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원 목전에 둔 환율…“정부 개입으로 역부족, 체질 개선해야”
정부, 국내 투자·자본 유입 위해 제도 마련
[더퍼블릭=안은혜 기자]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넘어섰다. 상승세를 보이던 뉴욕증시가 기술주의 급락 속에 하락 반전하자 위험회피 심리가 커진 영향이다.
고환율 고착화 우려가 한창인 가운데 '구두개입', 일시적인 시장 개입 등으로 환율을 진정시키는 방식이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1일(한국시간) 새벽 2시 원/달러 환율은 전장 서울환시 종가 대비 6.60원 오른 1472.20원에 거래를 마쳤다. 야간 종가 기준으로 미·중 상호관세 여파로 환율이 급등했던 지난 4월 8일(1479.00원) 이후 7개월여 만의 최고치다.
주간 거래(9시~오후 3시 반) 종가 1467.90원와 비교해선 4.30원 높아졌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상승세를 보이던 뉴욕증시가 기술주의 급락 속에 하락 반전하자 위험회피 심리가 커지면서 원화도 약세 압력을 받았다.
지난 14일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성 발언과 실개입이 나오면서 일시적으로 1450원대로 내려갔던 환율은 이후 줄곧 상승세다. 일각에선 4분기 환율이 1500원에 달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자 개입만으로는 고환율 고착화를 막을 수 없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현재 상황은 일시적인 환율 불안이 아닌 구조적인 변화의 결과라는 게 중론이다.
정부는 해외로 나가는 달러가 들어오는 양보다 많아 달러 부족 상황이 계속되는 점을 주된 이유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수출대금이 들어오면 일정 비율을 원화로 바꿔 운전자금으로 썼지만, 지금은 대미투자로 인한 글로벌 생산비 확대, 현지 설비 확충 등으로 달러를 현지에 그대로 쌓아두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또 다른 원인은 기업들의 달러 선호도 꼽힌다.
구윤철 부총리는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수출 기업들이 해외 투자 등을 고려해 달러를 환전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 부총리는 삼성전자, SK,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 총수들에게 “외환 수급 개선을 위해 긴밀히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사실상 달러로 받은 수출대금을 원화로 환전해 국내에 투자해 달라는 취지다. 여기에 이른바 ‘서학개미’ 개인과 기관의 해외투자 증가가 맞물리며 달러 유출 구조는 더 고착되는 모습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미투자가 장기적인 만큼 환율은 언제든지 치솟을 수 있어 앞으로 외환보유고를 낭비하면 안된다. 시장개입도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한다”며 “이보다는 국내 산업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외환시장 구조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미 투자로 3500억달러의 자금이 해외로 유출되는 만큼, 기업의 투자 방향을 국내로 돌리면서 개인과 외국인 자금이 한국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정책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국내주식 장기투자자 세제혜택 강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한도 확대, 기업 해외소득 이중과세 완화 등의 인센티브 제도를 논의중이다.
지난 19일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본시장에 오래 (투자하고) 있거나 개별 주식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사람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확실하게 추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본시장 측면에서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통해 인센티브를 줄 수 있고, 개별 주식에는 장기 보유 소액주주 배당소득 저율 과세, 장기 주식형 저축, 장기 집합투자증권 저축 등으로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빨리 도입할수록 주식시장 장기 투자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내년 이른 시일 내에 시행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기획재정부는 구 부총리 산하 10명 안팎의 교수·시장전문가로 구성된 ‘국제금융정책자문위원회’를 연내 신설해 미국 투자 펀드 확대, 미·중 갈등에 따른 변동성 확대, 해외 포트폴리오 급증 등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조언을 공유할 예정이다.
환율 안정의 해법은 단기 처방이 아니라, 국내 투자와 자본 유입을 늘리고 주식·자본시장의 매력을 높여 원화 수요를 회복하는 장기적 체질 개선에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