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지키지 않은 안보라인”… '서해 공무원 친형' 이래진씨, 문재인 정부 향해 울분
[더퍼블릭=오두환 기자] 2020년 서해에서 발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을 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핵심 인사들에 대한 1심 재판이 5일 결심공판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이날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 등 5명에 대한 마지막 심리를 진행했다.
재판은 2022년 12월 기소 후 3년 만이다. 검찰은 “고위공직자인 피고인들이 과오를 숨기기 위해 공권력을 악용하고 공용전자기록을 삭제했다”며 “피격 후 소각된 국민을 월북자로 둔갑시켜 유가족을 사회적으로 매장한 심각한 범죄”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서 전 실장에게 징역 4년, 박 전 원장에게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 서 전 장관에게 징역 3년, 김 전 청장에게 징역 3년, 노 전 비서실장에게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구형했다.
“국민 지키지 않은 안보라인, 국가의 존재 이유 묻겠다”
이날 법정에는 피격으로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가 피해자 유족 자격으로 직접 출석해 울분에 찬 심경을 밝혔다.
그는 서 전 실장 등 피고인 측의 최후 변론이 끝난 뒤 발언 기회를 얻어 “재판이 시작한 지 3년이 됐다. 문재인 정부 안보 라인의 만행을 알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입을 열었다.
이 씨는 “2020년 9월 21일 오후 1시 50분쯤 동생이 배에서 사라진 것 같다는 전화를 받으면서 이 사건이 시작됐다”며 “다음 날 동생이 실종된 무궁화10호에 승선해 사고 보고를 받았지만, 해경은 실족 가능성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실종 신고를 받고 곧바로 국제상선 통신망을 이용해 구조·수색 방송을 제대로 했다면 동생은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며 “(제 동생이) 고향이 목포다(라고 말하는) 이런 얘기들을 6시간 동안 듣지 않았느냐. ‘메이데이’ 방송을 30분만이라도 했으면 살 수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저는 간단히 진술하고 있지만, 이 과정 속에는 엄청난 조작과 살인이 있었다”며 “국가의 안보라인, 수사라인이 국민을 지키지 않았고, 북한이 저지른 살인 과정을 지켜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고 호소하며 “저와 가족들은 6년째 고통과 눈물 속에 살아가고 있다. 저는 이가 21개 빠지고 당뇨를 앓고 있는데, 아직 구속도 안 되고 큰소리치며 사는 이들을 단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또 “국가의 존재 이유는 질서가 제대로 잡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저들에게 가벼운 처벌을 한다면 국가 시스템이 망가지고 안보가 무력화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씨는 “이들을 심판해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에 정치적 이념이 아닌 진정성으로 접근하고, 제대로 된 국가 구조 매뉴얼이 생기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검찰 “국민 속인 중대한 범죄”… 피고인 “정권 기획 수사” 맞서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서훈 전 실장은 피격 사실을 알고도 이를 은폐할 것을 기획·주도한 자로, 이 사건 최종 책임자로서 죄책이 무겁다”고 밝혔다.
박 전 원장에 대해서는 “국정원장으로서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기관의 수장임에도 은폐 계획에 적극 동참했다”고, 서 전 장관에 대해서는 “군 지휘 감독의 책임자로서 구조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피고인 측은 모두 “정권이 바뀐 뒤 정치적 의도로 진행된 수사”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서 전 실장 측은 “이 사건은 정무적 동기로 기획된 수사로, 결론이 정해진 채 진행됐다”며 “범죄사실이 구성되지 않는다.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했다.
박 전 원장 측은 “이대준 씨가 자진해 월북 의사를 밝힌 첩보와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 착용 정보 등을 종합하면 자진 월북을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은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억지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서 전 장관 측은 “당시 SI(특별취급정보) 보안을 유지하라 했을 뿐”이라며 “서 전 실장과 공모한 사실은 추호도 없다”고 주장했다.
서 전 실장은 최후진술에서 “한 정권의 단기적 이해를 위해 국민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소신”이라며 “새 정부가 시작되자마자 일방적 여론몰이가 시작됐다”고 반박했다.
박 전 원장은 “이 사건은 파면당한 윤석열이 기획·지시하고, 국정원 일부 직원들과 감사원·검찰이 공모해 실행한 사건”이라며 “검찰이 공소취소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국민을 지키지 못했다”
법정에서의 3년 공방은 이제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
재판부는 “오직 증거에 의해서만 유·무죄 판단을 하겠다”며 “추호의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선고는 내달 26일 오후 2시로 예정됐다.
이 사건은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가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사건으로,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 국방부가 사실을 은폐하고 ‘월북’으로 발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감사원 감사 이후 검찰은 2022년 12월 서훈 전 실장 등 5명을 차례로 기소했다.
피고인들이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피해자 가족은 “이제라도 정의가 바로 서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래진 씨는 법정을 나서며 “국가가 국민을 지키지 못하면 존재 이유가 없다”며 “이 사건이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