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애경산업 인수 협상 중인데, 태광산업 앞에 놓인 난관들

2025-09-23     김영일 기자

[더퍼블릭=김영일 기자] 태광산업이 지난 7월 ‘미래사업추진실’을 신설하는 등 섬유·석유화학 중심의 기존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신성장 동력 확보에 사활을 거는 모양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의 저가 공세로 태광산업의 주력인 섬유‧석유화학 업황이 부진함에 따라 2022년 1044억원, 2023년 993억원, 2024년 271억원(연결 재무제표 기준) 등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162억원 상당의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태광산업은 사업구조를 ‘B2B(기업 대 기업)→B2C(기업 대 소비자)’로 전환하고, 화장품 제조·판매업, 부동산 개발 및 시행·분양업, 호텔·리조트 등 숙박시설 개발·운영·임대업, 금융·투자업 등 신규 사업을 추가하는 정관 변경을 추진하는 등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다.

태광산업이 비누 및 세제류, 화장품 등을 생산‧판매하는 애경산업 인수를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애경산업 인수에 사용될 자금원으로 지목된 교환사채(EB) 발행이 당초 예상보다 늦어짐에 따라 인수에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아울러 태광산업이 애경그룹 총수 일가가 보유한 경영권 지분만 인수하면서, 애경산업 소액주주들의 이익침해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더퍼블릭>이 애경산업 인수에 나선 태광산업 앞에 놓인 난관에 대해 짚어봤다.

유동성 위기 직면한 애경그룹, 애경산업 매각…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태광산업 컨소시엄

김상준 애경산업 대표는 지난 4월 1일 서울 마포에 위치한 본사에서 임직원 대상 간담회를 열고 “임직원분들께 중요하게 드릴 이야기가 있다. 현재 회사 매각을 위한 절차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김상준 대표는 그러면서 “그룹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고 그 중 하나가 애경산업의 매각”이라며 “현재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직원들은 동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존에 진행 중이던 업무를 그대로 이어가면 된다”고 덧붙였다.

애경그룹 지주사인 AK홀딩스의 부채 비율은 2020년 233.9%에서 2024년 328.7%로 악화하는 등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상황인데, 여기에 지난해 발생한 무안공항 참사로 계열사인 제주항공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었다.

애경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일정 부분 해소하기 위해 그룹의 모태이자 AK홀딩스 자회사 중 비교적 우량회사로 평가받는 애경산업을 매각하는 강수를 둔 것인데, 매각 관련 우선협상대상자로 태광산업이 선정됐다.

태광산업은 지난 12일 “삼정KPMG로부터 당사와 당사의 관계사인 티투프라이빗에쿼티(티투PE)와 유안타인베스트먼트가 결성한 컨소시엄이 애경산업 인수와 관련하여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음을 통보 받았다”고 공시했다.

티투PE의 경우 태광산업이 관계사라고 밝혔듯, 태광산업과 태광산업 계열사인 티시스가 각각 4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장남 이현준 씨와 장녀 이현나 씨가 각각 9%씩 지분을 보유 중이다.

태광산업 측은 애경산업 경영권 지분 63.38%를 4500억원 상당에 인수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는데, 실제 인수 금액은 양사 간 주식매매계약 체결 시점에 확정될 예정이다.

태광산업은 지난 12일 애경산업 인수 관련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공시했다.

교환사채로 조달한 자금 중 일부는 애경산업 인수에 활용…법원, 트러스톤이 낸 가처분 신청 기각

태광산업은 교환사채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 일부를 애경산업 인수 대금을 활용할 예정이다. 앞서 태광산업은 뷰티 관련 신사업에 올해 20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태광산업은 지난 6월 27일 자사주 전량(27만 1769주)을 교환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를 발행해 3186억원 상당을 조달하겠다고 공시했다.

