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이재명式 대북 원칙' E·N·D선언을 바라보는 관점들
李대통령, UN연설에서 'E·N·D 이니셔티브 선언 李대통령 "END 통해 한반도 평화공존의 새 시대를 열 것" 北 END사실상 디스..."비핵화 결코 있을 수 없어" 국힘 '李END선언' 맹폭...장동혁 "가짜평화 구상" 애매모호한 END구상...엇갈린 '두 국가론'도 도마위 위성락 "두 국가론 동의 안해" VS 정동영 "사실상 남북은 두 국가" 헌법 3조 "韓영토-한반도와 부속도서"...두국가론·END 선언 논란 '증폭 우려'
[더퍼블릭=최얼 기자]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E·N·D 이니셔티브'선언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유엔총회 이틀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비핵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교류(Exchange)·관계 정상화(Normalization)·비핵화(Denuclearization)'를 중심으로 하는 포괄적 대화를 추진한다는 'E·N·D 이니셔티브'를 제시하며 "이를 통해 한반도에서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를 열어 가겠다"라고 선언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상대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할 뜻이 없다"라는 '3원칙'을 제시하며 북한과의 평화적 분위기 조성에 계속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비핵화와 관련해서도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냉철한 인식의 기초 위에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됐다"며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의 '중단'부터 시작해 '축소'의 과정을 거쳐 '폐기'에 도달하는 실용적, 단계적 해법에 국제사회가 지혜를 모아달라"라고 촉구했다. 그간 수 차례 밝혔던 '비핵화 3단계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END선언 중 비핵화를 의미하는 이니셜D에 대해 남북한의 입장이 뚜렸할 것으로 예측된다. 교류와 협력 추진 등 평화적 메시지가 담겼지만, 궁극적으로 비핵화를 목표로 설정했기 때문에 북한이 이를 수용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 이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 이틀 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이미 비핵화 3단계 원칙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총비서는 지난 20~21일에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 연설에서 "현 집권자(이 대통령)의 이른바 '중단-축소-비핵화'라는 '3단계 비핵화론' 역시 우리의 무장 해제를 꿈꾸던 전임자들의 '숙제장'에서 옮겨 베껴온 복사판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평가절하했다.
특히 김 총비서는 핵 보유가 북한의 헌법에 명시돼 있다면서 "이제 비핵화를 하라는 것은 우리더러 위헌 행위를 하라는 것"이라거나 "단언하건대 우리의 비핵화는 절대로, 절대로 있을 수 없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어진 이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서 비핵화를 언급한 것 자체가 북한의 수용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북한은 과거에도 우리 정부의 대북 원칙, '독트린' 등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첫 반응을 보인 바 있다. 특히 정부의 첫 대북 정책 및 기조를 비난하면서 일종의 기 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지난 2022년 윤석열 전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담대한 구상'이라는 첫 대북 로드맵을 밝힌 지 나흘 만에 김여정 당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실현과 동떨어진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지난 2017년 7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완성을 위한 첫 대북 구상인 '베를린 구상'을 제시했을 때는 북한은 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게재한 개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진로가 무엇인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아울러 지난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대북정책 구상인 '드레스덴 구상(3대 제안)'에 대해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으로 "시시껄렁한 잡동사니들을 이것저것 긁어모았다"라고 비난하고 노동신문을 통해서는 "남조선 집권자가 '통일 구상'이니 뭐니 하며 우리를 마구 비방한 것은 동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우롱이고 모독"이라면서 불만을 표했다.
