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명절에도 긴장 못 푸는 건설업계…중복 규제 파고에 국감 소환까지 ‘사면 초가’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국정감사 증인석에 대형 건설사 CEO들이 줄줄이 소환될 전망이다. 산업재해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한 이재명 정부의 기조 속에, 올해 국감은 건설안전 문제를 정조준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번 국각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과 포스코이앤씨 등 대형사부터 금호건설, 서희건설 같은 중견사까지, 최근 현장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했거나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기업들이 명단에 대거 포함됐다.
여기에 정부와 국회가 잇따라 강도 높은 제재책을 추진하면서 업계의 불안감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에 영업이익의 최대 5%, 최소 3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내놨다. 국회에서도 매출액의 최대 3%를 과징금으로 물리는 건설안전특별법 개정안이 추진되고 있다.
다만 이같은 중복 규제가 이뤄진다면, 사망사고를 막기 위한 강력한 제재가 오히려 건설사의 존속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건설업계는 안전 사고방지는 처벌 강화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발주 단계에서부터 촉박한 공사 기간과 낮은 공사비를 강요하는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 한, 사고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본지>는 긴 연휴가 끝나고 건설업계를 관통할 국감 키워드와 사면 초가에 빠진 현황에 대해 짚어보기로 했다.
현대엔지니어링·포스코이앤씨, 잇단 사망사고로 집중 추궁 불가피
오는 13일부터 열리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주요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증인석에 나설 전망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국감인 만큼, 건설업계는 여야의 집중 추궁에 대비해 긴장하는 분위기다.
국토위는 지난달 말 전체회의를 열고 국정감사 계획서를 채택하고 증인·참고인 명단을 확정했다. 국감은 10월 13일 국토교통부를 시작으로 29일까지 산하기관 등 총 34개 기관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이번 국감 증인 명단에는 국내 시공능력평가 상위 10위권 기업의 CEO들이 대거 포함됐다.
구체적으로는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 ▲김보현 대우건설 대표 ▲허윤홍 GS건설 사장 ▲송치영 포스코이앤씨 사장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 ▲정경구 HDC현대산업개발 대표 ▲이해욱 DL그룹 회장 ▲박현철 롯데건설 대표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모두 최근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거나 안전관리 부실이 드러난 기업들이다.
과거에도 건설사 대표와 임원진이 국감에 불려간 적이 있긴 하지만 이번처럼 단체로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적은 이례적이다.
특히 이번 국감에서 가장 큰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현대엔지니어링과 포스코이앤씨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올해 2월 세종~안성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교량 상판이 무너져 노동자 4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는 안전 관리 부실과 시공 과정에서의 구조적 문제 가능성이 동시에 지적됐다.
이어 3월 평택 주택공사 현장 추락 사고(사망 1명)와 아산 오피스텔 공사 현장 사고(사망 1명)로 올해 총 3건의 중대재해가 발생, 총 6명의 사망자를 냈다.
지난 3월 국토위 전체회의에서 주우정 대표가 출석해 해당 사고에 대해 사과한 바 있지만, 이번 국감에서는 더욱 강도 높은 질의가 이어질 것이란 시각이 따른다.
포스코이앤씨 역시 반복되는 현장 사고로 국회의 집중 추궁이 불가피하다. 지난 4월에는 경기도 광명시 신안산선 공사 현장에서 터널이 붕괴해 노동자 1명이 숨졌다. 같은 해 다른 현장에서도 근로자 사망사고가 이어지면서 올해만 총 4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런 포스코이앤씨를 겨냥해 지난 8월 6일 “건설면허 취소, 공공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 보고할 것”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회사는 전국 사업장의 공사를 일시 중단하는 초유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또한 정희민 사장은 반복된 중대재해 사고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혀꼬, 포스코이앤씨는 송치영 포스코홀딩스 부사장을 신임 사장에 내정했다.
지속되는 사망 사고에 따른 조직 쇄신 차원의 인사로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이 직접 인사권을 행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호건설·서희건설, 오송 참사·금품 수수 의혹까지 도마 위
금호건설과 서희건설 등 중견 건설사들도 이번 국토위의 국감 증인 명단에서 빠지지 않았다.
금호건설 박세창 회장의 경우 지난 2023년 7월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관련, 부실시공 의혹으로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 사고는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인근 미호강 제방이 터지면서 유입된 하천수에 당시 지하차도를 지나던 시내버스 등 차량 17대가 침수되고 14명이 숨진 사고다.
