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징금 한 번만 맞아도 쓰러진다… 건설사 97% "영업익 30억 이하"
적자 기업만 4953곳… 업계 "줄도산 피할 수 없어" 최소 과징금 30억, 대기업에도 부담… "현실 무시한 제도"
[더퍼블릭=양원모 기자] 정부가 산재 최소화를 위해 꺼내 든 '사망 사고 과징금' 카드가 건설업계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도가 시행되면 국내 종합 건설사 100곳 중 97곳은 단 한 번의 과징금으로 1년 치 영업 이익을 통째로 잃거나, 곧바로 적자에 빠져 줄도산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5일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사망 사고가 1년 새 3명 이상 발생한 기업을 대상으로 영업 이익의 최대 5% 또는 최소 30억원 중 큰 금액을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금액이다. 대한건설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영업 이익이 30억원 이하인 건설사는 전체 1만 7188곳 가운데 1만 6708곳으로 97.2%를 차지했다. 사실상 대부분이 과징금을 감당할 수 없는 구조다.
업계 반발은 거세다. "사망자 수만으로 규제하는 건 현실을 외면한 처벌"이라는 항의가 잇따른다. 현장 규모에 따라 위험 수준이 다른데, 정부는 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이다. 한두 현장만 관리하는 회사와 수십 개를 동시에 운영하는 회사에 똑같이 기준을 적용하면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과징금 신설로 정부의 민간 참여형 공공주택 공급 계획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해당 주택은 LH 보유 택지에 민간이 아파트를 짓는 민간 참여형 방식이다. 최근 4년 공공기관 발주 현장에서 사망자는 92명 발생했고, 이 가운데 18명이 LH 발주 현장에서 나왔다. 이에 LH 발주가 늘어나면 사망 사고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무엇보다 LH 공사는 최저가 입찰이라 공사비가 빠듯하다. 적은 이익에 과징금까지 떠안으라고 하면 참여할 기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실효성보다 제도적 기반 부족을 지적하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적정 공기와 공사비가 보장돼야 안전한 작업 환경이 가능하다"며 "그런 여건도 마련하지 않은 채 과징금만 강화하는 건 순서가 잘못됐다"고 <조선일보>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