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보’ 확실한 주담대 대신 ‘기업’ 대출 늘리라는데…‘이자장사’ 직면한 은행권의 ‘고심’
[더퍼블릭=김미희 기자]새 정부 출범 이후 그간 부동산에 쏠린 자금 흐름을 주식 시장으로 돌려놓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이는 사실상 우리나라 대부분의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있어 다른 곳으로의 투자가 쉽지 않은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식, 채권 등에 대한 투자 역시 여윳돈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대부분의 자금이 부동산에 묶여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결국 이는 금융권 또한 새로운 투자 기회를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금융권에서 부동산 자금 쏠림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생산적 금융과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앞서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경제계 의견’ 보고서를 통해 금융사들이 첨단 산업과 벤처 투자 등 생산적 금융을 확대할 수 있도록 위험가중자산(RWA) 가중치 조정, 벤처캐피탈(CVC) 투자규제 완화 등을 제안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원화 대출금 대비 부동산 대출 비중은 2020년 66.6%에서 2024년 69.6%로 상승했으며,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도 같은 기간 62%에서 65.7%로 확대되는 등 금융권 자금의 부동산 편중이 심화하고 있다.
이는 현행 규제 체계가 생산적 금융이 어렵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본규제에 따라 모든 대출에 위험가중치를 부여해 위험가중자산을 산출하는데, 담보가 있는 주택 담보 대출의 위험가중치는 평균 15%인데 비해, 기업 대출은 75%(해외 신용평가사 BBB+~BBB- 기준)에 이른다.
특히 벤처 투자에 대한 은행권 위험가중치는 400%에 달해 기업 금융을 할수록 재무적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이에 금융당국이 검토 중인 정책 목적 펀드 출자에 대해 RWA 가중치를 10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26일 데일리안 보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를 현행 최저 15%에서 20%로 높이고 기업 주식 보유에 대한 위험가중치는 400%에서 250%로 낮추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 매체 보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이번 조정을 통해 국내 은행의 연간 신규 주담대 여력이 약 27조원 감소하는 대신, 기업 투자 여력은 약 31조6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주담대 취급을 줄여 시장 과열을 억제하고, 그 여력을 기업으로 돌리겠다는 복안이다.
다만, 데일리안 보도에 따르면 하지만 은행권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이미 각종 규제로 주담대가 감소세에 접어든 상황에서 RWA 상향 조정의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담보가 확실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주담대에 높은 위험가중치를 적용해 인위적으로 공급을 조절하는 것은 은행 영업의 기본 원칙을 해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은행 자체가 담보가 확실한 주담대에만 매몰된 경우, 생산적 금융과는 또 다시 멀어지고 ‘이자장사’라는 비판에 놓일 수 있는 만큼 은행권의 고심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