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서 철강은 ‘패싱’…정부 5700억 지원에도 업계 위기감 여전

2025-11-04     홍찬영 기자

 

[더퍼블릭=홍찬영 기자]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됐음에도 철강업계가 협상 테이블에서 제외되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 5700억 원 규모의 금융지원책을 내놨지만, 고율 관세와 글로벌 공급과잉, 입법 지연 등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이번 방안에는 △관세 피해기업 대상 긴급 저리융자 △2차 보전사업 신설 △특수탄소강 R&D 로드맵 수립 △수소환원제철 기술 실증 △범용철강 설비 구조조정 등 총 5700억 원 규모의 금융·기술 지원책이 담겼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글로벌 공급과잉과 저탄소 전환 과정에서 경쟁력이 약화된 철강산업의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업계는 단기 지원만으로는 글로벌 통상환경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재 철강업계는 미국의 50% 고율 관세와 중국산 저가 공세, 유럽연합(EU)의 수입쿼터 축소 예고 등 삼중고에 시달리며 수출·내수 모두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범용재 가격 경쟁력은 떨어지고, 고부가 제품 개발은 지연되면서 업황 악화가 장기화하는 분위기다.

특히 지난달 열린 한미 관세협상과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도 철강 문제가 논의되지 않은 점이 업계 불만을 키웠다.

자동차·반도체 등은 관세 인하 또는 면세 혜택을 받았지만, 철강은 협상 대상에서 빠지며 미국의 50% 고율 관세가 그대로 유지가 때문이다.

고율관세에 따른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사들의 대미수출 수익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신세다.

미 상무부 국제무역청(ITA) 통계에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대미 철강 수출액은 약 29억달러(약 4조1500억원)로, 지난해 철강 전체 수출액 332억9000만달러(약 47조4억원)의 9%에 불과했다.

전국금속노조 포스코그룹사연대는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철강산업의 위기를 외면하고 있다"며 "철강은 조선·자동차·건설·에너지 산업의 근간이자 국가경제의 뿌리"라고 강조했다.

또 노조는 "세계 주요국은 철강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대규모 R&D 보조금을 투입하는데, 한국은 규제 중심의 정책이 오히려 업계 부담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업계는 또 'K-스틸법(철강산업 진흥 및 탈탄소 전환 촉진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 법안은 철강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명시하고, 수소환원제철 등 녹색철강 기술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논의가 3개월째 진척되지 않으면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소환원제철 같은 친환경 기술 개발은 수천억 원대 투자가 필요한데, 법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으면 기업 단독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며 "정부의 외교적 협상력과 입법 지원이 동시에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