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수출길 막힌 철강업계, K-스틸법 국회 지연에 ‘이중고’
[더퍼블릭=홍찬영 기자] 미국이 철강에 최대 50% 관세를 매기면서 한국 철강 수출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정부가 급히 지원책을 내놨지만, 업계가 기대를 걸었던 ‘K-스틸법’은 국회에서 멈춰 서 있어 답답함이 커지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이달 초 철강 관세율을 50%까지 높이고, 적용 대상을 기존 철강재에서 파생제품으로까지 확대했다. 그 여파로 올 1~8월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액은 25억2천만 달러(약 3조5천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16% 줄었다.
같은 기간 전체 철강 수출 감소율(6.8%)의 두 배를 웃도는 수치다. 업계 안팎에서는 “사실상 미국 시장 문이 걸어 잠긴 것과 다름없다”는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대미 수출길이 막히는 사이 일본·중국산 저가 철강까지 국내 시장을 잠식하자, 기획재정부는 지난 23일 일본·중국산 열연강판에 최대 33.57%의 잠정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철강사와 금융권·정책금융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4천억 원 규모 보증상품을 신설해 유동성 보완에 나섰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시장 왜곡을 일부 완화하는 데는 의미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경쟁력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결국 업계의 시선은 중장기 대책인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 특별법)’에 쏠린다. 이 법안은 산업 구조 재편, 녹색 전환 지원, 수요 기반 확충, 규제 혁신을 골자로 하며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 설치도 담고 있다.
하지만 여야 정쟁으로 인해 9월 정기국회 논의가 지연되면서 처리는 기약 없이 늦춰지고 있다.
현장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포항상공회의소는 지난 24일 임시총회를 열어 K-스틸법의 조속한 통과와 산업용 전기요금 한시 인하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포항상의는 “철강산업 위기가 지역 일자리와 상권 침체로 번지고 있다”며 국회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해외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중국 철강정보업체 마이스틸은 K-스틸법이 시행되면 한국의 수입 규제가 강화돼 중국산 철강 수출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베트남도 최근 중국산 열연강판에 최대 27.8%의 임시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등 글로벌 견제 흐름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한국 철강업계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단기 처방만으로는 구조적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법안 마련을 통한 중장기 경쟁력 확보가 더 이상 미뤄져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