이를토대로 국민의힘에서는 이 대통령의 END선언이 종전선언 의지를 나타낸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안철수 의원은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면서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의 해법이 언뜻 평화적으로 보이지만, 비핵화를 마지막에 둔 것은 사실상 종전선언을 비핵화 이전에 먼저 추진하겠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비핵화 이전에 교류와 정상화를 강조함으로써 결국 분단이 고착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취지다. 안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END는 평화의 시작이 아니라, 통일의 끝이 될 수 있다”면서 “지금 김정은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북한 주민들은 최악의 생활을 견디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에선 이 대통령의 END 이니셔티브가 표현은 그럴듯하지만 내실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은 “END (이니셔티브는) 너무 좋은 말씀이지만 공허한 선언적 의미의 말씀뿐이었다”고 평가했고, 또 “대북 확성기, 라디오 방송, 전단지 이런 것들을 이재명 정부 들어서자마자 다 갖다 버렸다. 그래서 우리가 대화로 북한을 유인할 수 있는 레버리지를 다 갖다 버렸기 때문에 앞으로 이재명 정부가 무엇을 가지고 대화로 북한을 끌어들일지 답답하다”고 했다.
END 이니셔티브의 뜻이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야권내에서 제기된다. 외교통일위원회 야당 간사를 맞고있는 김건 의원은 “관계 정상화라는 게 정확하게 어떤 뜻인지 모르겠다”면서 “E.N.D라는 말을 만들기 위해서 N에 해당하는 말을 찾다 보니까 정상화(Normalization)라는 말을 찾아낸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이번에 관계 정상화가 무엇을 뜻했는지는 다시 한 번 정부에서 설명을 해야 될 것”이라고 했다.
급기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 대통령의 '엔드(END) 이니셔티브'에 대해 "대북 퍼주기와 북핵 용인이라는 결말로 끝날 것"이라고 직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장 대표는 "E(Everything) '다' 퍼주고도 N(Nothing) '아무것도' 얻지 못하며 D(Die) 북핵으로 인한 한반도 '파멸'을 불러올 가짜 평화 구상"이라며, 이 대통령의 END구상을 폄훼했다.
야권이 이같은 입장을 내비치는 것은 첨예하게 입장차가 뚜렸한 비핵화 부분을 협의대상으로 삼는것 자체가 실익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END구상이 포괄적으로 북한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관계개선에는 장점이 있을 순 있지만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너무 뚜렸한 터라, 자칫 퍼주기만하고 실익은 없는 방향으로 남북관계가 흘러갈 우려가 있는 것이다.
비핵화를 의미하는 D뿐만아니라, 교류(Exchange)·관계 정상화(Normalization)부분도 논란이다. 만약 비핵화에 앞서 E와N이 선행된다면, 북한의 핵전력은 그대로 유지된채 교류협력이 확대되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이를의식하듯 위성락 안보실장은 "END는 선후관계가 아닌,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두 국가론에 대한 이재명 정부 내 입장차도 END구상의 실효성을 애매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위 실장은이 "남북한은 통일 전까지 잠정적 특수관계 란게 우리 정부 입장이다. 두 국가론을 지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고 분명 선을 그었지만,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남북문제는 실용적 접근이 필요하다. 남북은 사실상 두 국가"라며, 두국가론을 두둔하는 입장을 냈다.
분명 END 선언이 단계적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햇볕정책 등 과거 정책들보다 진일보해 보이는건 사실이다. 그러나 용어를 해석하고 내세우는데 있어 정부내 엇갈린 입장이 나타나며, 엇갈리는 입장은 이재명 정부의 대북관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편, 외교가의 입장을 살펴보면, 이재명 정부의 입장은 위 실장보단 정 장관에 더 가까워 보인다. 실제 외교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E와N이 자칫 핵무장 상태로 북한과의 수교를 용인하는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존재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다수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통상 N(노멀라이제이션)은 나라와 나라가 수교를 맺을때 사용하는 용어라고 한다.
참고로 헌법3조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되어있다. 이에 국민의힘에서는 이재명 정부의 엇갈리는 두국가론에 대한 입장을 토대로, END구상을 비판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 결국 엇갈리는 이재명 정부내 입장으로 인해, END구상이 자칫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정쟁의 도구'로 이용될 소지도 있어 보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