그런데 태광산업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같은 달 29일 입장문을 내고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 발행은 교환권 행사 시 사실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동일한 효과가 있는 만큼 기존 주주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교환사채는 발행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다른 회사 주식 또는 자사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를 말하는데,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가 교환사채 발행을 통해 투자자에게 이전되면, 더 이상 자사주가 아닌 탓에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주가 하락에 따른 일반 주주들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

이에 트러스톤은 6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 발행을 의결한 태광산업 이사회의 위법행위 중지를 요청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데 이어, 7월 30일에도 2차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1차 가처분 신청이 태광산업 이사회의 위법행위 중지를 요청하는 가처분 신청이었다면, 2차는 청구 대상을 태광산업으로 했다는 점이 다르다는 게 당시 트러스톤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0일 “교환사채 발행이 특정 주주만을 위한 행위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이사의 충실 의무는 전체 주주 균형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며, 트러스톤이 낸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지난 17일자 한화투자증권 리포트.

좀처럼 속도 내지 못하는 태광산업…IMA 인가 기다리는 한국투자증권에겐 부담?

교환사채 발행 중지를 요청하는 트러스톤의 가처분 신청이 기각됨에 따라, 태광산업은 교환사채 발행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점쳐졌으나 예상과 다르게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IB(투자은행) 업계에서는 당초 교환사채를 인수하기로 했던 한국투자증권(한투증권)이 인수에 부담을 느끼고 입장을 선회한 탓에, 교환사채 발행 작업이 더딘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한투증권의 경우 종합투자계좌(IMA) 사업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 IMA는 증권사가 고객 예탁금의 70% 이상을 기업 대출이나 회사채에 투자해 연수익률 4~8%를 목표로 하는 중수익 상품으로, 가장 큰 특징은 만기에 원금이 보장된다는 점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원금은 보장되면서도 시중은행 예·적금보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

증권사의 경우 고객 자금 유치 등 소매금융 부문의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음은 물론, 발행어음을 통한 추가적인 자금 조달을 확대할 수 있다. 기존 발행어음은 자기자본의 200%까지만 발행이 가능하나, IMA는 발행어음과의 통합한도가 자기자본의 200%+100%로 설정돼 있어 추가적인 자금 조달 확대가 가능해진다.

IMA는 기업에 투자해서 손실이 나도 손실을 증권사가 떠안는 방식이기 때문에, 감당이 가능한 자기자본 8조원 이상인 종합금융투자사 인가를 받은 증권사만 이르면 올 4분기부터 IMA를 출시할 수 있는데, 한투증권은 인가를 신청한 상태다.

이처럼 한투증권은 금융당국의 종합금융투자사 인가를 기다리는 상황인데, 정부여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시점에, 자사주가 일반 주식으로 전환되는 교환사채 인수는 자사주 소각과는 배치되는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한투증권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

게다가 교환사채 발행 중지를 요청하는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 지 일주일만인 지난 17일, 트러스톤은 “이사 위법행위 유지 청구 소송의 본안판결 확정시까지, 태광산업 교환사채 발행을 위한 사채인수계약의 체결, 사채 전자등록, 자기주식 처분 등 일체의 후속 절차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며, 법원에 항고장을 제출했다.

지난 17일 태광산업 공시 내용.

태광산업 “가처분 항고, 오래 걸리지 않을 것…한투증권, 교환사채 인수 철회하지 않을 것”

한투증권의 입장 선회 및 트러스톤의 항고로 교환사채 발행이 늦어지면서, 시장에서는 애경산업 인수에 악재로 작용될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 태광산업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교환사채 발행 여부에 대해선 현재 검토 중에 있다”며 “(애경산업 인수에)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애경산업 인수)거래가 완료되기 전까지 아직 시간적 여유가 좀 있다”며 “(이미 법원이 한 번 기각 결정을 내린 바 있기 때문에)가처분 항고 결과도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투증권의 입장 선회 여부와 관련해서는 “저도 그런 언론보도를 보긴 했는데, (트러스톤의 가처분 신청 당시)한투증권 측에서 법원에 투자협약서를 제출한 바 있고, 이후 저희에게 변경 사항이 있다거나 하고 알려온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투자협약서라는)공식 문서를 법원에 제출한 그 입장이 현재까지는 유지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며, 한투증권이 교환사채 인수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올 상반기 기준 태광산업이 보유한 현금성 자금이 1조 9000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애경산업 인수에 필요한 자금 조달은 문제가 없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애경산업 소액주주 이익침해 우려…똑같은 주식인데, 총수 일가만 경영권 프리미엄 특혜

