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성장전략’ 발표…정작 현안인 석유화학 구조조정·고용 대책은 빠져

AI 버블 우려 속 정부는 ‘AI 연호’…현실과 괴리 커 소비쿠폰·돈 뿌리기 남발하고도 성장률 0%대 기업 옥죄며 ‘진짜 성장’ 운운…모순된 경제 처방

2025-08-24     오두환 기자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성장전략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퍼블릭=오두환 기자] 이재명 정부가 22일 내놓은 ‘새 경제성장전략’은 68쪽짜리 발표문에서 ‘AI(인공지능)’가 267차례 등장할 정도로 AI 육성에 방점을 찍었지만, 정작 한국 경제의 발등에 떨어진 구조 개혁·고용 문제에 대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목표를 0.9%로 제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1.5%)나 코로나(0.1%)처럼 외부 충격이 컸던 때를 제외하면 최저 수준이다. IMF가 세계 경제 성장률을 3.1%로 전망한 것과 대조적이다. 두 차례 추경(45조6000억원)과 소비쿠폰 살포에도 성장률은 0%대에 머물렀다.

문제는 경제성장전략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당장 시급한 대책은 빠지고, 중장기 비전만 나열됐다는 점이다.

석유화학 등 공급과잉 산업 구조조정, 청년 구직난 해소, SOC 투자 같은 단기 처방은 보이지 않고 “10년, 20년 걸릴 작업을 5년 안에 하겠다”는 장밋빛 청사진만 남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산업 현장은 구조조정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20일 서울 대한상의에서 열린 ‘석유화학산업 재도약 자율협약식’에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신속한 구조 개편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석유화학업계 사업재편 자율협약식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SK지오센트릭 등 주요 석화업체 대표들은 나프타분해시설(NCC) 270만~370만t 감축, 고부가·친환경 제품 전환 계획을 내놨다.

정부는 “선(先) 자구노력, 후(後) 지원” 원칙을 내세웠지만, 기업들 사이에선 “정부가 당장 필요한 대책은 외면한 채 기업에 책임만 미룬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정치권 비판도 거세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대변인은 “소비쿠폰 살포와 돈 뿌리기를 남발하고도 겨우 0%대 성장률을 목표로 하는 경제 아마추어 정부의 현실이 참담하다”고 했다.

그는 “노란봉투법·상법 개정 같은 ‘경제 악법’을 밀어붙이며 성장 전략을 말하는 건 자가당착”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전략문에선 AI가 모든 해답인 것처럼 강조됐지만, 세계 시장에선 ‘AI 버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오픈AI 샘 올트먼 CEO는 “AI 기업 가치가 통제 불능”이라고 했고, MIT 연구진은 “AI 기업 95%가 수익을 내지 못한다”고 했다. 1990년대 닷컴 버블 붕괴처럼 AI 거품이 꺼질 경우 한국 경제는 또 한 번 충격을 맞을 수 있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 서울에서 열린 '정부-이통사 AI 투자협력 선언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지상 KIF투자조합 투자운영위원장, 이철훈 LG유플러스 부사장,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김영섭 KT 대표이사, 송재성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상근부회장. [연합뉴스]

 

산업계와 학계 모두 “진짜 성장”을 위해선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노동시장 개혁, 청년·여성 고용 확대, 위기 산업 구조조정 등 뼈 아픈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번 전략에는 구체적 실행책이 빠졌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성장의 동반자로 기업을 말하면서도, 실제론 기업을 옥죄는 법안에는 침묵했다”고 꼬집었다.

결국 이번 ‘경제성장전략’은 현실 위기 대응보다는 구호에 그쳤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세계 경제가 회복 기조에 들어섰다는 평가 속에서 한국만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