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李 정부 재정·고용 판단 연속 저격… "정책 기조 점검 필요"
확장 재정 정상화 요구… 적자 고착화 가능성 지적 실업률 ‘착시’ 분석… 구직 포기 증가 원인으로 제시 구조 개혁 지연 우려… 2040년대 잠재 성장률 0%대 경고
[더퍼블릭=양원모 기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정부 정책 기조와 상반된 내용의 보고서를 잇따라 내놔 눈길을 끈다. 재정 운용, 고용 통계, 구조 개혁 문제를 차례로 짚어내면서 한국 경제의 취약 지점을 정면으로 노출시켰다는 평가다.
KDI가 지난 11일 발표된 하반기 경제 전망에서 "확장적 재정 기조를 경기 회복 속도에 맞춰 정상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민간 소비 쿠폰 배포와 농어촌 기본소득 시행 등 현금성 정책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재정 적자 흐름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현 정부의 재정 정책 방향성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KDI는 고용 지표도 정부와 다른 해석을 내놨다. KDI는 "최근 실업률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고용 개선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실업률 2%대 유지가 구직 포기 증가에 따른 통계적 착시일 수 있다는 것. 고용 한파가 이어지며 '쉬었음' 상태의 청년층이 늘었고, 이 때문에 실업자 규모가 감소하면서 실업률이 실제보다 낮게 나타났다는 설명이었다.
중장기 성장 전망에서도 우려를 제기했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복지 지출 확대와 생산성 정체가 지속될 경우 2040년대 잠재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생산성 개선 없이 존속하는 '좀비 기업' 문제와 투자 부진도 구조 개편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보고서 기조가 강해진 배경에는 '연구 자율성'을 강조해 온 조동철 KDI 원장의 운영 방식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2년 12월 부임한 조 원장은 수석 이코노미스트, 거시경제연구부장 등을 역임하며 KDI에서 오랜 기간 연구를 이어온 인물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재직 당시에도 '실용적 비둘기파'로 분류되며 금리 인하에 소극적인 한은을 비판한 바 있다.
KDI 내부에서는 연간 300여 건의 보고서가 발간되는 만큼 상당수 연구 결과가 연구원의 판단에 따라 비교적 자유롭게 나간다도 설명이 있다. 다만 전망 자료나 기관 명의로 나가는 주요 보고서는 원장이 직접 확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조 원장은 "잠재 성장률 하락은 이미 오랫동안 지적돼 온 문제"라며 "KDI가 최근 특별히 다른 입장을 취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지점은 시기와 관계없이 제시해 왔다는 입장이다. 정책 기조와 다소 충돌하더라도 분석 내용을 조정하지 않는 것이 국책 연구 기관의 역할이라는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다. 조 원장은 이달 말 퇴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