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H-1B 수수료 100배 인상…글로벌 기업 ‘패닉'

트럼프 행정부 “신규만 적용”…오락가락 해명 혼란 키워 한국 기업 직접 충격 제한적…“대부분 L·E 비자 활용”

2025-09-22     오두환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9월 19일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오벌오피스)에서 ‘골드 카드 비자’ 행정명령에 서명한 문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더퍼블릭=오두환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문직 비자(H-1B) 수수료를 100배로 올리는 포고문에 서명하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충격에 빠졌다.

한국 정부도 이번 조치가 국내 기업과 전문 인력의 미국 진출에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현지 시각) 미 이민국(USCIS) 통계를 인용해 "지난해 신규 발급된 H-1B 비자는 14만1000건으로, 내년에도 같은 추세라면 고용주들은 연간 약 140억 달러(약 20조원)를 추가 부담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건당 1000달러였던 수수료가 10만 달러(약 1억4000만원)로 치솟으면서다.

H-1B는 해외에서 과학자·엔지니어·프로그래머 등 고급 인력을 채용할 때 활용되는 비자로, 발급자의 3분의 2가량이 IT 업계 종사자다. 지난해 전체 승인 건수는 40만건에 달했으며, 대부분은 기존 비자 갱신이었다.

FT는 "특히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고 전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기업들은 당장 해외 체류 중인 H-1B 직원들에게 귀국을 권고하는 등 혼란에 휩싸였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해명은 오락가락했다. 새 규정이 발표되자 업계는 기존 비자 소지자까지 적용되는지 혼선을 빚었다.

이에 백악관은 하루 뒤인 20일 "신규 비자 신청자에게만 수수료 인상이 적용된다"고 설명을 바꿨다. 국무부의 최종 공지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기업들은 ‘일단 지켜보자’며 대응을 보류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소송 가능성도 제기된다. 글로벌 로펌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즈 크레이머의 한 변호사는 FT에 "행정부는 수수료를 부과할 권한이 있지만 10만 달러는 규제 권한을 넘어선 조치"라며 "법원이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외교부 당국자는 21일 "미국의 발표를 주목하고 있으며 구체 시행 절차를 파악 중"이라며 "우리 기업과 전문직 인력의 미국 진출에 미칠 영향을 살펴 미측과 필요한 소통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당장 한국 기업에 미치는 충격은 제한적이라는 관측이 많다. H-1B 비자는 한국인 신청 비중이 크지 않고, 현지 법인을 둔 국내 기업은 주재원용 L-1·E-2 비자를 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단기 출장 인력 역시 H-1B 대신 B-1 비자나 ESTA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조치가 한·미 간 비자 제도 개선 협상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협상 의제가 단기 파견 인력의 상용 비자 개선에 집중된 데다 미국도 비자 공백 문제를 인지하고 있어 큰 걸림돌은 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反)이민정책을 강조하면서도 외국 인력 유입 필요성을 인정해온 만큼, 실제 집행 과정에서 일부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