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의무화 '급물살'에… EB 러시 속 기업들 '속도 조절'

EPS 개선 기대, 취득 유인 약화 우려에 증시·재계 온도 차 9월 자사주 담보 EB 38곳 '최대'… 태광·KCC 잇단 제동 대한상의 "경영 수단 위축 가능성"… 투자자들은 "환원해야"

2025-10-01     양원모 기자
[이미지=연합뉴스] 

[더퍼블릭=양원모 기자]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둘러싼 상법 개정 논의가 빨라지면서 기업들이 교환사채(EB) 발행 속도를 조절하고 나섰다. 

1일 재계에 따르면 9월 한 달간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EB를 발행한 기업은 38곳이다. 월간 역대 최대다. EB는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 등을 담보로 발행하는 채권으로, 투자자는 일정 조건 충족 시 원금 대신 주식으로 전환한다. 기업은 자사주를 직접 처분하지 않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EB 발행 급증 배경에는 여권이 추진하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있다. EPS를 끌어올리고 밸류에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기대와, 자사주 취득 유인 약화로 장기 환원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경계가 맞서면서 EB 발행을 택한 기업이 늘어난 것이다. 

문제는 주주들의 반발이다. 태광산업은 EB를 추진했지만, 2대 주주 트러스톤자산운용이 발행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며 발목이 잡혔다. 태광산업은 논란을 고려, 발행을 잠정 보류하고 이달 이사회에서 재논의하기로 했다. KCC도 지난달 24일 자사주 9.9%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EB 계획을 공시했으나 소액주주 반발이 커지자 일주일 만에 철회했다.

자사주 소각의 효과는 확실하다. 지난달 26일 기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자사주 총액은 84조 3380억원, 코스닥은 9조 1690억원이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자사주 전량 소각 시 코스피 EPS는 3.2%, 코스닥은 2.1% 개선, 소각 비율 90~95%에서도 코스피 2.9%, 코스닥 2% 내외의 개선이 기대된다. 

재계는 소각 의무화가 기업 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고 본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의무화 시 자사주 취득 유인이 줄고 반복적 매입에 따른 주가 부양 효과가 희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사주가 소각 외에도 자금 조달, 구조조정, 임직원 보상 등 다양한 수단으로 쓰여 온 점을 고려하면 활용 범위가 좁아져 매입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경영권이 걸려 있다.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그러나 이를 담보로 EB를 발행, 제3자에게 넘기면 의결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현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에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삼성전자 사례 등을 언급하며 자사주를 자금 마련, 경영권 방어보다 주주 환원에 쓰라고 요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KCC의 철회는 이런 기류를 반영한 조치로 보인다"며 "여당의 상법 개정 논의가 계속되는 가운데 정부의 주주 환원 기조와 시장 반응을 종합하면 기업들이 EB 발행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