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이슈] “빚투도 레버리지”...정책 신뢰 흔든 금융당국의 위험한 언어

2025-11-12     손세희 기자

금융당국 고위 인사의 “빚투도 레버리지의 일종”이라는 발언이 증시를 뒤흔들었다.

투자자들은 이를 정부가 사실상 ‘빚투’를 용인한 신호로 받아들이며 빚을 내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코스피가 급락하며 시장은 불안에 빠졌다. 금융당국자의 한마디가 곧 정책 방향으로 해석되는 만큼, 이번 발언은 시장 신뢰에 큰 타격을 줬다.

정부는 부동산 대출은 ‘투기’로 규제하면서, 주식 투자에는 ‘생산적 금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같은 빚을 두고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태도는 투자자들의 혼란을 키웠다.

이미 국내 신용융자 잔액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 반대매매도 급증하는 가운데 정부가 시장을 떠받칠 것이라는 기대감이 개인의 부채 위험을 키우고 있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 “빚투도 레버리지의 일종”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산업은행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밋업’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퍼블릭=손세희 기자] “빚투(빚내서 투자하는 것)도 레버리지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11월 4일 아침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한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발언 한마디가 시장을 들썩이게 했다. 그는 “빚투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며 “적정 수준의 포트폴리오 관리와 감내 가능한 수준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언은 코스피가 사상 처음 4000선을 돌파한 직후로, 금융당국의 핵심 인사가 ‘빚내서 주식투자’를 사실상 용인하는 듯한 언급을 한 셈이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투자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정부가 코스피 5000을 밀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졌고, 신용거래 잔고는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불과 하루 만에 코스피는 5% 넘게 급락하며 프로그램 매도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가 발동되기도 했다.

레버리지라는 금융 용어는 본래 기업이나 기관이 자기자본 대비 외부 자본을 얼마나 활용하느냐를 나타내는 비율 개념이다. 그러나 대중에게 ‘빚투’는 단순히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하는 행위’로 인식된다. 그 뉘앙스 차이만으로도 시장은 혼란스러웠다.

금융당국자의 발언이 곧 정책 신호로 해석되는 한국 시장의 특성상, 권 부위원장의 언급은 개인 의견 차원을 넘어 당국의 묵인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지적이 많다.

권 부위원장은 같은 인터뷰에서 “코스피 5000은 당연히 가능하고, 그렇게 가기 위해 정부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행자가 “6000p, 7000p도 가능한가”라고 묻자 “힘차게 우상향하는 주가지수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답했다.

그의 발언은 정부가 주가를 일정 수준까지 올리려 한다는 신호로 읽혔다. 특히 “부동산과 예금, 주식 10종목을 10년간 비교해보니 주식 수익률이 훨씬 나았다”는 개인적 경험담까지 소개하면서 발언의 무게는 더욱 커졌다. 실제로 라디오 이후 코스피는 장 초반 1% 상승했지만, 이튿날 외국인 매도세가 쏟아지며 급락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5일 권 부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주식은 불안정한 자산이다”라며 “금융당국의 고위직이 ‘빚투’를 ‘레버리지’로 포장해 찬양한 것은 선진 금융시장에서 보기 힘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권 부위원장의 설레발을 믿고 빚내서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다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며 “오늘 코스피 급락 사이드카 피해자들의 집단소송감”고 덧붙였다.

조용술 국민의힘 대변인 역시 “정부 고위 당국자가 빚을 통한 주식 투자를 정당화했다”며 “서민에게 위험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당국 낙관론에 개인만 뛰어들었다

지난 5일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 역시 지난달 23일 금융통화위원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주가는 버블 수준이 아니다”라며 “국제 비교로 보면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코스피가 3800을 돌파하던 시점에 나왔다. 증시 과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중앙은행 수장이 버블이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이 총재와 권 부위원장의 발언이 연이어 나오자, 시장에서는 이 발언들이 정부의 정책적 시그널로 해석됐다. 이에 정부가 증시를 방어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개인투자자들 사이에 확산됐다.

아울러 한국거래소 정은보 이사장도 최근 공식 간담회 등을 통해 “밸류업 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돼 국내 증시 저평가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상법 개정보다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시장을 더 키워야 한다”고 말하며 증시 활성화 의지를 드러냈다.

경제당국 전반에서 ‘증시 우상향’ 낙관론이 이어지던 가운데 코스피가 4200을 넘어서자 개인들은 다시 빚을 내 시장에 뛰어들었다.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연일 차익실현에 나섰다. 이달 4~5일 이틀 동안 외국인은 5조원 가까이 순매도했다. 그 결과 코스피는 장중 한때 6% 이상 급락, 반대매매 금액은 하루 평균 125억원으로 올해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1월 초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약 25조5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이는 지난 2021년 9월 최고치(25조6000억원)에 근접한 규모다. 신용거래융자는 개인투자자가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제도로, 시장 과열 정도를 가늠하는 대표 지표다.

이에 이미 개인들의 빚투가 한계 수준에 이르렀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현 상황에서 지수가 조금만 조정돼도 담보비율이 무너지며 대규모 강제청산이 이어질 수 있다. 주가가 급락해 담보 평가액이 일정 기준 아래로 떨어질 경우, 자동으로 반대매매가 실행돼 보유 주식이 강제로 팔리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9월 개인회생 신청 건수 역시 통계 집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2030 세대의 비중이 40%를 넘어섰다. 업계 전문가들은 주식과 코인 등 고위험 자산에 빚을 내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젊은층이 급증한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

 

부동산 조이고 주식 풀고...엇박자 금융정책 논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월 대선 과정 중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열린 서초구·강남구 유세에서 ‘코스피 5000 시대’를 들어 보이며 경제 회복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생산적 금융 전환을 국정 과제로 내세우며 주식시장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코스피 5000 달성’은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반면, 금융위원회는 세 차례의 부동산 대책(6·27, 9·7, 10·15)을 내놓으며 대출 규제를 강화해왔다. 특히 지난 6월 대책에서는 주택담보대출 상한선을 6억원으로 제한해 시장의 유동성을 급격히 위축시켰다. 당시 이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는 강력한 조치”라며 권대영 당시 사무처장을 공개적으로 치하하기도 했다.

이번 권 부위원장이 레버리지를 언급한 시점은 미묘했다.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직후,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각각 부동산 갭투자 논란에 휩싸인 직후였기 때문이다. 불과 넉 달 전까지 부동산 대출을 강하게 조이던 정부가, 이제는 주식 투자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정책이 ‘부동산은 죄악, 주식은 미덕’이라는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생산적 금융이라는 명분 아래 주식시장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빚의 본질은 동일하다. 부동산 대출이든 신용융자든 결국은 개인의 부채다.

한은 자금순환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가계부채는 2325조898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보다 34조1220억원 늘어난 규모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2분기 89.7%로, 전분기보다 0.3%p 상승했다. 이 비율이 오른 것은 2021년 3분기 이후 약 4년 만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빚을 활용한 투자 확대를 하나의 전략으로 포장하는 것은 금융건전성 관리 기조와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들어 한국 증시는 70% 이상 상승했지만, 상승세가 영원할 수는 없다. 레버리지로 쌓인 수익은 시장이 하락할 때 가장 먼저 무너지기 마련이다. 지금이야말로 안정적이고 신중한 금융정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