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유지된 '금산분리' 규제에 변화 조짐…대기업 CVC 자금조달 숨통 트이나
지주사 CVC 외부자금 제한 등 완화 기대 李대통령, AI투자 관련 "금산분리 등 규제완화 검토 가능"
[더퍼블릭=안은혜 기자]이재명 대통령의 '금산분리 규제 완화 검토' 발언에 따라 43년 간 지속돼 온 금산분리 규제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던 '자금 조달'에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1982년 도입된 금산분리는 대기업 등 산업자본이 금융기관의 지분을 일정 기준 이상 보유할 수 없도록 한 규제를 뜻한다. 이는 기업이 금융기관을 사금고화하거나 불공정 거래를 하는 데 악용할 수 없도록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금산분리 완화'를 지시한 것은 43년 전 만들어진 규제가 더 이상 기업들의 성장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10일 열린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에서는 금산분리 규제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됐다. 논의의 핵심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규제 완화다. 현재 대기업이 보유한 벤처캐피털이 외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비중이 제한돼 있는데, 이를 풀어 자금 운용의 폭을 넓히자는 것이다.
이날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대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며 금산분리 완화를 공식 제안했다.
서정진 회장은 "대기업이 후배 스타트업을 키우는 것이 성공 확률이 가장 높다. 대기업은 망할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며 "여기에 금융기관과 정부 펀드가 함께 참여하면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이에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CVC 관련 금산분리를 완화해 위탁운용사(GP) 역할을 해야 한다"며 "셀트리온이 5000만 원 투자하면 은행은 5억 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규제가 완화되면 대기업이 GP 역할을 맡아 유망 기업을 고르고, 금융권이 이를 뒷받침하는 구조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지주사 CVC를 지분 100%의 완전 자회사 형태로만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부채비율은 자기자본의 200% 이내, 계열사나 총수일가의 출자는 금지하는 한편 투자 재원도 외부에서 최대 40%까지만 조달할 수 있다.
현행법상 일반지주회사는 금융 자회사를 둘 수 없지만, 2021년부터는 신사업 투자를 위해 제한적으로 CVC 설립이 허용됐다.
업계는 공정위가 법 개정을 통해 금산분리 완화의 물꼬를 터주면 금융당국이 CVC 투자 활성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후속 조치를 마련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진통은 불가피하다. 과거에도 산업 육성을 내세우며 완화 논의가 있었지만 '재벌 사금고 허용' 논란에 막혀 번번이 무산됐다. 또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강령에 금산분리 원칙이 명시돼 있는 만큼 당정 간 협의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일 이 대통령은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의 접견했다. 이 대통령은 인공지능(AI) 산업 분야에 한해서는 투자 활성화를 위한 금산분리 등 규제의 일부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이 대통령은 "독점의 폐해가 나타나지 않는 범위에서, 또 다른 영역으로 규제 완화가 번지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범위 내에서 현행 규제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브리핑을 통해 "금산분리 완화는 논쟁적 사안인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도 "각 나라의 전략산업에 있어서는 새로운 시대환경에 맞춰 (규제를)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도 지난 2일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 "매우 특수한 영역에 한정해 예외 조항을 얘기해 볼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 대통령이) 강조한 건 '매우 제한된 영역'이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