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남자의 무게를 잴 수 있을까”...미국 사회를 흔든 고백 '헤비'
[더퍼블릭=오두환 기자] 한 남자가 있다. 흑인으로 태어나, 사랑과 폭력이 뒤엉킨 가정에서 자랐고, 몸과 언어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왔다. 키에스 레이먼의 회고록 ‘헤비(Heavy)’는 그가 평생 짊어져야 했던 ‘무게’의 기록이다. 이 무게는 단지 몸의 질량이 아니라, 인종차별과 가난, 가족의 상처, 그리고 미국 사회의 모순이 한 몸에 새겨진 역사적·정신적 중량감이다.
저자는 미시시피의 흑인 공동체에서 성장했다. 학문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그 성공 뒤에는 늘 불안과 자기혐오가 도사린다. 그는 “나는 거짓말을 쓰고 싶었습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진실을 택했다. 자신의 몸, 어머니의 폭력,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폭력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어머니는 사랑과 훈육, 강요와 보호의 경계에서 그를 때리고, 동시에 글을 가르친다. 아들은 그 붉은 펜의 흔적으로부터 ‘고쳐 쓰기(revision)’를 배운다. 그리고 그 기술로 자신을 해부하며 세상을 다시 쓴다.
‘헤비’는 자전적 고백이면서도 사회비평이다. 개인의 서사가 인종과 계급, 젠더의 문제를 드러내며, 한 인간의 내면이 어떻게 국가의 모순을 반영하는지를 보여준다.
키에스 레이먼의 문체는 남부 흑인 특유의 구술 전통과 힙합의 리듬을 잇는다. 문장은 비트처럼 흐르고, 정직한 고백이 가사처럼 박힌다. 그는 랩의 플로우로 글을 쓰며, 폭력과 사랑이 공존하는 삶을 언어로 리믹스한다.
이 책은 출간 직후 미국 문단을 뒤흔들었다.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책 100선’과 ‘지난 50년간 최고의 회고록 50선’에 이름을 올렸고, 미국도서관협회의 앤드루 카네기 메달을 수상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한 세대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책”이라 평했고, ‘타임’은 “미국이 흑인을 대하는 방식을 대담하고 정직하게 고발한다”고 했다. ‘가디언’은 “이 책의 제목이 말하는 무게란 단지 저울 위의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끝나지 않은 노예제의 역사와 흑인들의 숙명적 짐”이라 평했다.
저자는 자신의 무너진 몸을 통해 사회의 병을 드러낸다. 폭식과 단식, 자학과 생존의 반복은 단지 개인의 문제로 읽히지 않는다. 그것은 흑인 남성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해야 했던 생존의 방식이다.
레이먼은 “체중계의 숫자를 통제하는 일은 나의 삶을 덜 역겹게 느끼게 했다”고 말한다. 몸은 기억의 창고이자 사회적 억압의 증거다. 그는 자신의 몸무게를 통해 사회의 무게를 증언한다.
그의 서사는 마침내 이해와 용서로 귀결된다. 어머니를 원망하면서도, 그 역시 어머니의 생존 방식을 이해한다. 폭력의 유산을 끊기 위해 그는 쓰기를 택했다. ‘고쳐 쓰기’는 곧 삶을 고쳐 사는 일이다.
‘헤비’는 치유의 서사이자 자기구원의 문학이다. 록산 게이는 “오 마이 갓, ‘헤비’는 놀랍다. 심오하다. 강렬하다. 겹겹이다. 와, 그냥 와”라고 감탄했다.
‘헤비’의 진정한 힘은, 한 개인의 고백이 인종과 국경을 넘어 보편적 울림으로 확장된다는 데 있다. 누구에게나 감춰둔 무게가 있다. 레이먼은 그 무게를 드러내며, 강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연약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인간이 온전해진다고 말한다. ‘뉴욕 타임스’가 평한 대로, “눈부시게 아름답고 가슴을 후벼 파는 책”이다.
이 책은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누가 이 남자의 무게를 잴 수 있는가? 그리고 묵직하게 답한다. “그 누구도,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무게를 이해하려 애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