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불법 체류 단속에 기업들 "나 떨고 있니"… 대미 투자도 '빨간불'

LG에너지솔루션·현대차 합작 공사 현장서 300여 명 구금 배터리·반도체·조선 등 산업계 전반 불안 확산 기업들 "비자 제도 근본적 개선 시급"

2025-09-09     양원모 기자
조기중 워싱턴 총영사가 8일(현지시간) 미국 당국의 이민 단속으로 체포된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수감돼 있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로 향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퍼블릭=양원모 기자] 미국 이민 당국의 한국인 근로자 300명 구금 사태 이후 현지 투자를 계획·진행 중인 국내 기업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근로자 전원이 풀려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해빙 분위기였던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지적이다. 

5일(현지 시각)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이 조지아주 서배나 HL-GA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 475명을 체포하고 한국인 297명을 구금했다. 여기에는 LG에너지솔루션 소속 47명과 협력사 인력 250여 명이 포함됐다. 정부의 긴급 대응으로 이틀 만에 전원 귀국 조치됐지만, 연 30GWh 생산 능력을 갖춘 핵심 시설의 연내 완공 목표는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미국의 초강경 대응에 기업들은 고민이 빠졌다. 사건이 발생한 조지아주에만 110여 개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는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의 오하이오·테네시·미시간 공장, SK온의 켄터키·테네시 JV, 삼성전자 텍사스 파운드리, SK하이닉스 인디애나 HBM 패키징 시설 등 총 투자액 수십조원에 달하는 프로젝트들도 리스크를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문제 배경엔 미국의 경직된 비자 정책이 있다. H1B 취업비자 연간 쿼터는 8만 5000개에 불과해 한국 기업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다. 대안으로 현지 인력 채용이 언급되지만 ▲핵심 기술 유출 리스크 ▲인건비 상승 ▲숙련도 격차 등으로 현실적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첨단 공정 노하우를 보유한 엔지니어를 현지에서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기술 보안과 생산성을 동시에 담보하려면 한국 인력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8일 한국경제인협회와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 LG에너지솔루션, 현대차그룹, SK온, 삼성SDI,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과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업계는 한국인 전용 취업비자(E-4) 신설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박종원 산업부 통상차관보는 이 자리에서 "기업들이 부당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외교부, 법무부와 공조해 미국 정부와 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기조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실효성 있는 해법 도출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