당시 미호천교 확장공사 현장소장을 맡은 금호건설의 현장소장은 공사 편의를 위해 기존의 제방을 무단으로 철거한 뒤 임시제방을 부실하게 조성하거나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인명 피해를 유발은 혐의로 기소돼 지난 4월 대법원에서 징역 6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번 국감에서 의원들은 당시 시공사 책임과 더불어 공공 발주 구조의 문제까지 따져 물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서희건설은 이봉관 회장과 김원철 대표가 동시에 국정감사 증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서희건설은 이번 국감에서 주택공급·건설정책 구조 진단, 이 회장이 김건희 여사에게 나토 목걸이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특검과 관련된 현안을 질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업계에서는 특히 서희건설이 지주택 사업을 사실상 전업으로 하는 회사라는 점에 주목한다. 전체 매출의 90% 이상이 지주택에서 나오지만, 조합과의 갈등이 잦아 사업지마다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 속에 이재명 대통령이 지주택 제도의 문제점을 공개 지적하며 서희건설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여기에 이 회장이 6000만 원대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를 김 여사에게 건넸다는 자수서를 제출하면서 특검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특검은 이 회장 사위의 인사청탁 의혹과 이번 사건의 연관성을 조사 중으로, 서희건설은 정치적·사업적 리스크에 동시에 직면했다.
이와 함께 서희건설은 부사장의 14억 원대 횡령 혐의로 상장적격성 심사를 받고 있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공공공사 입찰 제한은 물론, 향후 상장 유지 여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영업익 5% 과징금·매출 3% 법안…중복 규제에 건설사 ‘존속 기로' 위기
업계의 우려는 국감 출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이후 산재 근절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면서, 현장 사고가 발생한 기업에 대한 제도적 압박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감 소환과 별개로, 정부와 국회가 잇따라 내놓는 강도 높은 제재안은 건설사들의 불안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15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이다.
이 대책의 핵심은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연간 3명 이상 발생한 기업에 영업이익의 최대 5%, 최소 3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적자 기업이나 영업이익이 적은 회사라도 최소액은 피할 수 없다.
중견·중소 건설사에도 부담은 피할 수 없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대상 종합건설업체 1만7천여 곳 가운데 지난해 영업이익이 30억 원 이하인 곳은 97%에 달했다. 사실상 대부분의 기업이 과징금 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공정위의 종합대책 뿐 아니라, 국회 차원의 입법도 병행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3일 건설안전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매출액의 최대 3%를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최대 1000억 원까지 상한을 설정했다. 당초 무제한 부과안에서 한 차례 완화됐지만 업계의 반발은 여전하다.
앞서 7월에는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문진석 의원도 별도 법안을 제출했다. 해당 법안은 발주·설계·시공·감리 등 건설 전 과정을 규제 대상으로 삼고, 사망사고 발생 시 매출액의 최대 3% 과징금이나 최대 1년 영업정지 처분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담았다.
업계는 과징금이 중복 부과될 경우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상위 10대사를 기준으로 최근 5년간 추산한 결과, 건별로는 최소 1000억 원에서 최대 5000억 원, 누적 합산으로는 2200억 원에서 최대 1조7000억 원에 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기업 존속 자체가 위협받는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처벌만으론 한계…발주 구조 개선 없인 안전 확보 어렵다
하지만 건설업계는 이러한 처벌 일변도의 접근만으로는 안전사고 방지의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산재 예방을 위한 강력한 제재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병행해 풀어야 실효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공사 현장에서는 발주처가 짧은 공사 기간과 낮은 공사비를 제시하는 관행이 여전하다. 이 때문에 안전보다 일정 맞추기에 치중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사고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다.
특히 공공 부문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발주자·감리·설계 등 하부 구조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만큼, 기재부·행안부 등 상위 기관이 담당하는 기획·공사비 조달·입찰 제도부터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건설업계는 이런 구조적 문제와 규제 부담이 맞물리면서 건설경기 전반의 침체도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달 1일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건설경기는 선행지표와 동행지표 모두 부진했다. 건설수주는 7월까지 1.0% 증가에 그쳤으나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사실상 감소세였고, 건축허가·착공면적은 각각 16.5%, 12.8% 줄었다.
진행 중인 공사 실적을 보여주는 건설기성도 같은 기간 18.6% 감소해 1998년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보고서는 전문건설업계에 대해 인력난·인건비 부담 해결뿐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에 대응할 제도적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박선구 건정연 실장은 “전국 곳곳에서 강화된 안전 규제로 공사가 지연·중단되며 건설지표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며 “침체한 건설 경기를 되살리는 동시에 현장 안전도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 해법이 시급하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