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마진 살아났지만…1500원 고환율에 정유업계 ‘반등 또 좌초’
[더퍼블릭=홍찬영 기자] 정제마진이 20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오르며 정유업계가 반등 기회를 잡는 듯했지만, 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에 육박하면서 개선 효과가 대부분 잠식되고 있다. 업계는 고환율이 장기화될 경우 실적 회복이 다시 꺾일 수 있다며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25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70원대를 넘어 1500원 진입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국내 정유사들의 원가 부담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는 연간 10억 배럴이 넘는 원유를 대부분 달러로 수입하는 구조라, 환율이 오르면 원가가 즉각적으로 급등한다.
업계에서는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1000억 원 안팎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SK이노베이션은 자체 분석에서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이 약 1544억 원 감소할 수 있다고 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출단가 상승 효과가 일부 있지만, 원유 수입비용 증가분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며 “1500원대 고환율이 장기화되면 외화 차입 부담까지 더해져 부작용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업계가 더욱 긴장하는 이유는 정제마진 회복세가 지속 가능한 호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구매비용을 뺀 값으로, 업계의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다. 최근 정제마진은 배럴당 19달러 수준까지 오르며 손익분기점(4~5달러)을 크게 웃돌았다. 이 영향으로 정유 4사는 2분기 1조 원대 손실을 냈다가 3분기에는 1조 원대 흑자로 반등했다.
최근 정제마진이 좋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 역시 오래가기 어려운 요인에 따른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제마진이 오른 이유는 전쟁과 사고 때문에 원유 공급이 줄었기 때문이다. 공급 부족으로 기름값이 오르며 일시적으로 마진이 좋아진 것이지, 정유업계의 근본 경쟁력이 강화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공급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정제마진도 다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전쟁과 지정학적 긴장으로 국제유가 변동폭도 계속 커지고 있어, 정제마진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란 보장도 없다는 게 업계의 시선이다.
정유사들은 선물환이나 스와프 같은 파생상품으로 환율 위험을 일부 막고 있지만, 환율이 단기간에 급격히 뛰는 상황에서는 방어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연말까지 지금 같은 고환율이 이어질 경우, 내년 실적에도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정제마진이 좋아졌다 해도, 환율이 그보다 더 빠르게 오르면서 이익 개선 효과를 상당 부분 잠식하고 있다”면서 “이에 4분기 이후 실적 전망이 밝지 않아 보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