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發 세대 교체, 재계 전면 재편 신호… 젊은 리더십 부상 가속
정현호 부회장 용퇴로 시작된 삼성 조직 재정비 SK·현대차·LG, 젊은 CEO 전면 배치로 대응력 강화 AI·관세 변수 맞선 재계, 인사로 체질 전환 본격화
[더퍼블릭=양원모 기자] 삼성전자가 지난 7일 정현호(65) 부회장의 용퇴를 골자로 한 인사를 단행하면서 연말 인사 시즌을 앞둔 재계에 세대 교체의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글로벌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과 AI 전환이라는 산업 지형 변화가 맞물리며 '젊고 빠른 의사 결정'이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부상한 것이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를 통해 사업지원TF를 상설 조직인 '사업지원실'로 격상하고, 초대 실장에 박학규 사장을 임명했다. 2017년 해체된 그룹 컨트롤타워 기능이 약 8년 만에 복원된 것이다. 사업지원TF장을 맡아왔던 정 부회장은 삼성전자 회장 보좌역으로 위촉 업무가 변경된다.
정 부회장의 퇴진은 세대 교체의 상징으로 평가된다. 이제 삼성 내부에선 노태문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 직무대행 사장의 거취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노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할 경우, 삼성 내에서는 비교적 젊은 부회장이 새로 등장하게 된다. 특히 노 사장은 현재 모바일경험(MX) 사업부장과 품질혁신위원장을 겸하고 있어, 인사 조정이 후속 조직 개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SK그룹은 이미 인적 쇄신 기조를 3년째 이어가고 있다.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취임한 이후 그룹은 꾸준히 50대 초중반의 CEO를 전진 배치하며 의사 결정 속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사장단 인사에서는 김정규(49) SK스퀘어 사장이 새로 승진했고, 유정준(62) 부회장이 내려놓은 SK온 대표이사직에는 이용욱(58) SK실트론 사장이 임명됐다.
최태원 회장의 신임 비서실장에는 1980년생 류병훈 SK하이닉스 미래전략 담당 부사장이 내정됐다. 그룹 핵심 보직에 40대 인사가 전면 배치된 것은 '속도와 실행'을 중시하는 최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SK텔레콤은 이번 주 대규모 조직 개편과 임원 감축을 포함한 쇄신 인사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져, 세대 교체 기조는 계열 전반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의 변화도 감지된다. 지난달 29일 그룹 광고 계열사 이노션의 대표이사 사장에 1973년생 김정아 부사장이 승진·임명되면서 세대 교체가 본격화됐다. 김 부사장은 1959년생 이용우 전 대표보다 14세가 젊다. 이전까지는 외부 인사를 선임하는 관행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내부 인재를 승진시켜 임명했다는 점에서 정의선 회장의 인사 철학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 회장 취임 이후 현대차그룹은 비교적 안정적인 인사 기조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올해 미국 시장에서 관세가 기존 0%에서 15%로 상승하는 악재가 발생하며 대외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연말 대규모 인사가 단행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LG그룹은 구광모 회장을 중심으로 각 계열사 사장단이 내년 전략 마련을 위한 사업 보고회를 진행하고 있다. 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AI·바이오·클린테크 등 'ABC'로 불리는 미래 성장축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조주완 LG전자 사장과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의 승진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전반적인 그룹 실적 부진을 고려할 때 이번 인사는 '조직 쇄신'보다는 '젊은 인재 발탁' 중심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 회장이 강조해온 "젊은 리더 중심의 변화 주도" 기조가 이번에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인사 흐름을 지배하는 키워드는 '선제 대응'"이라며 "관세 리스크, 중국과의 기술 경쟁 심화,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 통과 등으로 불확실성은 커진 가운데 AI 전환 속도까지 빨라지면서 기술 기반의 의사 결정 구조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