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100일, ‘로키 모드’ 전환… 개혁 성과 속 리더십 시험대
기자회견 대신 유기견 보호소·소방서 방문… “말보다 일로 평가받겠다”
[더퍼블릭=오두환 기자]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9일 취임 100일을 맞았지만, 정국 구상이나 개혁 비전을 밝히는 기자회견 대신 현장 행보를 택했다.
정 대표는 이날 오전 경기 용인의 한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한 뒤, 오후에는 백암119안전센터를 찾아 소방관들을 격려했다.
그는 “오늘이 당 대표 취임 100일이지만, 99일이든 101일이든 의미는 없다고 본다”며 “기자회견을 열어 말하기보다는 일하러 왔다”고 말했다.
파란색 운동복 차림으로 등장한 정 대표는 보호소 관계자들과 반려동물 복지 문제를 논의하며 “동물도 생명이고 사람도 동물의 한 종이라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상 여당 대표는 100일 전후에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운영 방향을 밝히는 것이 관례지만, 정 대표는 ‘침묵의 100일’로 방향을 잡았다. 최근 민주당이 추진한 ‘재판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대통령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면서 당정 엇박자 논란이 불거진 점을 의식한 행보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정 대표는 이재명 정부를 뒷받침하기 위해 취임 이후 하루하루 혼신의 힘을 다해왔고, 오늘도 그런 하루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며 “상징적인 기자회견보다 국민과의 접점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말보다 일”… 현장 행보로 ‘이미지 쇄신’
정 대표는 오후에는 제63주년 소방의 날을 맞아 용인 백암119안전센터를 방문했다. 그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소방관들이 책임지는데, 여러분의 생명과 복지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며 “정책위의장도 함께 왔으니 시급한 현안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소방관들은 인력 부족, 통풍이 되지 않는 무거운 방화복, 구조복 교체 문제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정 대표는 “소방관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나라가 보살피겠다”며 “구조복 문제는 빠른 시일 내 해결 방안을 찾아 보고드리겠다”고 답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이 ‘강한 개혁 이미지’로만 비춰졌는데, 정 대표가 약자 돌봄과 현장 중심 메시지를 내며 온도 조절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3대 개혁 완수 성과… “속도전은 좋지만, 확장성은 숙제”
정 대표는 지난 8월 전당대회에서 “검찰·사법·언론 개혁의 전광석화 속도전”을 선언하며 이재명 정부의 첫 여당 대표로 취임했다.
그는 “추석 귀경길에 검찰청 해체 뉴스를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실제 지난 9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검찰청 폐지가 확정됐다.
민주당은 이후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제, 법왜곡죄 신설 등 사법개혁 과제를 추진 중이며,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EBS법 등 ‘방송 3법’도 입법을 완료했다.
또 언론과 유튜버의 허위보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도 당 차원에서 추진 중이다.
당 내에서는 ‘개혁 드라이브’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한 중진 의원은 “정 대표가 약속했던 개혁 과제를 빠르게 추진하며 국회 논의를 선도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초기 리더십 안정화에는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반면 한 초선 의원은 “지지층 중심의 개혁 아젠다만 내세우면 외연 확장이 어렵다”며 “대통령이 외교·경제로 중도를 넓히는 동안 당이 정체되어 있다”고 우려했다.
대통령실과 엇박자, ‘명청 갈등설’ 재점화
정 대표는 당선 직후 “악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며 국민의힘과의 대야 관계에서 강경 노선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 당정 간 온도차가 커지면서 ‘명청(明靑) 갈등설’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의 완전한 종식’을 명분으로 재판중지법을 추진했지만, 대통령실의 강훈식 비서실장이 직접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다”며 제동을 걸었다. 이로 인해 당이 공개 경고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기에 부산시당위원장 경선에서 친명(親明)계 인사로 분류되는 유동철 위원장이 컷오프되면서, “정 대표가 공천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내부 비판도 제기됐다.
정 대표는 이런 비판에 “지금은 대통령의 시간”이라며 기자회견을 생략하는 등 한발 물러난 모습이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가 확실한 역할 분담을 정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지지율 정체, 지방선거가 ‘최대 시험대’
정 대표 체제 출범 이후 민주당 지지율은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0%로, 8월(41%)과 큰 차이가 없다. 대선 직후 46%였던 지지율은 석 달째 횡보 중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정 대표가 추진한 개혁 입법은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에게는 ‘강경 이미지’로 비친다”고 말했다.
이에 정 대표는 연내 개혁 과제를 마무리하고, 내년부터는 민생 중심 행보로 전환할 계획이다. ‘내란 특검’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맞춰 ‘정치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경제·복지·지역 균형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전략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는 정 대표 리더십의 분수령으로 꼽힌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 정 대표의 정치적 위상이 한 단계 높아질 것이지만, 패배하면 임기를 채우기 어렵다”며 “이번 선거는 정 대표의 운명을 가를 분기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