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흐릿한 ‘이재명-트럼프 정상회담 성과’...뚜렷한 ‘中‧北 반발 목소리’
생각보다 화기애애했던 '트럼프-이재명'의 첫 만남 韓,美에 3500억 달러 투자+ 기업들 1500억 달러 추가투자 대한항공, 보잉 103대 구매...한미 MOU 11건 계약 1500억달러 추가투자 소식에...업계내 우려 목소리도 '솔솔' 美 농산물 수입 등 여전히 '오리무중' 이재명 CSIS발언에...北中 반발목소리 '봇물'
[더퍼블릭/최얼 기자]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지난 25일(현지시간 기준) 미국 백악관에서 진행된 가운데, 당초 예상과 달리 무난하게 넘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신의 SNS에 한국에 대해 ‘숙청’‧‘혁명’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정작 회담에서는 호의적인 모습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이자,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망신을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 협상을 잘했다고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표면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호의를 베풀었더라도, 추가적인 기업들의 대미 투자 소식이 공개된 것과 추후 미국 측에서 어떤 청구서를 내밀지 모른다는 점이 이번 협상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이번 회담에서 한국이 미국에 약속한 투자는 총 5,000억 달러(약 70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와 더불어 ▲현대차 50억 달러 투자 ▲대한항공의 보잉기 103대 구매(362억 달러 상당) 등 ‘개별 기업들의 1,500억 달러 상당 추가 투자 계획’이 더해진 것이다.
구체적으로 양국 기업들은 조선·원자력·항공·액화천연가스(LNG)·핵심 광물 분야에서 총 11건의 계약 및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대한항공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499억 달러(약 70조 원)를 투자한다. 미국 보잉의 항공기 103대를 구매하고, GE에어로스페이스로부터 예비 엔진 19대 등을 들여온다.
현대차그룹도 지난 3월 발표한 4년간 210억 달러(약 29조 원) 투자에 50억 달러(약 7조 원)를 추가하기로 했다. 연산 3만 대 규모의 로봇공장을 미국에 짓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관세 협상 타결에 기여한 조선업 분야에서는 HD현대가 미국 조선업 재건 등을 위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공동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삼성중공업도 미 해군 함대 유지·보수·정비(MRO) 사업과 현지 상선 건조 계획을 공개했다.
원전 관련 양해각서(MOU)도 4건 체결됐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원팀’으로 뛰는 두산에너빌리티가 아마존웹서비스(AWS), X-에너지와 소형모듈원자로(SMR)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 성과다. 다만 이 부분의 경우, 웨스팅하우스와 한수원 간 지적재산권 분쟁 논란으로 인해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핵심 광물 분야에서는 고려아연이 글로벌 방산기업인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과 게르마늄 공급·구매 및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이번 MOU는 고려아연이 국내 공장에서 게르마늄 상업 생산을 시작하는 2028년부터 록히드마틴에 장기 공급하기로 하는 내용을 담았다. 핵심 희소금속 분야 한·미 협력의 첫 성공 사례로서, 양국 간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을 한층 심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산업계에서는 당장 미국에 대규모 투자가 단행될 경우 다른 필요한 곳에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구체적으로 이번 협상을 통해 보잉기 구매를 결정지은 대한항공이 에어버스 발주를 사실상 중단한다면, EU와의 마찰 가능성이 우려되며, 현대차의 해외 투자 확대 역시 국내 투자 여력을 줄일 수 있다는 등의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기존 한미 양국이 맺었던 협상의 세부 내용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명확히 해소되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한국은 대미 3,500억 달러 투자를 기반으로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협상을 미국과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3,500억 달러 투자금의 용처나 이익 배분 등 구체적인 사안은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정리되지 않았고, 15% 관세 적용 시점도 아직 불분명하다.
농산물 수입 문제도 마찬가지다. 당초 미국은 당시 한미 협상에서 한국이 농산물 완전 개방에 합의했다고 주장했지만, 한국은 지금까지도 농산물·소고기 수입 개방을 동의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 부분 역시 이번 정상회담에서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
그나마 안보 문제의 경우, 이재명 대통령이 국방비 증액 의지를 밝힌 만큼 협의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마저도 ‘동맹 현대화’ 문제로 넘어가면 향후 실무 협상에서 치열한 줄다리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날 회담에서 “주한미군을 감축할 것이냐”는 질문에 “지금 말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정리하자면, 당초 친중 논란이 불거진 이재명 대통령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회담을 진행한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기업들의 1,500억 달러 신규 투자’를 제외한 뚜렷한 성과는 찾아보기 힘들며, 지난 관세 협상 당시 불거진 쟁점들 역시 명확히 해소되지 않았다. 즉, 이번 회담은 겉으로는 무난해 보였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평가하기에는 여전히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이재명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실제 미국 일정에서의 이 대통령 발언을 문제 삼고 나섰다.
중국 환구시보는 26일, 이 대통령이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회의에서 “안미경중(安美經中) 노선을 과거와 같이 이어갈 수 없다”고 발언하자, 27일 “안미경중을 과거의 유물로 표현하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하는 것은 한국의 국익을 미국의 글로벌 전략 아래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급기야 환구시보는 한국이 ‘미국과의 안보’를 추구했으나 진정한 안보를 가져다주지 못했다며, 2016년 한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을 언급하기도 했다. 사드 배치가 한반도 핵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더러 중국과의 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했고,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켰다고 사실상 이재명 정부를 질타한 것이다.
같은 날 북한도 이재명 대통령의 CSIS 회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북한을 “가난하지만 사나운 이웃”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에 북한 조선중앙통신(이하 통신)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아직도 헛된 기대를 점쳐보는 것은 너무도 허망한 망상”이라고 밝혔다.
통신은 또 “국위이고 국체인 핵을 영원히 내려놓지 않으려는 우리의 립장은 절대불변”이라며 “국가의 모든 주권을 미국에 고스란히 섬겨 바친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정치적 가난뱅이”라고 한국을 비난했다. 이어 “리재명이 비핵화 망상증을 유전병처럼 달고 있다가는 한국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이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와의 성과를 판단하기에는 애매해 보인다. 다만, 북한·중국의 반발은 이 대통령 발언 직후 즉각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이 대비된다.
한편 27일 발표된 [리얼미터-에너지경제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응답은 53.1%로 집계됐다. 이는 당초 난항이 예상됐던 것과 달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정상회담의 ‘시각적 효과’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해당 조사는 무선 100%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RDD) 자동응답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인원은 507명(응답률 5.3%)이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