰라도 아마 적잖은 사람들이 필자처럼 이 후보의 슬로건에서 그의 ‘독단’과 ‘독선’의 기미를 포착해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로서 성취한 지방행정가로서의 과단성과 유능함이 어떻게 한반도와 부속 도서로 이루어진 국가 전체를 통할하는 민주적 정치리더십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 의아하다고.

 

기호 2번 김두관 후보는 ‘서울공화국 해체, 지방도 잘 사는 나라’를 슬로건으로 제시했다. 이장에서 군수로 군수에서 도지사로 또 장관과 국회의원직을 두루 거친 김 후보의 정치역정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다른 어떤 후보의 슬로건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곧고 투박한 후보의 정치적 올바름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것이 서울시민과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반절에 육박한다는 현실을 외면한 외통수 ‘지방’ 후보의 감성적 슬로건처럼 들리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컨대 전 국민적 대통합을 설파해야 할 맥락에서 지방분권적 해체를 주장하는 것은 비록 지방자치 시대 구현이라는 제아무리 올바른 정치적 신념이라고 해도 국민 대다수에게 큰 설득력을 가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호 3번 정세균 후보는 ‘강한 대한민국, 경제대통령’을 들고나왔다. 이 슬로건은 젊은 시절 십수 년간 해외 산업현장을 누볐고 산자부장관을 역임했으며 경영학 박사이기도 한 정 후보 자신의 인생역정과 결코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경제’라는 단어, 6선의 국회의원 경력과 민주당 대표, 국회의장, 국무총리로서 입법부와 행정부를 통솔해 본 국정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입에 배었을 ‘대한민국’이란 위엄 있는 국호, 거기에 전 국민이 고루 ‘강한’ 나라라는 국정철학을 담아 완성한 구호 같다. 어찌 보면 이 슬로건은 과거 경제개발과 산업화 시대로 역행한다는 인상을 풍기는 듯하다.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산업화’의 필요성이 다시 소환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슬로건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성격이지 않은가. 정 후보의 캠프명이 ’미래경제캠프‘인 것도 결코 우연의 일치는 아닐 터이다.

 

기호 4번 이낙연 후보는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를 슬로건으로 들고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나라다운 나라’의 속편처럼 들리는 이 표현은 지극히 원론적인 성격의 슬로건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근대국가의 탄생 이유를 설명하는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국가의 존재이유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여기에 프랑스혁명이 자유를 미국혁명이 행복 추구권을 각각 자국 국가의 의무로 추가했다. 이 후보가 자신의 공약을 ‘신복지’ 정책 패키지로 규정한 것 역시 20세기 복지국가의 연장 그 이상의 어떤 새로움이나 신선함에 대한 기대를 접게 만든다. 한마디로 이 후보의 슬로건은 평소 양비·양시론을 즐겨 쓰는 그의 모호한 어법처럼, 확실한 모범답안이지만 어딘가 조금 부족한 그저 그런 슬로건이다. 대한민국호의 안전한 운항은 보장하겠지만 흥미진진한 크루즈까지는 무리라고 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기호 5번 박용진 후보가 내세우는 슬로건은 ’새로운 진보, 뉴DJ‘이다. 일단 민주당 6인 후보 중 가장 젊다는 장점과 자신이 진보당 출신이라는 정치적 정체성을 최대한 살렸고, 또한 최근 사회적 주목도가 높은 2030 또는 MZ세대의 기수(旗手) 역할을 자처하려는 의도가 읽히는 슬로건 같다. 그러나 과연 ’DJ’가 ‘MZ’와 어떤 접점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MZ세대는 이념보다 공정의 가치를 중시하며, DJ나 반독재·민주투쟁에 대한 역사의식보다 BTS나 비트코인 열풍에 더 관심을 쏟는다. 게다가 정치권에서 박 후보보다 먼저 ‘뉴DJ’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사람들이 있었고 여전히 건재하다. 한마디로 박 후보의 슬로건은 새롭다고 하지만 전혀 새롭지 않고 진보라고 하지만 어딘가 진부한 느낌이다. 사실 “인물도 잘 생기고 정책도 잘 생긴”이라는 애용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진부함도 그 자신만 모르는 듯해 안타깝다.

 

기호 6번 추미애 후보는 ‘사람이 높은 세상, 사람을 높이는 나라’라는 생뚱맞은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어딘가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노무현의 슬로건과 닮은 듯도 하다. 본인이 탄핵에 앞장섰던 전력을 재차 속죄하려는 의도인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노무현교’의 신도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종교색 짙은 슬로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고 보니 추 후보는 요즘 눈에 띄게 노란색 의상을 입고 TV에 출현한다. 이점 또한 예전 ‘노사모’의 전매특허였던 노랑풍선의 그 노란색을 연상시킨다. 추 후보가 어떻게 ‘사높세’를 열고 사람을 높일 것인지를 궁금해 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 잘 모르겠다. 문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추 후보가 열고자 하는 세상이 딴 나라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처음 필자는 그저 재미삼아 그들의 대선 슬로건을 비교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후보들의 슬로건이야말로 각 후보 자신의 인물과 정책의 핵심을 관통하는 정치철학적 관점을 표상하는 개념들일 것이며, 그것을 알아야 제대로 된 후보 평가도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얼마나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필자의 슬로건 성격 규명 작업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 

 

이재명의 독단과 독선이 똬리를 틀고 있는 슬로건, 김두관의 감성적인 외통수 지방 후보 슬로건, 이낙연의 관리자용 상상력 부재의 슬로건, 박용진의 치기어린 진보 슬로건, 추미애의 구름 위의 산책 같은 사높세 슬로건, 그리고 정세균의 미래지향적 실사구시 슬로건. 

 

누군가 필자에게 이들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대한민국호의 안전한 미래 항로와 민주적 국정철학을 함께 제시한 정세균의 ‘강한 대한민국, 경제대통령’과 함께 신나는 대(大)항해를 떠나고 싶다고. 잠깐, 선생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더퍼블릭 / 서유경 교수 lee1@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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