증권가 일각에선 태광산업이 애경그룹 총수 일가 지분만 인수함에 따라, 애경산업 소액주주들의 이익침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17일 박세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태광산업의 애경산업 인수는 두 그룹 간 시너지 창출을 위한 전략적 거래지만, (애경산업)소액주주가 '경영권 프리미엄' 혜택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상적으로 인수자는 인수회사 지분 뿐만 아니라 그 회사의 브랜드, 기술력, 특허 등 유‧무형의 자산도 함께 인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지배주주에게 추가적인 웃돈을 얹어주는 걸 경영권 프리미엄이라고 한다. 

박세연 연구원은 “애경그룹 오너일가가 보유한 애경산업 지분 63% 상당이 매각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거래 대상이 오너일가 지분에 한정돼 만약 이대로 진행될 경우 대주주만 경영권 프리미엄 혜택을 누리고 소액주주(30.38%)는 기회에서 배제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박 연구원은 이어 “소액주주의 기회비용은 914억원 상당(802만 3372주 기준, 12일 종가 적용)으로 추정된다”며 “아직 (소액주주의)피해를 단정하기 어렵지만 이익침해 가능성 및 우려가 존재한다”고 부연했다.

태광산업 컨소시엄이 애경산업 경영권 지분 63.38%를 4500억원 상당에 인수한다고 가정해 보자.

태광산업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난 12일 종가 기준 애경산업의 시가총액은 4099억원(상장주식수 2640만 9935주, 주당 1만 5520원)이었다. 이대로 애경산업 경영권 지분 63.38%(1673만 8616주)를 인수하면 2600억원 상당이지만, 4500억원에 경영권 지분을 인수할 경우 1900억원을 더 주고 인수하는 셈이다.

이는 주당 2만 6917원으로, 12일 종가에 경영권 프리미엄(웃돈) 약 73%가 반영된 가격이다.

소액주주들도 총수 일가와 똑같이 주당 2만 6917원에 태광산업 보유 지분을 매각할 경우 2159억원 상당이지만, 12일 종가 기준으로 매각하게 되면 1245억원 상당으로, 약 914원의 기회비용을 잃게 된다는 게 박 연구원의 지적이다.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이 시급한 이유

소액주주들도 총수 일가와 똑같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만, 경영권 프리미엄 혜택을 받지 못하다 보니, ‘의무공개매수제도’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박세연 연구원은 “(애경산업 소액주주들의 이익침해 우려는)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이 시급한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면서 “이미 국회에서 관련 법안 논의가 진행 중인 만큼, 내년 상반기 도입 가능성을 전제로 (공개매수)형태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인수자가 지배주주(대주주)에게 지불한 가격과 동일한 조건으로 소액주주의 주식까지 일정 비율 이상 공개적으로 매수토록 의무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인수합병 과정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주주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독점하는 불공정한 상황을 개선하려는 취지다.

현재 국회에서는 ▶기존 최대주주 지분 포함 총 발행주식의 ‘50%+1주’ 이상을 공개매수하는 방안과 ▶인수자가 특정 지분율(25% 또는 30%) 이상을 확보해 최대주주가 될 경우 잔여 주식 전체를 일반 주주들로부터 의무적으로 공개 매수하도록 강제하는 방식인 ‘100% 인수’ 안이 거론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다수 발의 법안은 100% 인수 의무화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일반 주주들도 대주주와 동일한 조건으로 주식을 매각할 수 있어 경영권 프리미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인수자 입장에서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에 M&A 시장 위축되는 단점도 있다.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한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 15일자 논평에서 “국회는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서둘러 투자자 보호를 촘촘히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태광산업을 향해선 “태광산업 컨소시엄은 70%가 넘는 프리미엄을 애경그룹 특수관계자들에게만 부여하지 말고 일반주주에게 공평하게 부여하는 방법을 강구하라”고 했다.

애경그룹 총수 일가를 향해서는 “장영신 회장 등 패밀리는 개정 상법 취지에 발맞춰서 본인들만 고가에 엑시트 하지 말고, 장기간 신음하는 애경산업 일반 주주 권익을 보호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